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연재하고 있는 시리즈 제목은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이다. 이 제목을 보고 자폐아들을 가진 한 어머니는 바로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했다. 가족 구성원 중 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던 나는 친구를 만나도 막내의 이야기를 길게 하진 않았다. 그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솔직히 왜 장애가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왠지 부끄러웠다. 그리고 막내를 대하는 가족 구성원의 태도 또한 일관되지 않았다. 무관심이거나 감추거나. 지극한 애정을 쏟거나. 물론 다 막내를 사랑한다. 몇십 년 동안 같은 상에서 밥을 먹고 자란 사이이다. 그 밥그릇 개수만큼 막내를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방법이 모두 다 다르다. 그런 혼란이 지속되어서 바깥에 나가 막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정리되지 않았고, 설명되지 않았다. 말이 막히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막내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러다 보니 어쩔땐 막내의 존재가 투명인간처럼 되어 버렸다. 의도한 건 아닌데, 설명하기 어려우니 존재하는데 어떻게 존재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그 후 운이 좋게도 선진국 친구들이 장애인을 친구처럼 대하고, 장애를 개성처럼 대하는 걸 보고 조금씩 떳떳해졌다. 동생의 장애를 여러 정보로 이해하게 되었다. 전두엽 문제로 충동적인걸 조절하기 힘들어 어릴 때 그렇게 집 밖을 뛰어 나갔구나. 여러 정보 중 놀라운 건 선진국 친구들의 개방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도 여러 매체에서 다루고 있어 점차 열린 사회가 되어 가는 것 같지만, 일상까지 친숙하진 않은 것 같다. 단지 자폐는 한 방향의 놀라운 재능을 지닌 서번트 증후군이라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 천재가 극소수이듯, 자폐 중에 서번트도 극소수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서번트를 가진 놀라운 케이스만 다루어서 그것만 아는 듯하다. 이웃에서 자폐가 있는 친구들과 교류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일 거라 본다. 자폐 친구들은 대부분 시설이나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지하철에서 가끔 상동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볼 때 있는데, 한편으로는 반갑다. 그래, 그렇게 너의 개성을 가지고 공공시설을 이용하렴.
스페인을 여행할때, 마드리드 지하철에서 파란 눈을 가진 성인 자폐 친구를 봤다. 어머니랑 동승했는데, 금방 눈길이 갔다. 잘생긴 얼굴에 그 친구의 개성인 으~ 소리를 내고 있던. 어머니께선 손가락을 입술에 연신 가져다 대곤 계속 쉬~라고 하셨지만, 난 그대로 있어도 별 방해가 안되었다. 이해하니까. 이해하면 방해가 덜되니까. 승객들 중 누구도 얼굴을 찌뿌리거나 항의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그 어머니는 아들에게 지하철을 이용할때 예절을 가르쳐주고 싶어한듯 하다. 스페인 지하철은 장애인이나 휠체어, 유모차 전용 입구가 있어 여행가방을 든 우리 일행은 그 칸을 이용해서 볼 수 있었던 친구였다. 난 반가웠다. 말 시키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눈으로 계속 사인을 보냈었다. 잘 살길 바라며. (속으로 알로! 를 연신 외쳤다.)
아직 민감한 부분이 많다. 자폐장애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의 비공개 모임에 참석신청을 했었다. 답장은 내가 40대라서 그 모임은 2030들의 모임이라 죄송하지만 정중히 거절한다고 했다. 나는 많이 이해가 되었다. 그 민감함, 예민함, 그들 안에 있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 결코 편안하지 않은 마음들이 그들보다 10살 많아도 이해받지 못할 거란 두려움들이 있었을 거라 짐작된다. 유년시절을, 청년시절을 나도 그렇게 보내왔기에 말이다.
우리는 4남매이다. 나는 첫째이고, 둘째와 셋째는 결혼을 해서 각자 가정을 이루고 있다. 나는 막내인 화섭이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같이 살기로 결심한 상태이다. 한국 장애인 시설의 인권문제에 큰 충격을 받았다. 탈 시설 운동하는 분들을 지지한다. 그룹홈은 개인성이 중요한 화섭 씨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그런 장면을 상상하면 내가 아무리 호강하고 살아도 화섭 씨를 어디다 보내지 못할 것 같다. 화섭 씨도 큰누나인 내가 익숙하고, 이제까지 살아온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나의 결심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막내와 잘 맞고, 다른 형제자매보다 내가 막내하고 있을 때 즐거워한다는 것을 20대 때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막내가 나에게 힘을 준다. 그것은 20대 때 막내와의 특별한 추억 때문이다.
20대의 난 정신적 방황을 크게 했다. 나중에 명리학을 공부해보니 사해충이라고 나의 정신적 방황이 설계라도 되어 있는 양 20대 후반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전까진 막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취직 잘하고, 돈 모아서, 좋은 결혼도 하고 싶은 그런 청춘이었다. 그런데, 지독한 우울증에 무기력증, 자기학대까지 가득 차다 보니 연애며 결혼도 꿈꿀 수 없었고, 친구들을 만나 내 속이야기를 하는 것도 힘들었다. 당시 읽었던 하루키 에세이에서 마라톤이 멋져 보여 운동장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이거라도 하면 뭔가 정신적으로 좋아질 것 같았다.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마라톤 사이트에 글을 연재했다. 빨리 달리지도, 잘 달리지도 못하는 내가 글 거리 없으니, 당시 자폐 마라토너 배형진 군 이야기를 듣고 동생을 꼬드겨 같이 조깅을 했다. 그 훈련일지를 사이트에 올렸고, 그 글 덕에 나는 그 동호회의 유명인이 되었다.
동생과 조깅을 하고, 한강변에 놀러 갈 때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동생이 나를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동생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막내의 단순한 행복이 나에게는 없었다. 행복하려면 나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이래서 저래서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넘쳐났었다. 그래서, 오히려 동생에게 배운다고, 힘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내와의 사이가 각별해졌다. 내 20대 대운에 사해충(정신적 방황)의 배치는 그런 깨달음을 위해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내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사해충이 없었으면 안 했을 공부들 말이다.
나중에 명리를 더 깊이 공부해보니, 막내의 명식이 내 명식과 만나면 나의 표현력이 증가되는 구조였다. 나 혼자는 말과 글을 뜻하는 식상이 없는데, 막내 명식의 유금이 내 명식의 사축과 만나면 사유축 금국을 이루어 기토인 나에게 식상이 되어 주었다. 나 혼자는 모자라고, 막내와 있으면 완성되는 구조라니. 참 절묘했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막내와 살겠다는 내 결심 뒤에는 사유축 금국 합체의 비밀이 있었다. 그러니 난 막내에 대한 글을 쓰는 걸로 식상을 만들어 내 재성을 활성화 (식상 생재)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럼 앞으로 화섭 씨와 어떤 스타일로 살고 싶은지로 생각이 옮겨갔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고립과 가난이다. 장애인 친구들은 소외되고 고립되고 가난하기 쉽다. 다행히 나는 선진국 친구들을 만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연결되는 문화를 맛보았다. 그 문화는 내가 이때까지 보아온 어떤 문화보다 가장 인간다웠고, 가장 탐나는 것이었다. 내가 그 문화 수입자가 되고 싶었다. 즉, 한국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 되고 연결되고 공조하고 나누는 문화를 수입하고 싶었다. 솔직히 그 수입의 수익도 짭짤해 내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 삶인지는 항상 고민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여러 어려운 역사를 겪었지만, 이만큼 성장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인간주의적 철학이 부족한 것 같다. 자본주의 뉴스가 신문을 장식하고, 성과와 점수로 사람을 판단하는 환경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익숙했다.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특성상 사람들의 결핍을 자극해, 소비로 그 결핍을 메꾸길 많은 광고가 세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각자 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미 가진 게 많아도, 집에 가면 좋은 가전제품과 옷이 있음에도 잘난 남들을 보고 항상 없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 배어 있다. 그 결핍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만 챙기고 싶은 마음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이미 가진 게 너무나도 많다. 건강을 가졌고, 대출내역이 어찌 되었건 전세인지 월세인지 매매인지를 떠나, 여름에 에어컨 나오고 겨울에 보일러 나오고 온수 나오는 집이 있다 공공도서관과 산책로와 염가형 커피집도 있다. 서울에 살면, 검색만 잘하면 무료 강연과 각종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있다에 집중하다 보면 나는 부자이고, 소비가 없어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약자와 소외된 이와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소통방식과 세상을 보는 방식을 가진 자폐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런 여유와 문화가 이제 우리나라에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자페장애 친구를 사귄다면, 비장애인도 이득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자폐 친구들의 순수한 매력에 빠질 수도 있고, 서로 도우면서 남을 돕는 기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풍요로운 문화를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연재의 제목을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라고 정했다. 한국에 22만 명의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분명 존재한다. 내 막내동생과 더불어 그들의 존재를 없다고 할 수 없다. 존재를 인식하는 일은 자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존재에 대해 드러내고, 공론화하고 어떻게 하면 상생할 수 있는지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난 그 시작점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목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 되는 문화이고, 과정은 존재에 마음을 열고 연결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