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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Sep 06. 2020

연결도구;보드게임과 카톡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Autism Artist 김우진 작가 2009. 12


화섭씨가 4살때부터 상담받아온 선생님이 계시다. 화섭씨는 이 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을 귀중히 여겨 4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  선생님 만나서 무슨 이야기 하냐고 물어보면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 직장이나 응모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 선생님께선 화섭씨는 사회성이 좀 부족한것 빼 놓고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신다. 내가 봐도 개성만점, 자기취미만땅인 화섭씨는 행복한 사람이다.


단, 한가지 아쉬운 것은 사교성이 부족한것. 본인이 익숙한 사람 빼놓고는 안 만나려 든다. 특히 화섭이 형이 결혼해 형수와 조카들이 있는데, 같이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적이 없다. 난 화섭이 형이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올케를 만나는 자리에 화섭씨를 데리고 나갔다. 올케는 착하고 포용적이었다. 그 후, 조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명절때마다 본가에 왔지만, 조카나 형수가 온걸 보면 부리나케 외출을 해버리곤 했다.


1. 연결을 위한 보드게임

지난 여름, 지인께서 발달장애인과 보드게임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쓰신 분을 소개해주셨다. 모 처에서 보드게임을 하는데 화섭씨를 데리고 오라고. 당시 화섭씨는 백수였던터라 난 휴가를 내서 그곳을 찾아갔다.

몇년전 보드게임이 유행해 카페까지 있을때도 난 보드게임을 해본적이 없다. 당연히 화섭씨도 그러했다. 그때 만난 게임이 독일에서 왔다는 ShapesUp. 선이 그려진 빈 판에 주사위를 굴려 주사위에 나온 도형을 가져와 먼저 채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화섭씨는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이 게임에 흥미를 느끼고 곧잘했다. 당시 보드게임 도우미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몇가지 게임을 더 했지만, 화섭씨는 이 게임을 좋아했다.


처음으로 보드게임을 만났던 곳. 다른 장애 친구들도 즐겁게 게임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이 게임을 주문하고, 동네 동생에게 같이 게임을 하자고 했다.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아 셋이 게임을 했다. 보통 낯선 사람이 있으면 화섭씨는 오래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하다. 그런데, ShapesUp이 매개가 되어 한자리에 한시간 이상 앉아 있었다. 게임은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1등을 세번 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어 손목때리기를 걸었는데, 내가 마지막 승부에 우승하자마자 화섭씨는 손목을 내밀었다. 나는 하이파이브 하자는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빨리 손목때리고 빨리 가겠다는 표현이었다.


Shapes Up! 게임 만든 분께 축복이 있기를!
이전 직장에서 부품정리를 잘해서 그런지 화섭씨는 배열과 정리가 많은 이 게임을 잘한다. 


이번 추석에는 조카들에게 먼저 ShapesUp 규칙을 알려주고, 화섭씨를 불렀다. 이 게임의 재미때문인지 엄청 쑥쓰러워하면서 화섭씨는 방으로 들어왔다. 이 게임 규칙중 주사위를 굴려 손바닥이 나오면 남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이 있다. 조카의 것을 가져와도 되는데, 아직은 쑥쓰러운지 내것만 가지고 갔다. 그래도, 같이 어울리는게 어딘가!


왼쪽이 화섭삼촌의 손, 오른쪽이 조카의 손. 피튀기는 경쟁과 복수를 부르는 게임이라 과열 주의.


아직 조카얼굴도 잘 못보는 수줍은 삼촌. 애교쟁이 조카는 삼촌 같이해요~ 조른다.


초2, 초6이 되는 조카들은 에너지가 넘쳐 사소한 것에도 소리지르고 울고 웃었다. 그 소리가 화섭씨에겐 좀 버거웠다보다. 2판을 하더니 그만하겠다고 방을 나갔다. 이럴땐 나가게 두는게 낫다. 다음에는 조카들에게 삼촌은 시끄러운걸 힘들어 하니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 후 시작해야겠다. 


2. 카톡으로 연결하기

이제 조카들이 자라 꼬맹이도 카톡을 하기 시작했다. 초2가 하는 카톡은 이모티콘 엄청 쓴다. 여하튼 연결의 장이 생겨 좀더 친밀한 대화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가족 단톡방에 화섭씨도 물론 있다. 화섭씨가 이방에서 주로 하는 일은 본인이 경품응모하고 남들에게 소개하라는 미션이 있을때 경품응모 링크를 보내는것이다. 뭐, 이것도 본인의 표현방식이니까.

9월 18일은 화섭씨의 생일이다. 화섭씨는 자신의 생일을 챙기기 좋아하는데, 케익을 사서 노래 부르고 부는것은 매년 빼먹지 않는다. 올해는 단톡방에 먼저 삼촌 생일임을 알리고 축하인사를 부탁했다. 꼬마 조카까지 삼촌 생일 축하해요~라고 이모티콘을 날렸다.

그 다음날, 화섭씨 형에게 선물이 왔다. 치킨 쿠폰을 내민것이다. 엄마랑 나눠먹으라고. 화섭씨는 평소 치킨을 좋아했기 때문에 좋은 선물이라고 칭찬해주었다. 그 다음날,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쿠폰을 다운 받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치킨을 먹었다고 한다. 배달비 3천원은 엄마가 내시고 ㅋ. 치킨 집이 거리상 조금 멀어 걱정했는데, 머리 좋은 똘똘이 화섭씨는 참 인터넷도 잘 쓴다.


알콩달콩 가족단톡방


이렇게 도구들을 하나둘씩찾으니 화섭씨를 가족과 세상과 연결할 기회가 생긴다. 앞으로 보드게임 들고 내 친구나 지인에게 한판 하자고 제안해야겠다. 보드게임만 있으면 화섭씨는 세상과 어울릴 수 있다. 초연결시대니까 화섭씨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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