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2019년 7월 12일(금)-13일(토) 제 1회 오티즘 엑스포가 열렸다. 영국에서 기원이 된 오티즘 엑스포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열린다는 광고 영상을 보게 되었다. 화섭씨를 꼬득여 참가신청을 했다. 어딜 가든 오래 머무는게 힘든 화섭씨라 그곳에 가면 무엇을 할지 일찌감치 스케쥴을 정해놔야했다.
다행히, 엑스포가 열리기전 김지선 선생님 소개로 발달장애인들에게 보드게임을 추천하는 기관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 화섭씨는 보드게임을 좋아했고, 낯선 사람과 오래 못 어울리는 습관이 보드게임을 하라면 신기하게 없어졌다. 확실히 목적의식이 생기니 어색한 관계속에도 머물수 있다.
오티즘 엑스포에 보드게임 부스가 생긴다는걸 알게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드게임만 하고 오자고 화섭씨랑 약속했다. 화섭씨는 말띠라 그런지 머무는것보다 여기저기 다니는걸 좋아한다. 특히 주말이면 여기저기 다니는 정해진 루틴이 있다. 20년 넘게 개인상담을 받아온 선생님께 가거나 서점에 간다. 주말에 이 루틴을 깨는걸 무척이나 싫어해, 주말 스케쥴 안에 오티즘 엑스포를 넣느라 애 먹었다.
이날 오전엔 화섭씨 개인상담이 있어 점심쯤 엑스포가 열리는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날씨는 더웠고 점심이라 배가 고팠다. aT센터 지하 식당에 가서 줄을 서, 맛있는 볶음밥을 먹었다. 엑스포에 입장하니 이미 많은 부스와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 있었다.
보드게임 부스를 가기전 화섭씨와 일전에 북콘서트에 참여했던 출판사 소소한 소통 부스부터 갔다. 한겨레21 잡지에 난 화섭씨 기사를 대표님께 보여드렸더니 페이스북에 실어주셨다. 감사인사를 하고 화섭씨도 소개해드렸다. 요즘 쓰고 있는 LG전자 경품응모 블로그에 몇십일째 댓글을 달고 있다는 글쓰기 근황도 전해드렸다. 대표님이 화섭씨를 반가히 맞아주셔서 즐거웠다. 자폐장애인은 비유적인 표현을 잘 이해 못해 "잠수탄다"라는 말을 이해 못한다며 잠수탄다 글이 새겨진 에코백이 만들어져 있었다. 예쁜 디자인에 의미도 좋아 하나 구입했는데...이 백은 결국 소란한 엑스포 분위기에 정신을 잃고 잊어버리고 만다.
여러 부스 한켠에는 공연을 위한 무대가 있었다. 여러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고, 리허설로 큰 소리가 계속 나왔다. 물론 공연 음악소리지만 마이크로 리허설을 지휘하는 목소리와 스피커에서 왕왕 울려대는 음악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소리에 민감한 화섭씨와 나는 좀 힘든 환경이었다. 보드게임 부스가 또 하필 무대 옆에 있었다. 그래도 왔으니 목적을 성취하고 가야지.
화섭씨는 일전에 했던 Shapes up이라는 게임을 보자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순번을 정해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모형으로 판을 채우는 놀이인데 화섭씨가 제일 잘하는 게임이었다. 모형들을 정리하고, 판에 배치하는 모양이 안정되어 보이고 알록달록 색깔은 즐거워보였다. 수년간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하다보니 이런 배치는 편안해 하는것 같았다. 이 게임을 한판 다 했는데, 부스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왔다.
지방에서 온 중학생정도 되는 남학생과 아버님께서 오셨다. 나는 얼른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아버님과 중학생과 화섭씨의 매치! 화섭씨는 아쉽게도 중학생 친구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아쉬움을 드러내는 화섭씨. 그리고 쿨하게 자리를 뜨는 중학생. 나는 중간에서 서로 인사하고 기념인데 사진이라도 찍자 했지만 화섭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래, 이런 쿨한 헤어짐이 그들만의 소통방식일수 있어. 내가 지나치게 친근한 인간관계, 그것도 겉으로 드러나는거일뿐데 그런 면에 치중해 있을 수도 있다.
겨울왕국에서 모티브를 딴 얼음블럭 깨기 게임을 몇판 더 했다. 이것은 블럭을 평행으로 배치해야하는데 화섭씨가 이걸 또 잘하는거다. 어릴때부터 질서정연하게 신문을 삼각형 모양으로 세워 나열하는걸 좋아하더니 드디어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찾게 된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이건 내 감정일 뿐 화섭씨는 스스로 보드게임을 찾지는 않았다. 내가 제안하면 그냥 해볼까? 정도 수준. 먼저 흥분부터 하는 큰누나의 설레발이었달까? 하여튼 얼음블럭깨기도 재밌게 했다. 몇번 지나자 화섭씨는 이제 가겠다고 했다. 그래, 이 환경에서 이 정도 한거면 잘한거야. 저녁에 보자 하고 나는 화섭씨의 다른 스케쥴을 존중해주었다.
혼자서 다른 부스를 둘러봤다. 영유아기 교육부터 청장년의 취업까지 다양한 부스가 있었다. 그런데, 몇개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건 별로 없다. 소리에 취약한 내가 집중력이 떨어졌던 환경이랄까? 다음에는 공연장과 전시장은 별도 공간에서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그래도, 1회가 어딘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오티즘 엑스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