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작년 6월이었다. 화섭씨가 12년간 일해왔던 부품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화섭씨의 중얼거림이 심해졌으니 집에서 해결해보라는 내용. 사정을 알아보니 매일 하던 화섭씨 일거리가 줄어들었다 한다. 규칙적으로 하던 일이 없으니 화섭씨는 스트레스 상태, 그러니 스트레스를 줄이는 상동행동인 중얼거림이 심해진거다.
나는 휴가를 내서 회사에 갔다. 사장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딱하다. 화섭씨가 즐겨하고, 매일 하던 일이 인건비가 싼 베트남, 라오스로 이동하면서 주문이 줄어들고 있는것이다. 아침마다 주문서가 팩스로 들어오는데, 주문서가 없으니 화섭씨는 팩스앞을 서성거리고 중얼거리고.. 그 옆에 있던 여직원이 그 스트레스를 다짜고짜 집에 전화를 걸어 풀어놓은 것이다.
사장님은 오히려 일거리가 없어 미안하다 하셨다. 합의를 본건 미리 주문량을 알아봐서 일거리가 없는 날은 미리 전화를 걸어 출근을 안하도록 한다는것이다. 여직원에게는 커피 상품권을 주며 동생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해해달라 부탁했다. 그래도, 우리집에선 소중한 동생이라고.
일없이 회사에 가는 상황은 없으니까 화섭씨는 더이상 스트레스를 받아하진 않았다. 그러나, 대책을 세워야했다. 이런 추세면 더이상 직장생활을 할수 없다. 예전부터 관심 있던 베어베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상반기와 하반기 2번 모집공고가 난다하니 베어베터 페이스북 담벼락을 팔로우 신청하고 매일 뚫어지게 쳐다봤다. 드디어 7월 공지가 떴다.
이력서를 정성스레 양식에 맞게 편집해서 보냈다. 전화가 왔다. 모월 모시 면접보러 오라고. 아싸! 나는 화섭씨에게 면접 연습을 시키고 싶었지만,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으니 시키지 말라고 했다. 평소 관심이 없는 부분은 몰라! 라고 하지만, 왠만한 질문은 잘 대답해서 엄마 말대로 연습없이 깔끔하게만 하고 갔다.
같이 지하철을 탔다. 한 20분 정도 서서 가는건데 화섭씨는 그 시간을 지루해한다. 큰 키로 문짝에도 붙었다가 한켠에 주저 앉았다가 별 동작을 다하면서 갔다.
무척 더운 여름날, 지도앱 안내로 찾아간 베어베터는 천국과 같았다. 건물도 좋고, 아기자기한 인형과 인테리어는 카페 같았다. 막상 현장을 보니 화섭씨도 마음이 동하는듯 싶었다. 드디어 순번이 되어서 홀로 면접장에 입성한 화섭씨. 면접이 끝나고 질문이 뭐였는 물어봤다.
- 무슨일을 하고 싶은가? ...(화섭씨) 인쇄일이요!
-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나? .... (화섭씨) 글쎄..40분?
- 이전 직장에서 무엇이 힘들었나? ... (화섭씨) 글쎄...
연습을 안한 티가 팍팍 나게 대답을 하고 왔다. 결과는 당근 미끄럼틀. 지하철 타고 갔을때는 시간을 집중해서 보지 않았고, 이전직장 힘든일은 감정표현이 힘든 자폐장애인에겐 힘든 질문이었다.
그렇게 몇개월이 갔다. 화섭씨 직장은 몇일은 쉬고, 몇일은 나가는 형태가 되었다. 어느 겨울에 하반기 베어베터 공고가 떴다. 이번에도 열심지원. 면접 통보.
엄마에게 면접 연습을 하나도 안하고 갔더니, 화섭씨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엄마가 시키지말라 해서 그랬다고. 그랬더니 당신이 미쳤다고, 이번에는 시키라 하신다. 예상 질문을 만들어서, 문열고 들어와 면접관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것부터 연습 시켰다. 이번에는 화섭씨도 꼭 베어베터에 가고픈가 보다. 열심에 연습에 응한다. 예상질문도 하다가, 돌발질문도 했다. 몇번 하고 나니 퀴즈문제처럼 잘 대답한다.
겨울 면접은 오후 늦게 있었다. 일찍 가서 1층 카페에서 다시한번 연습했다. 얼굴을 보니 면도가 안되어 있어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사 화장실로 떠밀어 넣었다. 부랴부랴 면접면접. 겨울면접을 본후, 부품회사에서 일하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이곳에 출근해 태연하게 화섭씨는 베어베터 면접보고 온 이야기를 다했다. 여직원이 알고 안부전화시 물어보더라. 난 화섭씨를 불러 베어베터 확정될때까진 부품회사를 다녀야하니, 회사에서 면접 이야기 물어보면 잘 못봤다고 하고 여기 그래도 계속 다녀야한다고 말하라고 했다. 에구, 속없는 순진한 녀석..!
결과는 또다시 미역국이었다. 여동생이 이 소식을 듣고 베어베터에 전화를 걸어 면접기준 등을 물어봤다 한다. 혹시나 나이때문에....? 두번째 떨어지니 실패요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19년이 되었다. 이제 일이 아예없어 출근하지 않는다. 부를때까지 오지 말라는 전화가 오래전에 왔다. 이번에는 엄마가 옛기억을 더듬어 장애인고용공단에 찾아갔다. 그간 근무조건을 들어보시더니, 너무 길게 일하고 급여는 적게 받았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간 최저임금등이 변했는데, 이전 회사는 새로운 고용법의 변화에 둔감해 있었다. 오히려 기회구나 싶었다. 저물어 가는 제조업에서 오래가는 직종으로, 짧은 근무시간과 좋은 월급으로 갈아탈 때이다.
고용공단에서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베어베터때처럼 연습을 시킬까 몇번 질문을 던져봤는데, 화섭씨는 곧잘 대답했다. 이력서를 쓰며 거기에 나온 내용을 물어보며 연습했다. 지난 직장에서 몇년 근무했지? 13년. 더이상 물어보니 떨린다고 하기 싫다해서 물렸다. 잘하리라..그래 연습한거 다 기억하고 있는거 보면 잘할거야.
공단에서 주선한 직장면접이 끝났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여름이 되어 베어베터 3번째 도전기회 공고가 떴다. 마침 화섭씨가 22년간 퀴즈응모한 비법이라는 인터뷰기사가 한겨레 21에 나오기도 했다. 화섭씨의 근성을 아니 3번째 도전도 놓칠수 없었다. 다시 면접보러 오라는 전화는 어김없이 왔다. 공단에 물어보니 이전 면접 합격발표는 베어베터 면접일 다음일이었다. 가야겠구나 베어베터야.
베어베터 면접일은 화요일이었다. 반차도 내고, 면접준비도 할려는 찰나...월요일에 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화섭씨 7월 1일부터 출근하러 오라고. 3대1의 경쟁율이었는데, 화섭씨가 뽑힌거다. 울엄마는 화섭이를 어릴때부터 똘똘이라 불렀는데, 정말 똘똘이처럼 이직에 성공한거다.
가벼운 마음으로 베어베터에 전화해서 면접취소를 알렸다. 그리고, 그 회사 응원한다는 멘트도 남겼다. 우리나라 자폐장애인의 취직율은 40%라 한다. 그럼 그 나머지 60%는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예전에 중증 장애인 시설에 봉사를 하러 간적이 있다. 정말 자폐가 심하면, 언어를 배울수도 없다. 그런 친구들을 보니 화섭씨가 얼마나 높은 수준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화섭씨가 이직에 성공해서 기쁘지만, 그 60%의 행복도 염려가 되었다. 일하는 기쁨을 알았으면 싶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