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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Oct 29. 2020

느린 사회와 장애인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화섭씨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휠체어 장애인분들에 대한 관심까지 높아졌다. 페북에서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의 이동권이 서울에서 불편하다는 글을 읽었다. 교통혼잡시간에는 저상버스를 타기도 힘들다고 했다.


어느 출근길, 붐비는 우이경전철을 탔다. 사람들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중간즈음에 전동휠체어를 탄 아주머니 한분이 탑승하였다. 상황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중간에 지하철이 멈추기도 했다. 휠체어 아주머니는 비명을 질러댔다.


"아이고, 누르지 마요. 나 죽어요!"


눈에는 안보이지만, 사람들 평균 키보다 낮은 휠체어를 탄 분이 사람들 틈에 끼여 고생하시는듯 싶었다. 어느 환승역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다. 공간의 여유를 찾은 나는 아주머니 곁에 갔다.


"저 다음칸에 휠체어 전용 공간이 있어요."

"그랬어요? 전혀 몰랐네요."


어찌 보면 모르는게 당연한듯 하다. 지하철을 탈때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고, 특정한 표시도 없으니까.


우이경전철에 있는 휠체어 공간. 이곳에 휠체어 이용자가 있는걸 본적이 없다.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휠체어 이용자가 없어서 일까?


"고생 많으셨어요."


땀이 송글송글 맺힌 아주머니께 위로의 말을 찾으니 이 말 한마디가 나왔다. 그 후 여러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 나왔다.



영국 여행을 갔을 때이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다. 전반적으로 그때 느낀건 한국보다 생활 속도가 반박자 늦다는거였다. 길을 물어봐도 천천히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세븐시스터즈를 보러 브라이튼 역에 내렸다. 버스 티켓을 사러 줄을 섰다. 그때 티켓을 끊어주던 아저씨의 동작이 아직도 기억난다. 옷차림은 가디건으로 깔끔하게 입으시고, 버스 티켓을 부르는 내 주문에 느릿 일어나 한켠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티켓 뭉치를 꺼내 한 장을 고른다. 티켓을 건네줄땐 남성화장품 냄새도 얼핏 났던것 같다. 이런 과정이 여유롭고 느릿해서 처음 간 곳이었는데 마음이 편했다.


브라이튼 역에서 산 버스 티켓. 복권처럼 날짜를 긁어 사용한다.


영국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갔을 때 이야기다. 버스를 타고,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잔액 부족이 나왔다. 중년여성 기사였는데, 충전해서 다시 타라 했다.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내리는데 충분히 기다려줬다.  여행내내 한번도 충전을 해본적이 없는터라 길 가던 한 여성에게 물어봤다. 그 여성은 골똘이 생각에 잠기더니 "내 생각에는 저 곳과 이 곳이 될것 같아. 행운을 빌어!" 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간단한 질문에 곰곰히 생각해주는 태도와 처음 만나는 외국인에게 행운을 빌어주기까지 하는 여유가 아직도 기억난다.


영국에 있는 내내 템즈강 풍경과 이런 느린 사회 분위기를 느끼며, 여기서 왜 세계적인 작가들과 석학들이 나오는지 알것 같았다. 속도가 늦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마감일이 빠듯한 업무요청과 속도감에 다시 영국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을때는 여유의 이유를 인구밀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버스길, 자전거길, 도보길이 따로 있는 넓은 바르셀로나는 어딜 가나 여유가 있었다. 붐비는 까딸루냐 광장이나 람브라스 거리에 가도 그랬다. 일 없이 여행자로 그곳을 찾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저상버스도 많았고, 간혹 휠체어 이용자가 버스를 타는 광경도 봤다. 시간을 충분히 쓰며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우리나라 휠체어 이용자들이 생각났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서울은 너무 빠르고 사람들이 많다. 장애인들은 일반인들보다 여유가 더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환경이 그 속도와 여유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한때 우리나라는 가난해서 국제 경쟁력이 없어 무엇이든 빨리 제공하는걸로 승부를 봤다고 한다. 그 문화가 아직까지 있어 빠른 배송을 경쟁력으로 내어 놓다, 택배기사 분들이 과로사 하기도 한다. 빨리 하면 빨리 죽을일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속도로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살기 너무 어렵다.


지인의 따님이 장애인이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 고향에 집이 있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상대적으로 장애인의 숫자가 적으니 사회복지사들이 더 잘해주고 관심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적어서 누리는 혜택이다.


속도와 빼곡한 인구밀도는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단, 이런 환경이 여유와 배려를 줄이는게 문제라고 본다.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것부터 찾아보자. 한 템포 마음을 늦추는 것이다.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반드시 미치도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일을 했느냐보다는 어떻게 일을 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중에서



주토피아 최애 캐릭터 나무늘보. 자기만의 속도로 느리게 살아가는거 본받고 싶다. (그림 출저 : https://zoningout.tistory.com/317 )


발달장애인의 회사 베어베터는 작업공정을 세분화했다. 한번에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 적은 발달장애인을 고려해 특별하게 바꾼것이다. 이런 개별화 작업에는 반드시 시간적 여유와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빨리 효율성만 생각해서는 장애인을 고용할 수도 없다. 장애인 고용은 빠름과 속도를 강조하는 생각으론 해낼 수 없다. 여유를 가지고 적응할 수 있는 시간과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당장 효과가 없어도 인간을 존중하는 철학을 실천할 수 있다는 뿌리깊은 고찰도 필요하다. 장애인과 더불어 살려면 느림이 필요하다.  느림~ 느림~ 느림~ 모 광고를 패러디해 느림의 미학 광고송이라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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