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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로윈 Dec 27. 2019

90년대생과 여행하는 법


작년 한 해 동안 4~50대 남성분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 중 하나로 「90년생이 온다」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90년대생인 저의 입장에서는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저희들이 너무나 ‘이해받지 못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내용이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점토판에도 새겨져 있다고 하지요. 세대가 다르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90년생이 온다」는 이와 같은 타자 집단의 특징을 설명해줌으로써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개합니다. 90년대생과 여행하시는 부모님들, 직장 상사님들 그리고 인생 선배님들께 드리는 꿀팁 대방출. 90년대생 여행자들의 대표적인 특징 세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 글에 나오는 90년대생의 특징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특정 세대의 특징으로 일반화할 수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또 이 글은 특정 세대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1. 사진은 인생샷을 건질 때까지


인생샷이라 함은 영어로 “Instagrammable photo”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 법한 사진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생샷 내의 인물은 최소 8등신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사진 주인공이 실제로 n등신이라면 인생샷 내에서는 n+1정도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땅바닥에 눕다시피 자세를 낮추고, 인물의 얼굴은 사진 정 중앙에, 발끝은 사진 프레임 끝에 맞추어 찍습니다. 구도만으로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의 주인공이 가장 마음에 드는 표정과 색감, 주변인물의 유무 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인생샷이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샷은 몇 번의 셔터소리로는 건지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의 장소에서 여러 가지 구도와 표정을 수십 번 찍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샷이 탄생하고, 이와 같은 인생샷을 건지기 전에는 그 스팟으로부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 90년대생의 마음이랍니다. 그러니 참을성을 갖고, 인생샷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2. 음식을 먹기 전에는 사진부터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음식을 먹기 전에는 사진부터 찍습니다. 음식이 나온 후 기다렸다는 듯이 식기를 음식에 들이민다면 맞은편에 앉아 있는 90년대생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감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 사진을 왜 찍는지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음식 사진 역시 인스타그램에 올려야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무엇을 먹었는지 여부가 여행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내식당이나 프렌차이즈 햄버거와 같은 음식들은 주로 사진에 찍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주로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먹는 음식은 대부분 그럴듯해 보입니다. 90년대생과 여행한다면 음식이 나왔을 때 사진을 찍을지 여부를 물어보시고 센스 있는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을 어떨까요?    



3.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일


90년대생의 여행에서 스마트폰은 빠질 수 없습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본 맛집, 카페, 인생샷 성지까지 가는 길을, 구글맵과 맵스미를 이용해서 길을 찾고, 우버와 그랩을 이용해서 그곳으로 이동하고 인물 사진 모드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에게 중계해야 하고 여행 사진은 실시간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합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고로 그것은 재난사태를 의미합니다. 당신의 90년대생 동행이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나는 지금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보조배터리를 통한 긴급수혈을 할 수 없다면 다음 목적지를 ‘콘센트가 있는’ 카페 또는 식당으로 정하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속에 있는 내가 멋져야 한다. 브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포즈가 좋다. 역사적 사연보다는 사진과 감성이 중요하다, 정도가 있을까요? 모든 90년대생이 이 글에 나온 특징을 갖는 것은 아니며, 90년대생이 아닌 분들이 이런 특징을 갖지 않으신 것도 아닙니다. 또 이러한 특징을 ‘안다’고 해서, 90년대생을 ‘이해하여’ 그들과의 여행이 수월해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듯이, 모든 세대는 서로 다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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