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여행기 모음집 - 인도(3)
두세 번의 경험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한다고 한다. 민족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거리에서 만난 인도인들을 통해서 나는 인도인에 대한 대략적인 인상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엄청나게 찌질하고 시끄러우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뻔뻔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항공권 비용을 제외한 여행 예산의 절반 이상을 도둑맞은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찌질하고 또 뻔뻔해져야 했다. 그래서인지 돈을 잃은 이후 인도인과의 인연이 부쩍 많아졌다.
흰색 건물들이 큰 호수를 따라 늘어서 있고, 세밀화가 유명하여 예술의 도시로도 잘 알려진 일명‘화이트 시티(White City)’ 우다이푸르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쁘기보다는 막막했다. 삶의 기본적인 조건들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중개 사이트를 통해서 숙소를 예약하는 것보다 직접 발로 뛰면서 숙소 주인에게 흥정하는 편이 더 싸기 때문에 여행지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값싼 게스트하우스들을 돌아다니며 묵을 곳을 찾는 것, 그리고는 값싼 레스토랑을 찾는 것이었다. 다행히 반나절 정도 발로 뛰며 1박에 400루피(한화 약 7,000원) 정도 하는 숙소를 구하고 근처의 싼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제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유명한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설’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다섯 단계로 구성되어 있어서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의 욕구가 나타난다고 한다. 가장 낮은 단계의 생리적 욕구와 그 다음 단계인 안전 욕구가 해소되자마자 나를 엄습해온 욕망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외로움을 떨쳐버리고 싶다는 마음, 즉 바로 사회적 욕구였다. 우다이푸르는 인도인들 사이에서도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나와 같은 배낭여행자보다는 젊은 부부와 화목한 가족 여행자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재밌게 이야기하며 웃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인 내가 더욱 비참하게 느껴졌다. 우다이푸르는 호반의 도시답게 가트(강이나 호숫가의 돌층계)가 많았고, 그중 하나인 하누만 가트에서 외로움을 씹으면서 호수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때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온 소녀 한 명이 있었다. 그 아이가 알리사이다.
알리사는 20대 초반의 체구가 작은 아가씨였다. 그때까지 인도를 여행하면서 길거리에서 인도인이 내게 말을 걸어온 경우는 많았지만, 하나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남자나 남자들이었다. 인도에서는 여성이 외국 남자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문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알리사는 이례적인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치고는 영어를 굉장히 유창하게 구사하고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도 그동안 보아 왔던 인도 여성들과는 달리 상당히 서구화되어있었다. 알리사는 우다이푸르에 살고 있으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말동무가 생겨 기쁜 참에 한참을 가트에서 그녀와 이야기했다.
알리사는 저녁 식사로 나를 초대했다.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파티하기로 했다고 말했고 나는 조금 생각해보고는 너무 늦게 끝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하며 그녀를 따라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바로 전 도시인 조드푸르에서 거리에서 만난 인도인인 이상 누구도 믿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지 못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뜻 낯선 사람을 따라나선 것은, 혹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보다도 모두가 함께일 때 나만 혼자라는 확실한 외로움이 너무나 싫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행히 알리사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제외하고 세 명 정도의 젊은 인도인들이 함께 밥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알리사를 제외한 다른 인도 친구들은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라서 알리사가 중간에 나의 영어와 인도 친구들이 힌디어를 통역했다. 좋았던 점은 알리사와 이야기를 할 때 사전에 내가 도둑맞은 이후로 돈이 없음을 충분히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알리사는 함께 갈 식당에서 음식과 술의 대략적인 가격을 미리 가르쳐 주고는 이 정도면 괜찮냐고 물어봐 주었다. 실제로 음식과 술은 지금까지 관광객으로서 혼자 알아봤을 때의 가격 범위보다도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식당 주인과 알리사가 친한 사이여서 그런지 서비스 안주도 몇 번이나 받았다. 세상에는 역시 좋은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며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시끌벅적함과 알코올에 취해갈 때,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갔다.
슬슬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알리사가 나를 따로 루프탑으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너는 참 좋은 사람인 것 같아.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고마운 것은 오히려 내 쪽이야. 나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돈도, 친구도 없는 여행자인데, 친구가 되어 주어서 고마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의 남자친구가 되어 줄래?”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남자친구라고? 카스트가 다르면 결혼도 허락받기 힘들다던 인도인이 만리타국의 이방인인 나에게 갑자기 사랑 고백이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나는 평소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왜 저런 이야기를 할까 하고 생각했던 답답한 바로 그 한마디를 몸소 내뱉고 말았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 그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의미한 좋은 사람은 그런 의미가 아니며, 나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좋고, 우린 아직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데다가, 나는 내일 밤이면 우다이푸르를 떠날 것이고 운운. 내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알리사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난 ‘이제 곧 쫓겨나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알리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 하루를 나와 보내고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때?”
그래서 다음 날 아침부터 알리사와 함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이상했던 것은 모든 계산을 내가 했다는 것이다. 바로 전날에 내가 도둑맞다 돈이 없다며 늘어놓던 하소연을 다 듣고 공감해주었던 그녀인데 오늘은 자신이 돈이 없다며 “내줄 수 있지?” 당당하게 물어보았다. 어떠한 문화권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보통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입장에서는 미안함이 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알리사는 돈을 내는 나보다도 당당했다. 그 당당함에 뭐라 대꾸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나는 지갑을 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리사가 나를 데려갔던 길거리의 포장마차나 식당에서 먹는 음식의 가격은 내가 혼자서 갔던 어느 식당과 비교하더라도 절반 이상 저렴했기 때문에, 2인분을 계산하더라도 나는 더 이득을 보는 셈이어서 크게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알리사와의 하루는 재밌었다. 현지의 인도인들이 먹는 길거리의 음식들을 먹으며 우다이푸르의 호수를 걷고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리사의 꿈은 신기하게도 우다이푸르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전에 우다이푸르를 방문했던 관광객 중에서, 자신을 양녀로 삼아 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노부부가 있었는데, 그 노부부가 다시 우다이푸르를 방문하기를 기다리며 자신은 양녀가 될 준비를 할 것이라고 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자신의 영어 실력을 가꾸기 위함이라고 했다. 알리사의 가정사나 다른 이야기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딱한 기분이 조금 들었다. 그 노부부가 진심으로 알리사를 양녀로 삼고자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한 마디로 인해서 알리사는 목 빠지게 기다리며 매일같이 거리에 나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대고 있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다이푸르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알리사는 어제 만났던 친구들을 불러서 나에게 송별회를 해주겠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송별회를 그들에게 ‘해주는’ 것은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그 질문이 영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나에게 파티를 열어주겠다는 것으로 알아듣고, 너무 고맙다며 승낙했다. 나까지 포함해서 총 여섯 명이 탈리 레스토랑으로 갔다. ‘탈리’는 우리나라의 백반 정식 같은 개념으로서 밥과 로티(빵) 그리고 여러 종류의 커리를 한 쟁반에 담아 먹는 요리를 말한다. 배부르게 탈리를 먹고 나서 그들은 나에게 잘 가라며 고맙다며 인사를 해주었다. 그러고는 계산대 앞에서는 일제히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알리사가 영어를 잘못 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내가 그들에게 송별회를 해주는 것'을 제안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알리사에게 물었다. “돈을 도둑맞아서 내게 남은 돈이 얼마 없는데….” 그러자 알리사와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말 돈이 한 푼도 없어. 게다가 오늘은 우리의 특별한 송별회잖아?” 너무나도 뻔뻔한 그들의 표정에 나는 더 이상의 대꾸도 할 수 없이 지갑을 열었다. 여섯 명이 음료까지 시켜 배부르게 먹었는데 가격은 한화로 만 원 정도였다.
덩치 큰 알리사의 남자인 친구가 숙소 앞까지 오토바이로 데려다주어서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 숙소 문이 잠겨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문을 열어주고 알리사와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들어오는 나를 따로 불렀다. “저 아이들은 우리 동네에서 불량한 애들이라서 어울려 놀면 안 돼. 앞으로는 저런 아이들을 조심해.”
그렇게 다음 날 우다이푸르를 떠났다. 지금도 알리사가 순수하게 좋은 의도로 나에게 접근한 것인지 혹은 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좋은 의도로 접근했다기에는 내가 식사를 포함해서 마지막의 송별회 비용까지 냈다는 것이 찝찝하고, 나를 이용했다기에는 내가 큰돈을 잃거나 도둑맞은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나는 계획보다 조금 더 지출하기는 했지만, 하루 동안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웠고, 행복한 연인들과 가족들 틈에서 혼자 외롭게 하루를 방랑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의도가 어떠했건 간에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과 느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