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여행기 모음집 - 라오스(2)
즐기기 위하여 연습이라는 진입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스키가 그렇다. 스키를 몇 번 타보지 않은 나는 스키를 즐기면서 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얼추 중급자 코스까지는 탈 수 있게 되었지만, 내가 중급자 코스를 내려오는 시간은 즐거움보다는 넘어지지 않기 위한 안간힘으로 가득 차 있다. 스키도, 펜싱도, 총 쏘는 게임도, 독서도 그렇다. 취미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한 것들이다. 이러한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할 때 나는 즐기는 사람의 표정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저 사람들은 이렇게 힘이 드는 일을 뭐가 재밌다고 이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여행하는 일도 그렇다. 혼자 하는 여행은 패키지여행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보다 상대적으로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장점을 적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으며, 자유를 즐길 수 있다는 등의 좋은 점들이 적혀 있었다. 라오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려 짐을 꾸릴 때만 해도,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상처를 치유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자아를 발견해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혼자 여행하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한 것을.
혼자 여행하는 것이 처음인 내가 벽에 부딪힌 것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서였다. 비엔티안에서 출발하여 방비엥, 루앙프라방으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루앙프라방은 마지막 도시였다. 방비엥에는 블루 라군과, 튜브와, 파티와, 한인 숙박업소와, 한국 음악이 나오는 클럽이 있다. 혼자 다니려고 마음을 먹어도 어쩔 수 없이 친구를 사귀게 되는 마을이다. 혼자서 방비엥에 도착했지만, 나는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았고, 성격 좋은 주인아주머니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함께 액티비티를 즐기고 마사지를 받고 밤에는 맥주를 마시고 파티를 한다.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이 익숙했던 나였기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밌었다. 루앙프라방을 포기하고 방비엥에 며칠을 더 묵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루앙프라방은 방비엥과는 정 반대에 가까운 마을이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게다가 동행들과도 일정이 엇갈려서 나는 온전히 혼자서 루앙프라방을 여행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탁발하는 승려들이 행렬을 지켜보고, 아침 시장을 설렁설렁 거닐면서 현지 사람들이 아침을 먹는 곳에 들어가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켜 식사를 했다. 제법 ‘혼자 여행하는 사람’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커피를 한 잔 마실 때쯤 해가 중천에 떠서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혼자 여행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어쩌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전거 한 대를 빌려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이 크지 않아서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마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는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카페를 찾았다. 내가 생각했던 유토피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카페였지만 이름을 지은 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테라스에 누워 메콩강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소위 ‘히피스러운’ 공간이었는데, 서양인들은 라오스에서 구매한 것이 분명한 편한 바지를 입고 그곳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책을 읽었다. 그들은 정말로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나도 그들처럼 유토피아에 자리를 잡고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바라보고 나서 시간을 보니 아직 오전 11시였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저녁 9시였다. 10시간이 남았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멍하니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유토피아를 나와버렸다. 혼자서의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내게 그곳은 전혀 유토피아 같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할 일이 없으면 할 일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하고, 모든 일을 완수해서 알차게 하루를 보내야만 안도하고 잠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자전거를 타고 루앙프라방을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사원에 다녀오고, 기념품 가게를 돌아다니며 흥정을 했다. 한국에서는 받아본 적도 없는 마사지를 두 번이나 받았다.
마사지사는 긴장을 풀지 못하는 내 몸을 주무르며 자꾸만 ‘릴렉스’라고 말했다. 마사지는 긴장을 풀고 몸을 이완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사지를 받는 부위가 아프거나 간지러울까 봐 내 몸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머리로는 긴장을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마사지를 받는 순간순간에는 그게 잘 안되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서 몸이 더 아픈 느낌이었다. 마사지가 끝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마사지도 즐기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었을까.
루앙프라방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면 시간이 빨리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내게 혼자 여행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과를 구성하는 모든 항목들이 완벽한 하루를 위한 수단이었던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 또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 시간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는 외국인들의 행위와 마사지를 받는 행위는 모두 그 자체로서 목적이었다.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유토피아는 그런 행위를 위한 곳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었다.
언젠가 루앙프라방에 다시 가보고 싶다. 중급자 코스를 웃으며 유유히 스키를 타며 내려오는 사람처럼 루앙프라방에서 혼자 여행하고 싶다. 목적 없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유토피아에 가서 몇 시간이고 누워 있다가 긴장을 풀어 마사지를 받고 싶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