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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로윈 Jan 08. 2019

여행을 왜 가냐면요

실패한 여행기 모음집 - 라오스(1)

    질리도록 여행했으니 당분간 한국에서 김치찌개나 실컷 먹고 가장 익숙한 우리 집에서 쉬고, 우리 동네에서 보고 싶던 사람들이나 실컷 만나야겠다, 고 생각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서 나는 또 ‘스카이스캐너’에서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다. 게다가 나의 여행은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도시의 전망이 훤히 내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여행이 결코 아니다. 나의 여행은 대개 이렇다. 한 방에 최소 8명은 들어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코골이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잠들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툭툭 가격을 흥정하거나, 흥정이 잘되지 않으면(사실 대부분이지만) 무작정 구글맵만 보고 걷는다. 물가가 비싼 지역에서는 ‘식사’보다는 ‘배를 채움’에 더 가까운 끼니를 먹고, 입장료가 비싼 곳은 외관만 바라봐도 충분하다고 합리화하며 되돌아온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나는 왜 배낭여행이 하고 싶은 것일까? 이유를 찾자면 몇 가지를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첫 번째 여행이 지나치게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 번째 여행지 라오스

    첫 번째 여행지는 라오스였다. 첫 여행을 가기 전의 나는 고시 공부로 인한 과잉불안 진단을 받고,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방구석에 누워만 있던 ‘루저’였다. (딱히 지금 위너인 것은 아니다)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목적으로 세상 모든 우울감을 안겨주고 얼마 남지 않은 의지마저도 모두 빼앗아버리는 약을 주기적으로 먹던 내가 침대에 누워서 하는 일이라고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일뿐이었다. 그때는 부모님이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쟤가 저럴까, 이런 마음이었나보다. 부모님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주 미약하게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빠 저 여행 좀 보내주세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께 여행 자금을 빌리고, 장소는 어디선가 들어본 라오스로 결정했다. 라오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신중하게 결정한 것은 결코 아니고, 당시에 누가 라오스를 다녀왔더니 좋다더라, 정도의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배낭 하나를 덜렁 메고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여행 계획은 단 한 줄도 짜지 않았다. 첫째 날 숙소도 잡지 않았다. ‘일단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이었다.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당시에 ‘유심’이 뭔지도 몰랐다. 출국하기 하루 전날 산 라오스 여행 책자 한 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당시의 내가 엄청난 용기가 있어서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배낭여행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용하다.)


    비행기가 비엔티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로 밖은 어둑어둑했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여행 책자를 보고 우여곡절 끝에 비엔티안 시내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밤 10시에 핸드폰은 불통이고,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골목을 여행책에 있는 지도 한 장을 펼쳐 들고 무작정 걸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움을 느꼈던 순간을 꼽자면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도 빛도 아무도 없고,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목적지 없이 걷는 기분. 처음 느껴보는 기분 속에서, 나는 라오스는 불교 국가라서 안전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평화의 주문을 외우며 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불이 켜져 있는 호스텔을 몇 개 찾을 수 있었지만, 호스텔 입구에는 하나같이 빈방이 없다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그렇게 호스텔과 호스텔을 전전하던 나는 결국 손님을 받을 수 있다던 호스텔을 겨우 찾을 수 있어서 가격도 묻지 않고 체크인을 했다. 방 안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내가 배낭여행을, 그것도 혼자서 왔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방도 생겼겠다, 바람을 좀 쐬러 호스텔 앞에 잠시 나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옆 골목에서 화장이 짙은 라오스인 여자 세 명이 스쿠터를 끌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두 유 원트 해피 마사지?” 다행히 해피 마사지가 무엇을 함축하는지는 쉽게 알아차려 “노 땡스”라고 거절할 수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이 고차원적인 비유법을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여자들이 지나가고 나니 툭툭 기사가 다가와서 또 말을 걸었다. “두 유 원트 붐붐? 마리화나?” 해피 마사지와 비교하면 꽤 고차원적인 비유였던 ‘붐붐’의 의미는 한참 뒤에 알게 되었지만, 마리화나라는 단어를 통해서 위험을 직감한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황급히 방으로 올라갔다. 라오스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7일 동안 라오스에서 머물면서 비엔티안과 방비엥 그리고 루앙프라방이라는 세 도시를 다녔다. 첫날의 (내가 자초한) 무서운 경험 이후에는 특별히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여행에서 만났던 동행 덕분이었다. 그렇다. 첫 번째 여행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던 이유는 바로 정말 멋진 동행을 만났기 때문이다. 방비엥에서 만난 형과 누나들은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주었다. 세 명이 함께 함께 여행을 온 형들은 갈 곳 없던 나에게 숙소를 제공해 주었고, 두 명이 함께 여행하던 누나는 유심이 하나면 충분하다며 남은 유심을 주셨다. 그분들의 은혜 덕분에 빈손으로 라오스에 도착했던 나는 남은 여행을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방비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친분을 유지하며 1년에 두세 번은 만나고 있다. 첫 배낭여행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었지만, 성공 경험과 앞으로 또 여행하고 싶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은 결국 사람들이었다. 내 생각에 여행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풍경도 아니고, 음식도 아니요, 바로 사람이다. 그것이 나에게 ‘붐붐’을 원하냐며 물어보는 현지 사람이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친동생처럼 대해준 한국 사람이든 말이다.      


    라오스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몇 가지 충고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첫날 숙소는 되도록 예약하시길. 그리고 해피 마사지 혹은 붐붐, 마리화나를 조심하시길. 좋은 인연을 만나서 좋은 추억을 만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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