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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Dec 29. 2023

어느 30대 중반 직장인의 점심시간 이야기

오늘 점심시간에는 신문 볼 결심을 했다. 점심식사를 간소화하겠다는 뜻도 담겨있다. 사실 먹보인 나에게 점심시간은 꽤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를 할애할 정도면 크게 마음을 썼다는 뜻이다. 7개월 전부터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 그동안 신문을 숙제처럼 보는 날들을 꽤 많이 흘려보냈다. 어떤 날은 보기 싫어서 헤드라인만 보고 탭을 닫기도 하고 어떤 날은 너무 버거워서 아예 패스한 날도 있다. 스스로 찾은 신문이지만 회색 지면 위를 가득 메운 작은 활자들이 상당 기간 동안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자발적으로 세상 일이 궁금해졌다. 이제 신문에 익숙해진 것 같아 조금 기뻤다.


신문의 시대는 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나는 신문을 새로 구독하고 싶었을까. 사실 4~5년 전에도 의식적으로 신문을 읽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출근 전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아침 7시에 신문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그때 기억이 나쁘지 않았다. 이후 이래저래 바빠서 꽤 오랜 기간 신문을 보지 못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 모르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차올랐다. 게다가 최근 유튜브를 시작한 것과는 모순되게, 언제부턴가 유튜브는 멀리하고 활자를 더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지고 있다. 유튜브의 아무개 콘텐츠보다는 좀 더 전문적이고 도움이 되는 콘텐츠에 닿고 싶었다. 그래서 신문을 다시 찾았다.


신문은 보통 여러 가지를 돌려보는 것을 선호하는데 정치색보다는 디지털 친화 정도와 UI를 중심으로 고른다. 종이신문을 온라인에서 그대로 구현해 주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지독하게 바쁜 세상이기에 중요도를 크기로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종이신문이 좋다. 물론 내게 있어 중요도는 최종적으로 내가 판단한다. 그런데 진짜 종이신문은 쓰레기도 나오고 냄새도 나고 손에 뭔가가 조금씩 묻어서 싫다. 그래서 웹상에서 이를 그대로 구현해 주는 신문을 찾게 된다. 그리고 폰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면서 회사 보안 프로그램에 방해받지 않는 신문이어야 한다. 그런데 찾아보면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약하다. 이런 필터를 거치면 1~2개밖에 남지 않는다.





점심은 편의점 김밥과 단백질 음료로 때우기로 했다. 연말이라 약속이 많아서 조금 가볍게 먹을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편의점 김밥은 아르마딜로 1:1 식단관리에서 코칭받은 대로 고른다. 분식집 김밥은 양이 생각보다 많고 정확한 영양 성분을 알 수 없다며 편의점 김밥을 추천하셨다. 김밥은 탄수 60 언저리, 지방 15(적어도 20) 아래, 단백질 20~30을 기준으로 골랐다. 조금 모자라는 단백질은 저당 단백질 음료로 채웠다. 셀렉스 프로틴 로우슈거 맛을 좋아한다. 그리고는 사무실이 있는 8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왔다. 매일 아침 오르는 계단이라 이제는 숨이 덜 찬다. ‘다시 숨이 차지 않으려면 한동안 계단을 안 오르면 될 텐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시작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고민했다.


자리에 앉아 김밥을 오물조물 먹으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기사를 보며 그동안 회피해 왔던 경매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배우 이선균의 죽음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와 검찰의 수사방식 등을 곱씹었다. 수능제도 개편사항을 보며 선택과목과 입시전략의 중요성, 커져버린 부모의 역할과 더 커져버릴 교육격차를 생각하니 씁쓸했다.



그리고 2023년 떠난 유명인들을 돌아보는 기획기사를 마주했다. 그들이 세상에 남긴 족적을 간략히 요약해 줬고 그들이 느낀 것을 토해 놓은 명언과도 같은 문장을 모아 놓았다. 그 말들 중에는 기억에 남기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한 사람의 인생 경험이 통째로 담겼다고 생각하니 더욱 값져 보였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을 선명하고 현명하게 모아주는, 내게는 제법 밀도 있는 말들도 있었고 최근 세계사 공부를 시작한 덕에 이전과는 달리 묵직하게 다가오는 말들도 있었다.


10명의 유명인이 남긴 10개의 문구 중 내가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메모로 남기고 싶었다. 이것들을 옮겨적으니 점심시간이 금세 끝나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이었다. 그래도 12월 28일 목요일 점심시간은 내가 내 점심시간의 온전한 주인이 된 날이었고, 내가 내 삶의 운전대를 잡은 느낌이 충만한 날이었다. 이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채우는 방법에 가까워지고 있다.


- 찰스 멍거
“반드시 똑똑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 티나 터너
“포기하거나 굴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삶은 결국 문을 열어주게 돼 있다”

- 매튜 페리
“유명해지는 게 인생의 정답은 아니었다”

- 헨리 키신저
“외교란 가능성의 예술이다”

- 리커창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인민을 품어야 한다”

- 사카모토 류이치
“인생은 덧없고 장자의 호접지몽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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