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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Feb 10. 2024

사범대 열풍에 사범대 간 사람이 의대 열풍을 보며,,

라떼는 교대/사범대 열풍이었는데,,,

30대 후반을 달려가다 보니 세상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살다 보니(?) 중고등학생 때 유행템이었다가 민망템이 되어 폐기처분했던 패션 아이템들이 돌아왔다. 폴로, 어그, 에어포스 등을 길거리에서 다시 마주할 때 기분이 묘하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하며 클래식에 대해 생각한다. 또 유치원 때부터 현재까지 한 생활권에 살다 보니 변화를 살갗으로 체감한다. 어렸을 적 살던 집은 동네 최고가 아파트로 재개발 됐고, 당대 최고 아이돌 god와 신화가 모델로 있던 교복 전문점 자리에는 프린트 카페가 생겼다. 기술과 산업의 흥망성쇠를 길거리에서 느낀다. 과거에 비추어 현실 세상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서 기시감을 느끼기도 한다. 매일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의대 열풍은 라떼의 교대 열풍과 겹쳐 보인다. 내가 대입을 준비하던 20년 전에는 교대/사범대 열풍이었다. 그때는 직장인이 수능을 다시 봐서 교대에 들어가기도 했다. 2024년 현재 교단의 인식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다. 당시 교대/사범대 입결은 의대와는 비교될 수 없겠지만 교대/사범대 입결 중에서는 2000년대 초반이 최고점일 것 같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2006년 재수를 했는데 외고 출신이던 재수학원 같은 반 친구가 연세대와 서울교대에 함께 붙었는데 서울교대를 갔다. 물론 선택에는 학과도 작용했을 텐데 연세대 무슨 과에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라면 오늘날은 학과불문 연세대에 진학하는 친구들의 수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요즘 교사들이 수능을 다시 봐서 의대에 간다는데 그 친구가 생각났다. 최근 소식은 모른다. 물론 그 친구는 교사가 정말 되고 싶어서 갔을 수도 있지만… 그랬길 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도 그때 사범대에 진학한 학생 중 1인이다. 사범대다 보니 학과에서 교사를 선택한 선후배들이 꽤 있었다. 덕분에 교사라는 직업을 오래,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임용고사를 꽤 오랜 기간 준비해 힘들게 교사가 된 것도 안쓰러워 보였는데 교사가 된 지금까지도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우리 과에서 교사를 선택한 친구들은 다른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 같은 찐(?)사범대 학과에 비해 모호한 전문성으로 ㅎㅎ 취업, 창업, 언론사, 공무원 등 여러 옵션 중 교사를 선택한 친구들이라 교직에 열정이 있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후배 카톡 프사에 있던 그림


나 역시 열풍에 휩쓸려 사범대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선생님을 간절히 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나름의 이유는 있다. 경우의 수를 굴려 선생님 말고 다른 진로를 도모할 수 있었던 교육공학과를 선택한 게 조금은 다행이다. 당시 PD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조사한 결과 PD가 되는 데에는 학과가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역사와 철학(윤리와 사상)에 관심이 있었는데 취업이 암울하다고 학교마다 제일 점수가 낮았다. 그래서 교육방송 PD라도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교육공학과에 진학했다. 사범대이기에 당대 유망직업인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자격도 얻을 수 있어서 수틀리면 임용고사를 준비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다 취직을 했는데 지금 의대나 로스쿨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나는 나를 몰랐고 세상도 몰랐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처럼 내 성향을 알고 현재의 교권이었다면 고민도 않고 신문방송학과나 사학과나 철학과를 갔을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내가 정말 원했던 직업인 PD가 됐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 같다. 신문방송학과에 갔다면 교내 방송국에 들어가거나 수업 과제 등 직접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PD를 열망하는 마음도 더 커지고,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 내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했을 것이다. 여러 요인들이 시너지를 더해 망설이지 않고 대학생 때부터 언론고시를 준비했을 것 같다.


흥미를 살려 사학이나 철학과에 갔다면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분야이기에 덕후 DNA 성향상 본격적으로 인문학 덕질을 했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방법을 익혔을 것이고 인문학적 소양도 높아졌을 것 같다. 그랬다면 PD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 과정이 나를 다른 직업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지금처럼 애매한 능력으로 삶의 갈피를 못잡지 않았을 것 같고, 가보지 않은 길이 눈에 밟혀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사범대 교육공학과에 들어와서 교육에 대한 도구나 학습방법론을 배우고, 기업 교육, 기업 인턴, 교생실습하는 삶을 살았다. 싫지도 않았지만 재미를 크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래서 적당히 했다. 학점도 적당히 받고 취업 준비도 적당히 했다. 취업도 졸업 전에 쉽게 됐다. 당시에는 HRD를 배우는 학과가 적어 희소성 덕을 봤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막상 회사에 들어가니 멘붕이었다. 일이 재미없고 직장 생활도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30대 직장인이 되어서 퇴근 후 PD 시험 준비를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억지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30대에 PD 준비를 시작하게 될 줄은 20살의 나는 몰랐을 것이다.


당시 내가 관심 있었던 것 중 또 다른 것이 역사나 철학이었다. 요즘 나는 퇴근 후 역사와 철학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고 있다. 세계사는 방대하고 철학은 너무나도 어려운데 재미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공부를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것을 사서 고생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의 관심이 이어진 것 같다. 취향은 소나무다. 시대에 따라 유행은 변했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당시 사범대 열풍 이유는 진로 때문이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대세 정답이었다. 당시에도 먹고사는 고민은 쉽지 않았다. ChatGPT는 없었지만 IMF를 겪은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고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교사’는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한 답이다. 당시 교사가 되면 방학이 있고, 직업이 평생 보장되고, 연금까지 나오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었다. 공무원 준비도 유행이라 노량진도 불야성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안정성이 큰 요인이었다. 문과는 교사/공무원, 이과는 대기업 취업이 쉬운 공대로 진학하는 것이 대세였다. 인문대와 자연대는 취업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선택지에서 지워졌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랬다.


결국 지금의 의대 열풍 또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다수가 내린 답이다. 의대 열풍을 넘어 광풍까지 된 이유는 직업과 소득의 안정성이 크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죽을 때까지 평생 보장되는 직업에 고소득 명예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을 서울의대에 보냈다는 엄마가 출연한 유튜브를 보니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돼서 요즘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한다고 했다. 의대에 진학하면 입학을 하자마자 고민 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데 자연대, 인문대에 진학해서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평생 해야 하기 때문에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민과 불확실성과 실패를 기피하는 현시대 상황의 방증이기도 하다. 공감이 되면서도 의아했다.


실제로 나 또한 회사에서 독립한 나를 상상하며 다른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데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없는 직업을 만들어야 될 판이다. 회사원 월급이 없을 때 스스로를 어떻게 먹여 살릴지 현실의 먹고사는 것을 궁리하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면 굶을 수도 있다는 궁지에 몰리며 나를 더 치열하게 알아가고 있다. 더 최악인 점은 앞으로의 시대는 어떤 시대가 될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어떤 것들이 바뀔지 모르겠다. 가장 어려운 고민이지만 가장 필요한 고민이라 느끼며 하고 있다. 대기업 외 돈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모델 결핍 시대의 몸부림이다. 그래도 배곯지 않는 직장인의 배부른 고민이라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로 의대를 희망하는 것은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진로 고민이 필요가 없어서 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이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완료한 것이 아니라 미루는 것일 수 있다. 과거 진로 고민을 미래에 미루고 사범대에 진학했던 나, 직장인이 되어서 또 진로를 고민하는 나와 내 친구들이 산증인이다. 교권 하락, 교원 감축 등으로 인기가 시든 교대/사범대처럼 의대도 지금의 위상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원이 증원되고, 기대수명 연장으로 전문직인 의사가 계속 누적되고, AI가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이 의사가 되어 지금의 위상이 하락한다면 그때에도 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할 만한 사람이 의대에 가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좋은 선택은 주변에 상관없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세상 이치가 30대 후반이 되니 보인다. 경험이 기준을 만들어준다. 환경은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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