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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19. 2024

스티브 잡스 패션, 정답일까?

육각형 인간이 되기보다 육각형의 삶을 살고 싶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의 패션에 대한 글을 봤다. 늘 회색 티셔츠만 입던 그였는데 그의 단출한 패션에 변화가 생겼다는 글이다. 본인 생일파티에는 검은색 프린팅 티셔츠에 금색 체인 목걸이를 하는가 하면 어느 인도 재벌가 결혼식에는 호랑이가 그려진 옷을 입고 나타났다고 한다. 여전히 옷을 못 입는 것은 맞는데..ㅎㅎㅎ 돈도 많고 머리도 좋으니까 언젠가는 옷을 잘 입고 나타날지 모른다. 어쨌든 그의 패션이 다채로워져 이목을 끌었다. 과거 그는 옷을 고르는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 회색 옷만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스티브 잡스에서 영향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단벌 패션의 원조다. 검은색 터틀넥에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는 그의 상징이었다. 내가 본 그는 패션 감각이 없지 않다. 검정 터틀넥은 플리츠 디자인이 시그니처인 일본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디자인한 옷인데 내가 참여했던 패션스터디장님이 좋아했던 브랜드였다. 게다가 리바이스 501 하면 핏이며 색이며 근본 중의 근본이고 뉴발란스는 자연스러운 멋을 더해 나름의 스타일을 갖췄다. 소싯적 히피였으며 그 시절 인도 배낭여행까지 다녀온 힙스터 조상님이자 고급스러운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던 그만의 미학적 관점이 배어있다. 그는 다른 의사결정할 것이 많다며 옷에 대한 의사결정은 이것으로 마쳤다.


(좌) 미드센추리 가구에 앉은 스티브 잡스 (우) 이세이미야케 남성복


저커버그 또한 잡스와 비슷한 이유로 단벌신사를 자처했다. 대학생 때 창업한 스타트업을 글로벌 IT대기업으로 만든 그는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삶의 돌봐야 될 여러 부분 중 일에 가장 에너지를 쏟아 가장 좋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내가 창업 교육을 들었을 때에도 스타트업 창업 멤버는 주 100시간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주 52시간 근무가 일반적인데 이의 두 배다. 주 100시간 근무는 퇴근 이후의 삶은 전혀 없고 주말도 반납해야 한다. 여가 생활은 물론 운동이나 요리로 내 몸을 챙기는 일은 꿈도 못 꾼다. 일에 삶을 잡아먹힌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스티브잡스의 단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현실에 비춰봤을 때 저커버그의 옷에 대한 입장 변화는 흥미롭다. 어떤 글에서는 그가 이제 40대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젊은 괴짜 너드 CEO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중년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그래서 그가 패션에서도 여유를 찾은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런 변화를 보고 사람들은 그가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로 바뀐 것 같다며 그가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퇴사를 하기 전부터 나는 일에 잡아먹힌 삶을 되도록 지양했다. 그래서 퇴근 후 운동이나 글쓰기, 아이패드 드로잉, 요리, 드럼, 랩, 심지어 패션과 화장까지 배우러 다니며 일 말고 나의 삶을 채울 수 있는 일을 벌이고 다녔다. 뭔가 대충 하기에는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 글쓰기 학원에 천만 원을 써서 브런치 작가도 하고 있고, 아이패드 드로잉 클래스를 들어 이모티콘 작가도 꿈꿔볼 수 있었고 1:1 화장 클래스와 패션스터디모임도 나간 덕에 외모도 적당히 꾸밀 수 있었다. 랩도 배운 덕에 노래방에서 시원하게 랩을 뱉어내며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즐겁기도 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물론 내 삶은 저커버그나 잡스처럼 성공하지도, 크게 부를 이루지도 못했다. 변명으로 들리지만 나는 그렇게 큰 성공을 바라지도 않고 어느 한 분야만 특출 난 삶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들은 옷고를 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줄여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내게 더 행복한 삶은 다양하게 균형을 이룬 삶이다. 일과 부 뿐만 아니라 가족, 사랑, 건강, 취미, 여가, 외모 등 모든 부분에서 나 스스로 보기에 만족할 수 있는 정도로 적당히 성취하며 스트레스받지 않고 적당하게 행복한 삶을 꿈꿨다. 퇴사를 결정한 원인 중 하나도 회사 스트레스 때문에 나머지 내 삶을 돌볼 에너지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일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큰 성공을 이루는 것은 힘들지만 모든 분야에서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사는 삶도 결코 낮은 목표가 아니다. 이는 요즘 이야기하는 ‘육각형 인간’을 찾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어려움이다. 요즘 결혼 상대로 외모, 성격, 학력, 직업, 자산 등 모든 부분에서 평균 이상인 육각형 인간이 인기라고 한다. 결혼정보회사 대표들은 유튜브에 나와 육각형 인간을 찾는 사람들을 호통하며 꾸짖는다. 많은 회원이 “모든 분야에서 평균 정도만 되면 돼요.”라고 말하지만 그런 사람은 희귀하다며 이런 육각형 인간과 결혼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원하는 것 한두 개만 욕심내야 겨우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육각형의 삶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육각형의 삶을 지향하려고 한다. 육각형 인간이 무조건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삶에서는 각 요소에 대한 육각형을 유지하는 게 더 행복하다고 믿는다. 일에만 집중하며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삶은 내 기준에선 행복하지 않다. 옷을 쇼핑하며 나에 대해 알고 나를 표현하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했다. 또한 일과 성공에만 집중하면 가정과 건강을 잃고, 가정과 건강에만 집중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일과 가정만 돌보면 나 자신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골고루 돌보며 삶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또한 욕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육각형의 크기와 속도에 집착하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족할만한 최소한의 육각형의 크기를 잘 알고, 그것을 목표로 하며, 느리지만 모든 것을 갖춰가며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서 퇴사 후 밥벌이에만 몰두하지 않고 요리도 배우고 운동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 퇴사 이후의 삶은 이 육각형을 내가 더 잘 다룰 수 있고 잘 다뤄야만 하는 상황임을 매일 느낀다. 이에 다가가기 좋은 여건이기도 하다. 시간과 자원을 내가 가지는 목표만큼 운용할 수 있어 감사하다. 다만 원하는 것을 다 가져가되 욕심만은 부리지 않고 천천히 가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있는 중이다. 육각형 인간이 되기보다는 육각형의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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