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면접 과외 체험기
30대 중반 여성의 이직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희망했기에 더더욱 힘들었다. 경력도, 연봉도 스타트업에서 원하는 조건이 아니었다. 서류에서 너무 많이 탈락했다. 떨어진 곳이 2-30 군데는 됐을 것이다. 운 좋게 규모가 큰 스타트업 한 곳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그 역시도 탈락했다. "어떤 스타일의 상사와 일하기 힘든가요?"라는 질문에 잘못 걸렸다. 에둘러 말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현 직장 상사 험담을 하고 말았다. 하이킥 감 흑역사만 생성하고 나왔다. 서류도 면접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면접도 보면 볼수록 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잇따른 서류 탈락으로 면접 기회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서류를 합격했을 때 면접도 한 번에 붙어버려야겠다고 전략을 세웠다. 지금 생각해도 똑똑한 전술이었다. 모의면접이라도 보겠다는 심산으로 면접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강남의 한 스피치 학원을 찾아갔다. 그렇게 상담 실장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면접 학원은 역시나 비싼 패키지를 추천했다. 그중 끝판왕인 1:1 과외를 제일 강추했다. 상담 실장은 맞춤형이라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시간X5회에 100만 원이었다. 비쌌다. 누군가는 경력직 면접에 과외도 기함할 노릇이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비싸기까지 하니 과하고 또 과하다고 생각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PT, 필라테스 1:1 개인 레슨으로 1:1의 효과를 몸소 체험했던 터라 고민이 됐다. 어떻게든 현 회사를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꺼이 100만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수업은 그다음 주부터 시작됐다. 첫 시간부터 미소를 장착하는 연습이 시작됐다. 평소 웃을 일이 없었던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미소를 항상 머금되 입과 눈 둘 중 하나만 웃지 않고 모두 웃어야 해요.", "입꼬리도 한쪽만 올리지 않고 양쪽 다 올리세요. 썩소 같아요." 선생님이 이렇게 미소를 강조한 것은 웃지 않고 대답을 하면 회사에서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웃는 게 중요한 일인가. 안 웃어도 힘든 것을 꾹 참고 이 악물고 버티면 안 되는 것일까? 웃을 일이 없는 회사에서 웃기 위해 100만 원을 투자하는 이 상황이 더 웃길 뿐이었다.
면접 학원에서 교육받은 내용 중 외적 내용 교정의 비중이 컸다. 회사는 겉치레가 중요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소 탑재 외에도 교정받을 것은 많았다. 풀어헤친 머리는 깔끔하지 않으니 묶어야 했고 사무직 10년을 하며 얻게 된 굽은 어깨도 펴야 했다. 복식호흡, 발성, 발음까지도 코칭받았다. 면접복장도 새로 사야 했다. 보통 ‘유관순’이라 불리는 면접 복장이었다. 내 옷은 신입사원 때 이후 옷장에 10년간 묵혀두었다. 주름지고 광택이 나면서 어벙한 핏의 유관순은 더 이상 경력직에게 먹히지 않았다. 좀 더 핏 되고 광택 없이 쌈빡해 보이는 옷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갔다. 100만 원을 투자했다. 과외비와 합쳐서 200만 원이었다.
물론 외적인 것만 코치를 받은 것은 아니다. 답변 내용도 대수술을 받았다. 답변 하나 하나에 자기 PR을 티 안 나게 숨겨두었다. 쉬는 날에는 등산이나 수영을 하러 간다고 말하며 나의 활동성과 부지런함을 넌지시 던지는 식이었다. 답을 말하는 방식도 코치받았다. 면접관에게 두괄식으로 떠먹여 줘야 했다. 주장-설명-재주장의 ‘주장 샌드위치’를 한입 거리로 만들어줘야 했다. 샌드위치 기법은 유명한 면접 답변 방식이다. 이론 수업의 핵심은 면접관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론 이후는 실습이었다. 외적인 부분, 답변 성형을 거친 뒤 모의면접의 연속이었다. 모의면접, 동영상 촬영, 피드백, 교정이 반복됐다. 나의 진짜 모습 중 회사에 적응을 잘할 것 같은 선택적 답변만 늘어놓았다. 겉모습 또한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외모와 복장, 애티튜드를 장착했다. 이렇게 회사형 인간으로 치장한 결과는 확실했다. 어렵게 잡은 1회의 면접 기회에서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왜 면접에서 웃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회사에서는 솔직하면 안 되는가. 회사는 이번에도 꾸며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회사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