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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23. 2021

기획안 최최최종과 오리지널리티


모든 직장인의 폴더에는 공통적인 파일명이 있다. 그것은 확장자도 아니면서 확장자와 유사하며 일정한 규칙을 띠고 있다. v1, v2,...v6 이나 진짜 최종, 최최종 따위다. 파일의 정체는 기획안이다. 회사마다 불리는 이름과 형태는 다르더라도 직장인이 만들어내는 것 중 많은 것이 기획안이다. 직장인을 괴롭게 하는 것중 기획안의 지분이 크다는 소리다.


기획안은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 디폴트다. 그래서 어떤 것이 최종 파일인지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기획안의 목적은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인데 보고할 때마다 고쳐야 한다. 하도 많이 고치다 보니 처음부터 상사가 쓴 것처럼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점점 내 의견보다 회사와 상사의 의견을 앞세우는 것에 익숙해진다. 어차피 상사 의견대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가 쓴 기획안인데 나는 없다.


10년의 직장생활 결과 상사의 생각을 내 생각과 바꿔치기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이것을 잘하는 직원이 회사에서 인정받는다. 피드백을 들으면 '네 알겠습니다.', '네 수정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말들만 반복하면 모든 일이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생존방법이다. 개인은 사라지고 우리 팀의 어느 직급인 아무개 사원, 껍데기만 남았다. 회사에서 내 영혼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매번 상사의 의견대로 해야 하니 더 나은 것을 만들려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더더욱 포기했다. 시키는 것만 하게 됐다. 일이 더 하기 싫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회사에 환멸을 느끼고 퇴사를 마음먹게 되나 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많은 회사에서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저성과자다. 저성과자 중에는 사고를 일으키는 직원도 있지만 생산성이 낮은 직원도 있다. 일을 안 하고 논다고 여겨지는 직원들이다. 이들이 저성과자가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놀라운 점은 고성과자가 저성과자로 돌변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변절(?)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 최최최종 파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가 지워진 기획안이 이들을 멈춘 것 아닐까. 이들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팁이 힙합 안에 있다고 믿는다.


힙합 하면 개성 있는 래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힙합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오리지널리티이기 때문이다. 타이거JK는 랩에서 리듬, 플로우, 운율, 메시지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자면 오리지널리티라고 말했다. 랩만 들어도 '이건 타이거 JK다'라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느낌은 랩톤에서도, 가사에서도 나올 수 있다.


힙합에서는 개성이 확실할수록,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더 주목을 받는다. 결국 고유성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는다. 그것을 바탕으로 아티스트의 음악과 부는 자라난다. 오리지널리티는 단점마저 생산적인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 타이거JK는 평소 단점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오히려 랩에서는 멋있는 스타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래퍼 머쉬베놈이 대표적인 예다. 머쉬베놈은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도 목소리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성대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다 그는 이 목소리가 오히려 귀에 꽂힌다고 생각해 이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본인만의 충청도 플로우를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쇼미더머니 준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결국 단점이 남들과 차별되는 개성과 매력의 오리지널리티가 되어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래퍼들은 열심히 하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열심히 하면 단점까지도 내 오리지널리티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되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퀄리티에도 공을 들이게 된다. 이는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과도 관련 있다. 자아가 실현된다는 성취감을 주는 것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긍정이 된다. 올라간 자존감은 또 다른 성취로 선순환을 이끈다. 생산적 시스템이다.


힙합의 오리지널리티 개념은 기업의 환경에 도입해봄 직한 문화다. 수직적인 체계에 개인의 개성이 가려지는 곳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며 개인이 더 부각되어, 단점도 장점으로 만들면서 고성과자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상상해본다. 최최최종은 개인의 개성을 지우는 문화다.


물론 예술과 직장생활을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성공적인 방법이라면 도입해봄 직하다. 특히 열정이 없다고 악명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를 움직이려면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좀 더 인정해주는 미덕이 필요하다. 개성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지 모른다.



난 몰러유 그딴 거 나는 잘 몰러유

궁시렁 시부렁 몰러유

한판을 붙어유 Let's get it

난 몰러유 그딴 거 나는 잘 몰러유

공무원 언제쯤 붙어유?

듣기가 싫음 좀 붙든가

몰러 몰러 몰러 몰러

여백의 미

- 머쉬베놈 <몰러유>



어디서 배운 버르장 멋 그려 안 그려 어 그려

어디서 배운 버르장 멋 그려 안 그려 어 그런가?

어디서 배운 버르장 멋 그려 안 그려 어 그려

어디서 배운 버르장 멋 그려 안 그려?

그려 안 그려 어 그려 난 큰 그림을 그려

그려 안 그려 어 그려 내 정신은 고구려

어디서 배운 버르장 멋 그려 안 그려 어 그려

버르장머리 없어 생긴 버르장멋

- 머쉬베놈 <버르장멋> (Feat. 김응수 a.k.a 멋이간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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