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팀장 되기 싫은데요." 팀장님께 팀장 리더십 실시안 보고를 하던 중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주워 담고 싶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 이미 늦었다. "아 그래요? 나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팀장님은 뒷말을 잇지 않으셨다. 나도 팀장님도 씁쓸했다.
최근 자주 했던 생각이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것 같다. 어찌하다 보니 5년째 팀장 리더십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팀장 교육을 준비하기 전 팀장님들을 인터뷰하곤 한다. 여느 직장인들이 모두 그렇듯 팀장님들도 모두 힘들다고 하신다. 팀장쯤 되면 회사 생활이 편해져야 되는 게 아닌가? 팀장이 됐는데도 회사 생활이 어렵다니 슬펐다.
회삿밥을 10년 가까이 먹으며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자주 그렸다. 회사를 더 다닌다면 어떤 모습일까? 회사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세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었다.
첫 번째로 임원이다. 이 선택지는 애초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입사 1년 차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일단 임원 수가 적으니 될 확률이 낮다. 회사는 적은 확률에 목맬 정도로 애쓰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회사와 맞지 않음을 매우 일찍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지는 아무런 보직이 없는 부장이다. 이는 동직급에서 어느 정도 경쟁에 밀렸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불안 불안한 상태다. 그리고 자칫하다 팀장이 될지도 모르는 신분이다. 마치 피구 시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공을 요리조리 잘 피하다가 어쩌다 최후의 1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어찌 됐든 위태위태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마지막 선택지는 팀장이 되는 것이다. 팀장을 시켜주지도 않을 것 같지만 나는 팀장이 되기 싫었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팀장님들처럼 되기 싫기 때문이다. 여태껏 만났던 팀장님들은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성품을 뛰어넘어 그 자리가 주는 특성으로 보였다. 팀장님들은 여러 가지 것들에 꼼짝 못 하는 사람들이었다.
팀장은 임원에게 꼼짝 못 했다. 업무에서 나아가 자유시간까지 임원에게 잠식당했다. 그들은 평일 저녁밥을 회사에서 먹고 갔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게 취업규칙에 있는 줄 알 것이다. 임원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러기이거나 돌싱이거나 어떤 사연인지 혼자된 임원이 있다면 무엇이든 먹고 가야 했다. 술을 좋아하는 임원이라면 술까지 먹어야 했다. 주말 또한 임원이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산을 좋아하면 산에, 골프를 좋아하면 골프를, 사우나를 좋아하면 사우나를 같이 가야 했다. 팀장은 업무부터 취미까지 상사의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았다.
팀장은 회사에게 꼼짝 못 했다. 까라면 다 까야했다. 대부분의 회사는 팀장을 중심으로 일이 돌아간다. 경영진의 경영방향은 팀장을 통해 팀원에게 내려온다. 이런 지시들은 팀원의 입장에서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직원들은 까라면 까로 모든 것에 복종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팀장님에게 반발을 하기도 하고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나 또한 전자와 후자의 스탠스를 번갈아 취하며 팀장님을 괴롭혔을 것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팀장은 아래 직원에게 가장 욕을 먹는 존재였다. 이렇게 팀장님에게 받은 불만을 글로도 남길 정도니까 말이다.
팀장은 회사와 임원의 총알받이였다. 회사와 임원은 팀장에게 애들 관리하라고 말하고 팀원들에게는 사람 좋은 척하는 경우가 많았다. 팀장이 악역이 되는 구조였다. 팀장님이 총알받이가 된다는 것을 직원들은 모르고 있지 않다. 팀장님은 위에 복종했지만 아래에서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내게 팀장이란 싫기도 했지만 안쓰러운 존재였다.
세 개의 회사를 겪으며 팀장의 공통점은 좀 더 또렷해졌다. 팀장 리더십 교육을 준비하며 몇 년 간 100명에 가까운 팀장님들과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내가 겪은 일들이 일부가 아님을 확신하게 됐다. 보고서용의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말하자면 팀장님들의 책임은 비대하고 권한은 없었다. 경영진을 대신해 회사의 지시를 팀원에게 전달하지만 MZ세대를 설득할 무기가 없었다. 당근도 없는데 뭐만 하면 채찍이 됐다. 많은 언론을 통해 MZ세대를 설득하는 게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팀장은 MZ에게 어떠한 베네핏도 줄 수 없다.
팀장 스스로에게 주어진 팀장수당도 크지 않다. 주어진 욕받이 역할에 비해 팀장수당은 터무니없이 적은 것 같다. 솔직히 많았어도 문제다. 그 돈 받으면서 일을 그렇게 한다고 팀원들에게 욕을 먹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팀장님들은 아래 위로 낀 샌드백 같은 존재가 되었다. 팀장에게는 회사의 요구를 거절할 자유는 없고 MZ세대에게 휘두를 권력도 없다. 정말로 팀장이 되고 싶지 않다.
팀장은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 검증을 받은 인재들이다. 물론 팀장 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팀장이 된 경우도 있긴 하다. 그 경우는 제외한다. 검증된 인재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쥐꼬리 같은 팀장 수당을 받으며 자유를 제한당한다.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해야 하고 임원과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 같았다. 이들이 받은 검증은 회사와 임원을 위해서 얼마나 더 까라면 깔 수 있을지였다.
게다가 조직에서 인정받는다고 하지만 그다지 직무전문성이 생긴 것 같지도 않다. 기술직이 아닌 이상 회사와 임원의 말을 잘 전달하는 것이 이분들의 전문성이다. 회사에 나가면 이분들이 뭘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팀장 하면 그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회사에 있다가는 그냥 이분들처럼 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롤모델을 찾지 못했다. 아 오히려 길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분들처럼 되기 싫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가진 역할, 누리는 권력이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짊어지는 책임, 성과에 대한 압박, 어떨 땐 더 심해 보이는 제약과 속박에 불행해 보이기도 한다. 직무에 대한 전문성도 많지 않아 보이고 일하면서 보람이나 만족감을 느끼지도 않아 보인다. 만약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밀레니얼 중에는 임원, 팀장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임원, 팀장 외 다른 롤모델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결국 회사에서 롤모델은 없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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