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 Oct 23. 2021

솔직한 개인주의자의 솔직한 경조사에 대한 단상

회사 경조사는 힙합이 아니다

 병에 걸렸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못하는 병이다. 악성인 데다 불치병이다. 슬프다. 이렇게 태어났고 바꿀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회사에서 안타까운 결말을 맞게 된다는 것을 이미 나도 알고, 많은 사람들도 알고 있다. 회사에는 나를 어렵게 하는 것이 발에 차이게 많다. 숨만 쉬어도 고개만 돌려도 나타난다. 늘 회사에서 영혼 없이 살고 있다. 슬픈 것은 영혼이 없는 것도 티가 난다는 점이다. 최악이다.


회사에는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정말로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경조사다. 나 같은 성격은 경조사에 대한 가치관도 분명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축하하고 위로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조사는 참석하거나 마음을 보내고 싶지 않다. 진심이 아니라면 허례허식으로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이런 신념은 회사에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조사 때면 불만족스럽거나 답답한 적이 많았다.


물론 회사에서도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축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회사에서는 친하지 않더라도 경조사를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조금만 업무적으로 엮여도 챙겨야 할까? 기준이 애매하다. 고민된다. 확실하게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아닌 이 고민되는 기분이 싫다. 같은 팀이면 무조건 챙겨야 하는 것은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문화다. 같은 팀이어도 안 친할뿐더러 진짜 몇 개월에 한 번 대화할 때도 있다. 진심이 담겼을 리가 없다. 그러나 진심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상관없다. 그러나 내 의사와 달리 답은 정해져 있다.


가장 극단적일 경우는 내가 싫어하는 팀원 결혼식의 경우다. 소중한 주말에 시간을 내 결혼식에 가고 돈도 내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며 가장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사를 챙겨야 한 적이 있다. 매일 보는 사이라 5만 원은 적게 느껴져 10만 원까지 냈다. 회사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보지 않았을 사이다. 내 결혼식에도 초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분도 마찬가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런 관계였음에도 같은 팀이라는 허울에 묶여 서로의 경사를 나눠야 했다. 당연히 퇴사하고 연락은 끊겼다. 시간과 돈이 아깝다.


그렇게 싫어했어도 10만 원 내고 참석했던 이유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우선 당사자의 시선이다. 매일 보는 데다가 같이 페어로 업무를 하는 사이였는데 안 좋은 사이가 더 악화될까 우려됐다. 그러면 파국이다. 불참 시 팀원들, 팀장님과 상무님이 나를 얼마나 안 좋은 인간으로 볼지도 염려됐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결혼식에 참석 안 하는 것을 보고 인성이 글렀다고 판단당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싫어하는 삶의 결혼식에 안 가는 것과 인성을 연결 짓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는 내 고유의 생각을 인정해주지 않는 곳임을 알기에 원만한 회사 생활을 위해 회사의 기준에 맞춰야 했다.


회사의 기준에 맞춰 답이 안 나오는 경우는 주위에 물어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됐는데 팀원이 결혼했을 경우, 팀장이나 임원의 빙부상 등 여러 케이스였다. 도대체 얼마를 내야 적당한 걸까. 과장이 됐으니 더 내야 되나, 임원/팀장한테 내는 것이니 더 내야 하나, 안 가면 덜 내도 되나 등 정말 끝이 없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스스로도 다른 회사원에 비해 개인적 성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내 판단을 믿지 못한다. 내뜻대로 했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사내 평판은 쑥대밭이 되고 인사상의 불이익까지 걱정해야 한다. 내 시간과 돈을 써야 하는 것을 주위에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이 늘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회사 경조사는 주위에서 하는 만큼 하지 않으면 욕을 먹으니 어쩔 수 없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내 사소한 결정에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고 그에 따라야 하고 대세의 정답을 찾는 일은 늘 힘들고 내키지 않는다. 살아온 인생과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은 개별로 다를 수 있는 것인데 조직 내에서는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민다. 게다가 그것이 나와 같을 확률은 복불복이고, 대세를 따라야 한다. 허례허식뿐인 경조사 문화에는 진심이 빠져 있다. 왜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축하하고 위로할 수 없는가. 회사 경조사는 힙합이 아니다.


그러나 힙합에서는 정 반대다. 힙합의 'Keep it real'이라는 문화 때문이다.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힙합에서는 자기 가사는 꼭 자기가 써야 하는 룰이 있다. 물론 그 가사에는 내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어야 한다. 힙합에서 진심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힙합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독특하다.


래퍼 더 콰이엇은 ‘Keep it real’한 가사를 쓰다가 리스너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매번 같은 내용의 가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말에 대한 그의 대답이 재미있다. 그게 요즘 본인의 생활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몇 년째 차 사고 그 얘길 랩으로 하고, 차 바꾼 다음에 그 얘길 랩으로 하면서 살고 있는데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건 힙합이 아니지 않냐”라고 반문한다. 차를 바꾼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차를 바꾸는 것이 힙합이다. 진짜 힙합 팬이라면 그 말을 듣고 반박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 또 힙합이다.  


래퍼 뱃사공은 Keep it real을 유머러스하고 진정성 있게 드러내는 아티스트다. 특히 <다와가>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힙합 음악을 하기 위해 30대가 돼서 까지도 알바를 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에서 그의 '알바담'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성질을 못 이겨 일자리에서 잘렸다고 했다. 순탄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돈이 없어도 버릇이 없다고 했다. 그의 성격도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본인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낸 이런 가사에서 Keep it real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알바도 성격도 순탄치 않은 이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굳이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까지 한 덕에 힙합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더 잘 와닿는다. 대단하다. 그리고 부럽다. 그 누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순탄치 않은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고집을 지키기 위해 돈에 끌려다니지 않는 뱃사공은 힙합에서는 쓸데 많은 본보기다.


힙합의 솔직한 태도인 keep it real을 좋아한다.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직장 생활에 찌들수록 힙합을 더 찾게 되는 이유다. 한 살 한 살을 먹어가며 눈칫밥도 같이 먹는다. 통념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내 행동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살다 보니 내가 진짜 누군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고집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아니었다. 고집은 삶에서 지워지기 쉬운 단어인 것 같다. 그러나 고집은 힙합에서는 keep it real의 열매를 먹고 개성으로 꽃을 피운다.




노래를 내려 알바했고

성질을 못 이겨 잘리기도 했어

나를 동정한 적은 없지

돈이 없어도 버릇없지

Fuck you 날렸던 쇼미 심사 제의

솔직히 했지 고민

어쩜 모든 게 다 쓸데없는 고집

근데 그걸 버리면 난 뭐지


<다와가> -뱃사공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혹시라도 제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매와 많은 사용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이모티콘 구경하러 가기

https://e.kakao.com/t/cafe-moment?t_ch=share_link_web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