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글쓰기 강의 노트]를 통해 드리고 싶은 말씀의 핵심은 오리엔테이션(OT)에 다 들어 있습니다.
OT 1 : 미디어 글쓰기는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 쓰기
OT 2 : 남의 말을 잘 들어야 내 글이 잘 써진다(잘 듣는 사람(Good Listener) 되기)
OT 3 : 시작이 좋은 글이 끝까지 좋다(좋은 첫 줄(Good Lead) 쓰기)
작문에 대해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고 말씀드리고 있는 중인데요. 작문도 OT 내용의 토대 위에서 쓰여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래 주시면 여러분은 저에게 ‘굿 리스너(Good Listener)’이십니다.
지난 시간에 [작문 주제 :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대해 쓴 글 중 좋은 평가를 받은 글 두 편을 소개드렸는데요. 오늘은 아쉬움의 리뷰를 보여드립니다.
먼저 ‘OT 3’에서 강조했던 ‘좋은 첫 줄(Good Lead) 쓰기’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리드)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잘 풀리면 잘난 자신의 덕이고 안 되면 조상을 잘못 둔 탓이라고 하였다. 회사에서 승진을 하게 되면 내가 열심히 일한 결과이고 라이벌이 승진을 하면 분명 아부를 떨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뜻을 가진 내로남불은 어쩌면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태도이다. 왜 사람들은 나한테 더 관대할까? 이는 ‘자존적 편견’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자존적 편견이란 좋은 결과에 있어서 나에게는 내적 귀인을, 남에게는 외적 귀인을 적용하는 현상이다.
(리뷰)
평범한 리드의 아쉬움. 작문 주제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데 본문에 그 내용을 다시 쓸 이유가 있을까요? ‘자존적 편견’을 착안했다면 체감할 수 있는 사례와 명료한 논리 전개로 그에 대한 글을 처음부터 이끌어 갔으면… 글 중반부에 [한국 사회는 비교적 획일화되어있는 탓에 더 쉽게 타인을 판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요. 이렇게 일반화하는 대신, 그렇게 획일화돼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장면이나 사례를 소개하면 더 좋습니다.
(리드)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관용어구가 하나 있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약자이다. 주로 정치인이나 그의 지지자가 상대 진영에서 저지른 비위 사실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을 쏟아 내지만, 정작 본인들의 비위 사실에 대해선 침묵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리뷰)
리드를 내로남불 용어 설명으로 시작한 것부터 아쉽습니다. ‘내로남불에 대해 쓰세요’라는 요구에 대한 첫 대답이 “저는 내로남불에 대해 쓰겠습니다”라고 하는 셈입니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논리적 전개’를 기대하는 논술과 달리, 작문은 글쓴이 특유의 창의성과 개성이 잘 드러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논설 또는 사설처럼 읽힙니다. 마지막 문장([‘내로남불’이 없어져야만 할 것이다])은 ‘공공질서는 잘 지켜야 할 것이다’와 같은 느낌이 드네요.
모든 글에서 리드(첫 줄 또는 첫 줄을 포함한 도입부)는 정말 중요합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제시어로 줬는데, 내로남불 용어 설명으로 리드를 시작하면 글을 읽는 흥미가 급감할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키워드 자기소개서 쓰기 1]에서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라고 자기소개하고 싶을 때) ‘성실’이란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는 게 더 좋다. 글을 읽는 사람이 저절로 ‘이 사람은 참 성실하구나’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고수(高手)의 글이다”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작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로남불’이란 제시어를 받았을 때 내로남불이란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등장시키면서, 읽는 사람이 ‘이 작가는 내로남불을 이렇게 보는구나’ ‘내로남불을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에 담아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써야 고수(高手)입니다.
그런 고수(高手)가 되시려면 ‘하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쓰십시오’.
아래 리뷰는 그 아쉬움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내로남불의 유래, 야당 대표의 구속영장에 등장한 내로남불, 창작 뮤지컬 ‘쇼맨’에 등장하는 내로남불, 공감과 성찰 등등. 이야기의 갈래가 많으면 독자가 집중하지 못하고 다 읽고 나서도 ‘글쓴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라고 허탈할 수 있습니다. 창작 뮤지컬 ‘쇼맨’은 글쓴이의 생각에도 충분히 대중적이지 않으니, 그 등장인물과 줄거리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나는 쇼맨 얘기를 반드시,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쇼맨으로 시작해서 쇼맨으로 마무리했어야 합니다(이 역시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요…) 글쓴이가 중간에 던진 질문([내로남불은 정말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역할만 수행할까?])에만 천착해서 리드-몸통-마무리 구성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대화체로 시작하는 리드의 형식은 괜찮았으나 그 내용의 임팩트(impact)가 약하고 다소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두 번째 문단에서 내로남불 용어 설명이 등장하는 것도 아쉬습니다. 불필요합니다. 글쓴이에게서 자세하고 생생하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한두 줄씩만 언급돼 있습니다. [청년도 자신이 하면 당연한 주장이고 (비슷한 얘기라도) 어른의 말씀은 듣기 싫은 잔소리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 사실 심리학에서는 ‘그건(내로남불은) 어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하곤 한다 / 로맨스인지 불륜인지에 대한 시시비비에서 벗어나 ‘나’와 ‘타인’의 문제로 볼 때 우리에게 많은 함의를 던진다] 이것들 중 하나를 골라 재미있게 풀어썼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등굣길 지하철 2호선’의 숨 막히는 풍경을 통해 내로남불을 다룬 착안이 좋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내로남불’([오늘까지 불륜하고, 내일부터 로맨스 하자 / 오늘은 일단 내가 살고 보고, 내일부터는 타인도 배려하고 공공질서도 지키리라])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착안을 좀 더 생생하고 읽을 맛 나게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리드([각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를 이렇게 쓰지 말고 지하철 출근길∙등굣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내가 느끼는 내로남불의 심리를 묘사해 봤으면 어떨까요. 내 마음속의 작은 내로남불 이야기로도 충분히 정치 경제 사회 영역의 큰 내로남불 현상을 꼬집고 비틀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글쓰기 강의할 때 “좋은 글보다 아쉬운 글이 ‘더 좋은 글 선생님’”이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좋은 글은 여러 모로 다 좋기 때문에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을 특정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쉬운 글에서는 리뷰 등을 통해 지적받은 포인트를 내 글 작성에 참고하고 감안하면 됩니다.
우리는 남의 잘 쓴 글을 흉내 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글을 향상하고 잘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