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 2

by Newfifty

작문에 대해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아쉬움을 느꼈던 글들에 대한 리뷰를 소개드렸습니다. 주로 ‘이것저것 나열해서 백화점식, 뷔페식 글이 돼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좋은 평가를 했던 작문 두 편을 보여드립니다.


과제는 [작문 주제 :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형식 분량 제한 없음]이었습니다.


첫 번째 글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처럼 썼고, 두 번째 글은 자신의 경험을 에세이로 썼습니다.




내로남불. 살면서 이보다도 공감이 됐던 단어는 없었던 것 같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는 건 괜찮고, 남이 하는 건 안 괜찮고. 듣기만 해도 이런 생각으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팍 꽂히지 않아? 이 정도 진리면 사자성어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이 단어가 참 정확하다고 생각해. 내 인생의 악당들은 다 내로남불 하는 사람들이었거든.

초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했었어. 아이들의 괴롭힘은 참 단순하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는 그게 노는 걸로 보이나 봐. 매일같이 내 신발들을 숨기고, 공책들을 변기에 빠트리고, 넘어지는 척 가방에 우유를 붓고, 내 가방과 물건은 항상 우유 냄새로 가득했어. 그래서 하루는 나도 똑같이 걔 가방에 우유를 부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는 조용하던 학교가 발칵 뒤집혔어. 걔 엄마는 학교에 찾아와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고,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데려가서 그 애 앞에 벌을 세웠어. 너무 억울해서 나도 똑같이 당했었다고 말했는데, 그 애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 “우리 애는 장난이었지만 너는 아니지 않냐”더라. 할 말이 없어서 그 이후로는 한마디도 못했어. 우리 엄마가 싹싹 빈 덕분에 가방은 물어주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고. 그 가방이 명품이었나 봐.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런 사람들은 끊이지 않더라. 자기한테 관대하지만 남들이 잘 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는 중학생들, 고등학생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만난 너까지. 그래, 너 말이야 너.

자기는 마음대로 데이트를 취소해도 내가 약속에 늦으면 길길이 날뛰는 너. 내가 연락이 없으면 화를 내면서, 자기는 바쁘다는 핑계로 며칠씩 잠수를 타는 너. 내가 남자와 문자라도 하면 온갖 욕을 해대지만, 폰에 데이팅 앱이 깔려있는 너 말이야. 처음엔 누가 날 좋아해 준다는 게 신기하고 행복해서, 그런 너의 태도들에 토를 달지 않았어. 그런데 더 이상 못 참겠더라. 너 같은 사람들한테 찍 소리 못하는 게 지겨워서, 이제는 나도 해보려고. 내로남불. 아니 사실은 이미 하고 있어.

남들이 바람 필 때는 참 한심해 보였는데 내가 하니까 정말 로맨스더라. 너 같은 사람과 보냈던 시간은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이 정도 썼으면 너도 내가 왜 이 편지를 두고 갔는지 알겠지. 거창한 편지로 내 행동을 포장하는 지금 내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지만. 뭐 인간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니까.

(리뷰)

뻔한 얘기가 될 수도 있는 소재를 흥미로운 반전과 생생한 디테일로 끌고 가면서 작문에서 기대하는 개성과 창의성을 보여줬습니다. 리드(‘내로남불. 살면서 이보다도 공감이 됐던 단어는 없었던 것 같아’)부터 독자의 흥미를 끌어들입니다. ‘내로남불은 나쁜 것,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깨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문장(‘거창한 편지로 내 행동을 포장하는 지금 내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지만, 뭐 인간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니까’)도 리드 문장과 수미쌍관(首尾雙關)의 묘미를 느끼게 합니다. ‘내로남불 옹호론자’의 글로도 내로남불을 조롱하고 비판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교실이 시끌벅적하다. 누군가는 엄마한테 죽었다며 울고 있고, 누군가는 터져 나오는 미소를 삼키느라 애를 먹는다. 누군가는 무관심하게 종이 쪼가리를 책상 서랍에 구겨 넣고, 누군가는 영혼 없는 울상으로 친구를 위로한다.

“야, 쟤 또 100점이래!”

그중에서도 반 1등의 성적은 그야말로 핫이슈다. 아이들은 선망과 시기를 넘어서 ‘저런 성적표가 있구나’하는 경이로운 심정으로 모여들어 성적표를 감상한다. 우글우글 여중생들이 모인 틈을 헤치고 들어가면 그 중심에는 바로, 내가 있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질끈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 아이, 수업 시작 전에 교과서를 펼쳐놓고 예습하는 아이, 회장 선거에서 등 떠밀려 회장이 되는 아이, 재수 없지만 그게 나였다. 이렇듯 반에는 꼭 한 명씩, 나와 같은 ‘모범생’이 있다. 그리고 반에는 꼭 그 반대의 부류도 있다. 늘 맨 뒷자리에 앉아있는 아이, 수업 시간이면 보란 듯이 담요를 펼쳐 엎드리고 자는 아이, 선생님께 경멸의 눈빛을 날리며 반항하는 아이. 실은 나는 그 아이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못생긴 성적표를 받는 것이 두렵지 않니?’, ‘이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고 싶니?’ 따위의 질문이 혀끝까지 차 올랐으니까. 같이 수업에 늦더라도 선생님께서 나는 조용히 자리로 돌려보내셨고, 그 아이는 교실 뒤편에 벌을 세우셨다.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면서 나는 그 친구의 삶을 비난했고, 그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대학은 중학교와 많이 달랐다. 나에게 붙었던 ‘모범생’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로 모두가 성실한 사람들이었고, 전공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목표를 상실한 사람이었다. 오직 ‘대학’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나는 더 넓고 복잡한 관문이 남았다는 사실에 사기를 잃었다.

수업 직전에 꼬박꼬박 교과서를 펴놓던 ‘모범생’은 모든 강의에서 지각 도장을 얻는 ‘관심 병사’가 된다. 수업 태도는 말할 것도 없다. 노트북으로 딴짓하고 졸다가 교수님의 질문에 어버버 답도 못 하는 건 일상이고, 과제 제출 기한은 매번 넘기고, 텅 빈 뇌로 시험장에 들어가며 등록금 낭비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때마다 하나의 생각만이 나를 위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래, 대학 공부는 재미없고, 남자친구와의 갈등이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이미 열심히 해서 괜찮아. 그러나 ‘모범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욕심은 관성처럼 따라붙었고, 욕심과 현실의 간극은 사람을 참 못 살게 만든다. 매일 누워만 있던 그때. 낯선 강의실의 공기를 느끼며 억지로 앉아있는 딱 그때. 중학교 교실 맨 뒷자리에 엎드려있는 아이의 뒤통수가 떠올랐다.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발붙이고 있는 공간이 멀게 느껴졌을까. 해야만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으려나. 혼자 어떤 갈등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으려나. 내가 그런 부류의 아이를 생각하게 될 줄이야. 그 행위를 비난하던 내가 그를 옹호하고 있을 줄이야.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남의 잘못은 솥뚜껑만 하게, 나의 잘못은 손바닥만 하게 본다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내로남불은 남을 이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TV 속 사람들의 내로남불은 심술이자 자존심일 뿐이다. 실은 나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허물어본 사람이 남의 잘못도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리뷰)

나 자신의 삶 속에서 느낀 ‘나의 내로남불’을 구체적 사례 등을 토대로 차분하게 잘 담아냈습니다. 글쓴이가 표현한 이야기가 그림이나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잘 읽힙니다. 마지막 문단에 내로남불 네 글자가 등장하는데, 아예 끝까지 등장시키지 않고 마무리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두 번째 글의 경우 마지막 문단([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남의 잘못은 솥뚜껑만 하게, 나의 잘못은 손바닥만 하게 본다는 말이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내로남불은 남을 이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TV 속 사람들의 내로남불은 심술이자 자존심일 뿐이다. 실은 나의 잘못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허물어본 사람이 남의 잘못도 바라볼 수 있는 게 아닐까.])을 안 썼으면 더 좋은 글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앞 문단의 마지막 문장([그 행위를 비난하던 내가 그를 옹호하고 있을 줄이야.])으로 글을 마무리했다면 더 깊은 여운(餘韻)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만 해도 작가가 스스로 느낀 내로남불이 충분히 읽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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