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 4

by Newfifty

지난 시간([작문 :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 3])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라고 자기소개하고 싶을 때) ‘성실’이란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는 게 더 좋다. 글을 읽는 사람이 저절로 ‘이 사람은 참 성실하구나’라고 느끼게 만들어야 고수(高手)의 글이다”


“작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제시어를 받았을 때 내로남불이란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등장시키면서, 읽는 사람이 ‘이 작가는 내로남불을 이렇게 보는구나’ ‘내로남불을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에 담아냈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써야 고수(高手)입니다.”

그런 고수(高手)가 되기 위한 연습으로, 수강생들에게 [작문 주제 : Good Listener(잘 듣는 사람) / 형식 분량 제한 없음 / 단 본문에 ‘Good Listener’라는 단어는 쓰지 못함]이란 과제를 낸 적이 있습니다.


출제 의도는 ‘글쓴이가 특정 단어를 쓰지 않고서도, 읽는 사람이 그 단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써보세요’라는 것입니다.


제출된 글들에는 주문한 대로 ‘Good Listener’라는 단어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리뷰하며 느껴지는 아쉬움은 늘 비슷합니다.


1) 끝없이 강조하는 ‘좋은 첫 줄(Good Lead)’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2) 미디어 글쓰기의 특징(‘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을 인식한 글의 친절함이 부족하다


3) ‘하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써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씀드리는데 너무 많은 얘기를 여전히 하려 한다


중요한 만큼 쉽지 않죠.


아쉬운 리드의 사례들을 보시죠




(리드)

너는 무척 조용한 친구였어. 늘 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깊은 눈동자는 호수처럼 맑고 투명했어. 그런 넌 언제나 내게 가장 따뜻한 사람이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그날, 너는 많이 달라 보였어. 너를 안 지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런 네 모습은 처음이었어. 항상 단정하게 묶고 있던 머리는 헝클어지고, 너의 눈동자는 눈물로 온통 흐려져 있었지. 하지만 불과 이틀 전, 우리는 평소와 같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에 즐거워했던 걸.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지.


널 찾아온 나를 너는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단다. 너는 계속 울고만 있었고, 난 혹시 너를 울게 만든 것이 내가 아닐까 초조해하고 있었어. 한참이 지나서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눈길을 돌린 너. 나는 너에게 그제야 쭈뼛쭈뼛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 그러자 무겁게 닫혀 있던 너의 입에서는 “외로워”라는 묵직한 한 마디가 튀어나왔지.


난 이해할 수 없었어. 한동안은. 너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왜? 외로움은 사람들과 단절된 고립과 소외에서 나오는 감정이잖아. 그것도 아주 오랜 고립과 분리에서. 그렇지만 난 항상 네 곁에 있었는걸? 더군다나 같이 웃으며 함께 매 순간을 즐겼던걸?

(리뷰)

-‘절친의 외로움’이란 글감은 좋습니다. 인간관계의 한 단면을 깊게 성찰해 보는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합니다. 단 ‘절친의 외로움 토로’라는 결정적 장면이 등장하기까지 무려 세 단락(약 500자)이 소요됩니다. 다음과 같이 리드를 고쳐 써보면 어떨까요?


“외로워…”

그날 너의 입에서는 묵직한 이 한 마디가 튀어나왔지.

난 이해할 수 없었어. 한동안은. 너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왜? 외로움은 사람들과 단절된 고립과 소외에서 나오는 감정이잖아. 그것도 아주 오랜 고립과 분리에서. 그렇지만 난 항상 네 곁에 있었는걸? 더군다나 같이 웃으며 함께 매 순간을 즐겼던 걸?


-글쓴이의 자각 또는 자성([함께 즐거웠다고 생각했던 그날도 사실 너는 그렇게 힘들었었다는 걸])도 평서문 한 문장으로 이렇게 쓰지 말고 대표적이거나 결정적인 상황이나 장면을 보여주는 게 더 잘 읽히고, 설득력도 더 있습니다. 이런 부분만 보강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고지 사용법과 한글 맞춤법에 가장 충실함을 칭찬합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원고지 사용법과 한글 맞춤법은 ‘좋은 글을 좋은 그릇에 담는 기본’입니다.



(리드)

“나 오늘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이 와중에 언니한테 틱틱대서 싸웠어.”

“요새 할 게 많아? 해야 할 거 뭐 있는데? 언니한테는 어쩌다 틱틱댄거야?”


순간 또다시 답답해져 오는 공기에 말을 잃었다.


“지금 엄청 스트레스받는구나. 언니한테 전화라도 해봐. 잘 풀면 되잖아!”


‘하… 내가 지금 필요한 건 해결이 아닌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토로할 때, 상대방의 반응과 해결을 기대하진 않는다.

(리뷰)

-대화체로 시작한 건 읽기 편해서 좋습니다. 단 정확히 누구와 누구의 대화인지 모르겠습니다.(엄마와 글쓴이의 대화로 추정되지만) ‘미디어 글쓰기’는 나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독자가 내 글을 읽고 내 상황과 주장 등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틱틱대다' '틱틱거리다' 표현은 일상에서는 쓰지만, 표준어가 아니어서 미디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디어 글쓰기에 적합한 단어나 표현으로 바꿔 쓰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계속하시면 좋습니다.)


-글쓴이는 ‘Good Listener’ ‘경청’ ‘의미 있는 대화’ 등에 대해 나름의 인사이트(insight∙통찰)가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예를 들면

1)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토로할 때, 상대방의 반응과 해결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 순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다.]

2) [대화의 시작은 말하는 사람이지만 늘 대화의 진행은 듣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3)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고, 침묵을 견디지 못해 말을 다시 시작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4) [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자 큰 위로일 수 있다.] 등등.

이런 나름의 생각과 인사이트를 이렇게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평서문 한 줄로 표현하지 말고, 그중 하나를 골라서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침묵의 경청’이란 주제로 실제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 침묵이라는 경청의 수단이 상대의 진심을 이끌어냈는지, 때론 반대로 ‘침묵을 이겨내지 못하고 깨버리는 바람에 대화 전체가 망가져 버린 경우’가 있는지 등을 보여주면 어땠을까요.


-전체적으로 글쓰기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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