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평소 일상에서 어떤 글을 쓰시나요?”
미디어 글쓰기 강의할 때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블로그에 쓴다” “브런치에 쓴다” “웹(인터넷) 소설을 써서 용돈을 번다” “일기는 꼭 쓰는 편이다” 등 다양한 대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무슨 글이든 즐겁게, 쓰고 또 쓰시길 바랍니다.
[미디어 글쓰기는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쓰기다. 나 혼자 쓰고 읽는 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드리는데요. 이 말씀이 ‘일기는 미디어 글쓰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글, 쓰고 싶은 글을 자주 많이 쓰다 보면 작문뿐만 아니라 미디어 글쓰기 전반에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가 ‘하기 싫은 시험공부’ 같다면 얼마나 재미없고, 힘만 들겠습니까?
수강생이 성의 없는 글이나 면피성(免避性) 글을 제출했을 때 꼭 하는 쓴소리는 “숙제를 하지 말고, 글을 쓰세요”입니다.
지난 시간에 [작문 주제 : Good Listener(잘 듣는 사람) / 형식 분량 제한 없음 / 단 본문에 ‘Good Listener’라는 단어는 쓰지 못함] 과제에 대한 리뷰 일부를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리뷰들도 함께 보시죠.
이미 말씀드렸던 ‘리뷰하며 느끼는 아쉬움들’을 감안하시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끝없이 강조하는 ‘좋은 첫 줄(Good Lead)’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2) 미디어 글쓰기의 특징(‘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을 인식한 글의 친절함이 부족하다
3) ‘하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써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씀드리는데 너무 많은 얘기를 여전히 하려 한다
미디어 글쓰기 강의할 때 제출된 글들을 꼼꼼하게 반복해서 읽고 리뷰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강의실 강의보다 개별 리뷰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글 쓰듯 말하라’는 조언은 중언부언하고 왔다갔다 하지 말고 리드-몸통-마무리(또는 서론-본론-결론)의 글 구조처럼 말도 그렇게 논리정연하게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말하듯 글을 써라’는 조언은 상대(독자)를 글쓴이 앞에 앉혀놓고 한 줄 한 줄 읽어줄 때마다 독자의 고개가 끄덕끄덕 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쓰라는 뜻일 것입니다.
미디어 글쓰기에서는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독자들이 글을 따라가기가 쉽고, 헷갈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설처럼 시간 순서를 자유롭게 오가고, 복선(伏線)을 깔고 하면 독자나 시청자들이 신문 기사나 방송 리포트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이 글은 ‘오래된 연인’의 흥미로운 장면이 여럿 담겨 있는데 그 상황들의 전후와 인과관계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너 권태기야?”라고 시작하는 상황과 남자친구의 관심사인 ‘블록체인’을 공부해 남친을 신나게 했던 시점이 어떤 순서이고, 어떤 관계로 이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흥미로운 문장들([차이에 끌려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그 차이 때문에 이별하게 된다던데], [그래 말한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지. 그런데 그 재미를 얻기 위해선 들어주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다]) 중 하나를 잡아 좀 더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면 더 재미있는 글이 됐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 쌍의 남녀가 서로의 차이에 어떻게 끌렸는데, 어떤 순간과 어떤 상황을 통해 그 차이가 끌림이 아니라, 불편함이나 소통 불만이 된 것인지, 그런 불편함이나 불통을 극복하거나 넘어설 방법은 없는지 등등요.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 엄마 미안. 내가 친구들 얘기 잘 들어준다고 자랑 엄청 했으면서, 또 한바탕 내 얘기만 했네? 엄마는 엄마 얘기 쏟아낼 사람이 있나 문득 궁금해진다. 주말에 집 내려가면 이번에 내가 다 들어줄게. 꼭!
이 글의 주제는 이 마지막 문단인 것 같습니다. 딸은 밖에서 다른 사람 말 잘 들어주는 ‘good listener’입니다. 나름의 인간관계 원칙까지 있습니다. 엄마는 ‘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딸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준 이야기’까지 다 들어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엄마에게 엄마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자각 또는 자성을 하게 됩니다.
‘엄마의 good listener는 누구지? 나는 왜 엄마의 good listener가 되지 못했을까?’라는 주제를 생각했다면 글의 리드-몸통도 최대한 그에 포커싱(focusing∙초점 맞추기) 해야 합니다. 물론 원고지에 쓰기 때문에 단락의 순서 등을 짧은 시간에 크게 바꾸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내가 이 짧은 글을 통해 무엇을 쓰려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리드(도입부)는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행착오의 크기와 횟수를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나름의 글감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저런 스토리를 이렇게 저렇게 엮는 노력보다 먼저 그 각각의 스토리를 깊고 디테일하게 글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제출한 글의 아래 한 문단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글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학부 시절,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전공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조언을 얻고자 바꾸고자 하는 전공과 관련해 일면식이 있던 한 교수님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상황과 고민을 털어놓았고, 교수님은 걱정스러우면서도 이해된다는 표정으로 중간중간 교수님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계속 들어주셨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더니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렀고 결국 대성통곡을 했다. 남 앞에서 잘 울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민망하고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교수님의 진정한 공감과 눈빛 때문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성인(成人)이 된 뒤 ‘다른 어른 앞에서’ 이렇게 눈물을 쏟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때 자신의 마음 상태, 교수님과 대화 내용 등을 당시 분위기 묘사와 함께 그대로 표현하면 그 자체로 좋은 글이 될 것입니다. 교수님이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만들어준 것도 아닌데, 그냥 진지하게 들어주신 것만으로 글쓴이가 스스로 위로받은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로 시작하는 리드 문단은 지양해야 합니다. 뻔한 표현이 등장하는 순간, 독자(평가자 포함)의 채널은 바로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릴지 모릅니다.
이 글은 반전(反轉)의 매력이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늘 환영받는 ‘good listener’이자 ‘리액션(reaction∙반응) 장인’의 실체가 ‘딴생각 달인’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친구와 단 둘이 카페를 가서 3시간 동안 수다를 떤다고 하면, 나는 2시간 50분을 듣고 리액션한다. 그럼 내 얘기를 하는 시간은 단 10분이라는 건데, 사실 그마저도 내 얘기라기보다는 주변 사람 이야기다. 이런 성격으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리액션 장인’으로 통하고, 적절한 공감이 섞인 리액션 덕에 나와의 대화를 즐기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하나도 듣고 있지 않으면서도 ‘리액션 장인’이란 평가를 받는 이런 신공(神功)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왜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으면서도 친구와 몇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인지, 이런 반전 뒤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지 등등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그 궁금증에 대해 더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는 대신, ‘리액션이 무덤덤한(그러나 진정성 있는) 남자친구’ 얘기로 옮겨가고 글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돼갑니다.
혹시 이야기를 힘 있게 계속 끌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소재나 글감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면 다 허물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리드(머리)-몸통-마무리의 사전 설계를 튼튼하게 잘 한 뒤 글쓰기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