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 자유롭게 쓰되,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 1

by Newfifty

언론사 필기시험에는 보통 논술과 작문이 있습니다.


논술이 주요 이슈에 대한 이해 수준과 논리적 사고 등을 평가하는 것이라면, 작문은 창의적인 사고와 글솜씨 수준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저도 30년 전에 논술과 작문 시험을 봤습니다.(그때 제가 응시한 언론사의 경우 1차 서류(자기소개서) 전형을 통과한 뒤 보는 2차 필기시험에는 논술 작문 외에 영어(독해와 영작)도 있었습니다)


당시 논술 과제는 '지방자치시대 개막의 의의에 대해 논하라', 작문 제시어는 '눈(目)'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논술은 특정 이슈나 사안에 대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창의적 발상이나 남다른 작법(作法)을 뽐내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파격적이거나 실험적인 글쓰기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런 글을 보면 평가자(주로 논설위원들)가 '이 응시자는 장난하자는 건가?'하고 불쾌해할 수 있습니다. 신문 사설(社說)이 소설이나 에세이 스타일로 쓰인 경우를 보신 적 없으시잖아요.


작문은 다릅니다. 훨씬 자유롭게 자신만의 색깔이나 시각을 드러내며 독특한 글쓰기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솜씨가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처럼 쓸 수도 있고,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창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무엇을 어떻게 쓰든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는 당부가 오늘 드리고 싶은 말씀의 전부입니다.


한 강의 시간에 작문 제시어로 ['나는 ○○한다(○○된다), 고로 존재한다']을 주고, [첫 문단에는 '나는 ○○한다(○○된다), 고로 존재한다.'만 쓰세요 / 그 외 글의 형식과 분량은 자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래 리뷰를 보시면 '하나의 이야기만 하자'라고 당부드리는 이유를 짐작하실 겁니다.




(리뷰)

뭐든 하나를 제대로 잡아 쓸 수 없었나요? 글쓴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안 읽혀요 ㅠㅠ 귀신, 그림자, 데카르트의 악마, 물리적 존재, 인간 정신, 비물질적 존재, 상황과 상대, 물리적 실체, 정신적 실체 등등. 수능 국어 비문학(독서) 지문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마음의 그림자'란 개념 하나만 잡고 친절하게 썼으면…

음식은 많은데, 딱히 손은 안 가는 '뷔페 식단'이 돼버렸어요.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 한국의 고독사(孤獨死),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억의 외주화 등 동서고금이 총망라됐어요. 마치 '기억'이란 큰 제목 아래, 작은 제목으로 기억 1, 기억 2, 기억 3, 기억 4 쓰는 것처럼 돼버려요. 'SNS 기억의 외주화' 하나만 잡고 썼으면…

제목(나는 전환한다, 고로 존재한다)과 내용(실패는 나의 힘)이 엇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간판은 '중국음식점'(전환)이라고 쓰여있는데 요리는 일식(실패)만 계속 나오다가 마지막에 '지금까지 드신 요리들, 어쨌든 중식입니다'(저는 실패를 기회로 전환합니다)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나는 실패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으면…

성찰, 무의식, 습관, 소통, 자각 등의 단어가 각 문단마다 등장하면서 결국 '백화점식 글'이 돼버린 느낌이에요. 노인복지관의 치매예방 프로그램에서 의미 있는 성찰의 계기가 있었다면 그 이야기만으로 풀어나갈 수는 없었나요? 생생한 대화와 분위기를 묘사해 줬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사랑'이란 거룩한 이름 아래 그 대상을 망라하다 보니, 그토록 지양해야 하는 '백화점식' '뷔페식' 글이 돼 버린 느낌이에요. 문단 하나씩 분리해 글을 써야 더 잘 읽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나는 댓글 단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쓰고 세 번째 문단(친구들 블로그 게시글에 빠짐없이 댓글 다는 이야기)을 써도 충분히 재미있을 듯요.

'나는 열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열광하는 스포츠는 1 축구, 2 야구'라고 나열한 것 같아요. 통계학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연결된 야구 얘기 하나만 제대로 썼으면 어떨까 싶어요. 어느 팀 팬인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나는 잠실야구장 간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몰두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몰두 1-단편영화 제작, 몰두 2-건강장애학생 표창, 이상 끝'이네요. 예상 가능해서 재미있게 읽히기 어려워요. 본문 안에서 애써 찾는다면 '나는 맨땅에 헤딩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쓰고 용감한 도전의 생생한 장면들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요.

수영 이야기, 요가 이야기, 둘 다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이 두 스토리를 한꺼번에 '나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밋밋한 제목 안에 담아 버려서 아쉬워요. 무기력함의 늪에서 나를 끌어내준 수영 이야기만으로 끌고 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나는 물 위에 떠있다. 고로 존재한다' 등의 제목으로, 수영이 변화시킨 내 심신(心身)을 디테일하게 써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여러 이야기를 평면적으로 나열한 글에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심심하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담아내야 글에 '입체감'이 생깁니다.


물론 그렇게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을 자꾸 써보지 않고, 글 실력이 느는 방법도 없습니다.




(총평)


저를 포함해서 미디어 글쓰기로 먹고사는 프로페셔널들도 60분 주고 '나는 ○○한다. 고로 존재한다' 글감으로 써보라고 주문하면, 막막해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글쓰기 미션'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뜻입니다.


하지만 운동도, 공부도 어느 수준 이상의 어려운 과제를 해내야 실력이 늘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글쓰기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즐겁게 함께 달리면 좋겠습니다. 분명 발전하고 성장할 겁니다.


틈틈이 동료 학우들 글도 꼼꼼히 읽어보세요. 구성이 비슷해 보이지만 '읽는 느낌'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면 본인 글쓰기에 좋은 참고가 됩니다.


여러분 글을 보며 저도 많이 깨닫고 생각하고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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