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 키워드 자기소개서 쓰기 4

by Newfifty

‘키워드 자기소개서 쓰기 3’에서 말씀드린 내용(1. 구체적이고 생생해야 친절한 글입니다 2. 뷔페처럼 쓰지 말고, 나만의 일품(一品)요리를 만드세요 3. 불필요한 겸손과 쓸데없는 글 버릇은 소중한 분량만 잡아먹습니다)은 자기소개서뿐만 아니라, 미디어 글쓰기의 기본이자 정석에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글쓰기의 파격, 비틀기, 실험 등에 관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결론은 ‘High Risk, High Return(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


중간고사 문제로 ‘자기소개서 쓰기 : 3대 키워드로 자신을 표현하세요 / 시간 60분 / 분량 1000자’를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는 한 PD 지망생의 ‘파격적인’ 답안입니다.




안녕하세요. 언젠가 드라마판에서 일할 수 있기를 꿈꾸는 ○○○라고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단점이 참 많습니다. 때로는 장점보다 단점들이 나를 더 잘 드러내지 않나 생각할 정도로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제 단점 세 가지를 털어놓아보려고 합니다.

첫째, 저는 무기력해 보인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 사람입니다. 현장에 가면 “촬영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죽어가냐”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들은 촬영이 끝날 때쯤 대개 제게 한번 더 말을 걸어옵니다. “네가 끝까지 남아있을 줄 몰랐다”고 하면서요. 저는 남들만큼 에너지 있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오래가고, 그만큼 꾸준합니다. 최근에는 그런 제 자신을 '저전력 모드'라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전력 모드로 살아가며 저는 어떤 상황이 와도 끝까지 버텨내려고 노력합니다.

둘째, 저는 사서 걱정을 합니다. 촬영 날에 비가 오면 어떡할지, 스태프 중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할지, PD공채에 끝끝내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할지,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을 수없이 걱정하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아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항상 '플랜 B'를 세워 둡니다. 사고에 대비한 촬영 스케줄들을 여러 개로 나누어 미리 계획해 두고, 웹드라마 분야에서도 일을 찾으며 영상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제 걱정들 덕분에 저는 항상 대비를 할 줄 압니다.

셋째, 저는 누군가의 말에 오래 집중하지 못합니다. 이따금씩 상상으로 빠져드는 정신을 매번 다시 붙잡아오며 집중을 이어가고는 합니다. 그만큼 저는 상상을, 특히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을 사랑합니다. 친구의 설레는 연애 얘기를 들으며 로맨스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하고, 교수님의 기자 생활 이야기를 듣고 기자가 된 주인공의 성장기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상상했던 것들을 풀어써보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상상을 글로 풀어내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가장 사랑합니다.

이처럼 저는 저전력모드로 살아가는, 플랜 B를 가진, 이야기꾼입니다.

단점들이 저를 완성했습니다.

(리뷰)

자기소개 키워드로 ‘무기력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사서 걱정을 합니다’ ‘누군가의 말에 오래 집중하지 못합니다’를 제시했습니다. 리드(도입부)를 좀 더 압축해서 더 간결하면서도 힘 있게 시작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있지만 당신을 ‘비틀기의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3대 키워드 대신 ‘3대 약점’을 내세웠습니다. 결국 그 약점들이 다 자신의 특징이자 장점임을 보여준 뒤 마지막 문장은 <단점들이 저를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기’ 같은 비틀기를 잘하는 글쓴이를 만나면 평가자들은 ‘충실한 기본기 위에서 발휘되는 비틀기인가?’를 더 꼼꼼히 살피게 됩니다. 추상화 잘 그리는 화가 지망생이 정밀화 사실화도 잘 그리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것입니다. 퓨전 음식 잘 만드는 요리 실습생이 된장찌개 김치찌개도 맛있게 잘 끓이는지도 살펴보고 싶은 것과 비슷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위 학생의 답안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한 파격’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패한 파격, 어설픈 비틀기, 무모함을 넘어선 무식한 실험의 글을 더 많이 봤습니다.


그런 글에는 아래처럼 조언합니다.




(리뷰)

새로운 시도와 도전, 실험정신, 파격 다 좋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High Risk, High Return(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쪽박)’입니다. 새로운 도전이나 실험이 대박 나려면,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글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치밀하고 탄탄해야 합니다. 독자(채용 담당관이든, 일반 독자나 시청자든)가 읽으면서 “정말 기발하다”거나 “진짜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포장은 화려한데 제품이 별로이면 고객의 실망은 더 커지고, 심한 경우 배신감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프로페셔널 기자들도 시도했던 파격이 실패해서 큰 비난을 받거나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은 좋습니다. 단 모의 투자가 아니라, 실전 투자에서는 ‘이번 종목은 다 잃어도 큰 타격이 없을 정도로, 자본금이 아주 넉넉할 때’ 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넉넉한 상황을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습니다)



‘남다른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태도는 건강하고 바람직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역시 현역 저널리스트 시절엔 ‘뭔가 기존의 글들과 다르게 쓰고 싶다’는 욕심이 꽤 많았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 욕심을 실현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아래 두 글은 ‘오늘 날짜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하나 골라 소개하는 코너’에 썼던 것입니다.


첫 번째 글은 일반적으로 쓰는 형식을 따른 것이고, 두 번째 글은 나름 파격(의인화)을 시도한 것입니다.



[1988년 9월 18일 미얀마 군부 쿠데타]


고래 싸움에 등 터지기 바쁜 작은 새우조차도 천수(天壽)를 누릴 수 있는 ‘무위(無爲)의 나라’. 미얀마(옛 버마)는 그런 나라다.

국민의 약 90%가 불교를 믿는 불자(佛子)의 나라. 현세의 고통을 보다 나은 내세를 기약하며 참아내는 국민성도 윤회사상에 대한 깊은 믿음에서 나온다.

참는 데는 도가 튼 미얀마인들은 1962년 3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장군의 1당 독재체제를 26년간 견뎌냈다. 그 결과는 ‘세계 최빈국’의 오명과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엿듣는다’는 비밀 강압 통치뿐이었다.

88년 3월 미얀마 민중은 더 참지 않았다.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시민과 학생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경찰 호송차에 끌려가던 41명이 최루가스에 질식해 숨지자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놀란 네윈은 7월 25일 ‘사회주의계획당’ 의장직에서 물러났으나 민심의 불길을 잡지는 못했다. 8월 8일 10만 명 이상이 수도 양곤에 운집해 시위를 벌이자 군이 발포했다.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다. 8월 26일 육사 교관단이 네윈에 대한 군의 불복종을 촉구했다. 9월 16일엔 외무부 직원들이 ‘집권당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양곤의 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봄날 한때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진달래처럼. 9월 18일 밤 소몽 국방장관 겸 참모총장이 군부 쿠데타를 감행했다. 시민들에게도 무차별 발포라는 무자비한 방법을 썼다. 반정부시위대는 9월 20일 ‘시위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년이 다 돼가는 90년 5월. 미얀마에 잠시 봄볕이 비췄다. 가냘픈 몸매에 큰 눈망울을 가진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야당인 ‘민주국민연합(NLD)’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총칼을 앞세워 ‘총선 무효’를 선언했다. 그 후 미얀마의 의회는 ‘무기한 휴회’에 들어갔다. 수지 여사와 함께 미얀마의 자유도 여전히 가택 연금 중이다.

(2004년 9월 18일)


[1979년 4월 18일 잠실실내체육관 준공]


제 이름은 잠실이. 본명은 잠실실내체육관. 1979년 4월 18일 태어났으니 오늘(2005년 4월 18일)로 만 26세죠.

저의 출생은 국가적 경사였나 봅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큰딸 근혜(槿惠·현 한나라당 대표) 씨가 준공 행사에 직접 참석했어요. 못 믿겠다고요. 같은 날짜 동아일보 1면에 ‘박 대통령, 서울잠실체육관 개관(開館) 테이프 끊어’란 제목으로 사진까지 실렸어요.

좌석 1만 3595석, 수용 인원 2만 명의 세계적 덩치는 저의 자랑입니다. 처음부터 국제경기를 담당했죠. 같은 달 29일 12개국이 참가하는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가 시작됐어요.


‘한국 대 캐나다’의 개막전에 2만 5000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죠. 계단에 걸터앉거나 까치발을 한 사람들을 보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이왕이면 좀 더 크게 지을 것이지….’

그런데 대선배인 ‘장충이 형’(장충체육관)이 흥분한 저를 보며 혀를 찼어요.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체육관에서 운동 경기만 하는 줄 아느냐.”

제가 태어나기 전 국내 최대 규모(5000석)인 장충이 형이 ‘체육관 대통령’ 만드는 일을 도맡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체육관 대통령이 국민에게 인기 없는 이유는 금방 알겠더군요. 숨 막히는 박빙의 승부, 극적인 역전승 같은 스포츠의 묘미가 전혀 없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8대 대선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 중 2357명(99.9%)의 지지를 받았고,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1980년 11대 대선에서 2525표 중 2524표를 얻어 100% 가까운 득표를 했죠.

당시 전 대통령은 8월 27일 ‘장충체육관’에서 선출됐고 닷새 뒤인 9월 1일 ‘잠실체육관’에서 취임식을 가졌어요. 그로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싶었겠죠. 그러나 장충이 형으로부터 ‘체육관 대통령’을 물려받는 제 기분은 유쾌할 리 없죠. 1981년 3월 3일 전 대통령의 12대 대통령 취임식도 제 몫이 되더군요.

아홉 살 되던 1988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대통령 직선제로 대통령 뽑는 장소가 체육관에서 ‘민의의 광장’으로 바뀌자 취임식장도 ‘잠실’에서 ‘여의도’(국회의사당 광장)로 달라지더군요. 그래도 저는 전혀 허전하지 않았어요. 서울 올림픽을 치르며 본연의 임무를 만끽할 수 있었거든요.

오해 없기 바랍니다. 저는 박진감 없는 ‘체육관 대통령’을 싫어할 뿐이지 모든 정치 행사와 정치인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는 정치인이라면 체육관 입장을 정중히 사절하고 싶습니다.

(2005년 4월 18일)




두 번째 글([1979년 4월 18일 잠실실내체육관 준공])의 경우 잠실실내체육관을 의인화하는 나름의 파격을 했는데, 내용이 말장난 수준에 그쳤다면 지면에 실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을 담기 위해 ‘체육관 대통령’ 선거의 득표 숫자, 대통령 취임식 장소의 변천사 등을 하나하나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소개서에서든, 작문이나 논술 시험에서든,

파격적인 글을 쓰려하신다면

그 새 그릇에 담길 내용이

더욱 치밀하고 정교하고 탄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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