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 키워드 자기소개서 쓰기 2

by Newfifty

미디어 글쓰기 강의나 특강 할 때 ‘3대 키워드로 당신을 소개하세요’ 또는 ‘5개의 키워드로 당신을 소개하세요’라는 과제나 시험을 꼭 내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분량은 ‘키워드당 300자 내외’고요.


그렇게 작성돼서 제출된 키워드 하나하나를 정성껏 리뷰를 해주는데요,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지적이나 조언은

키워드가 추상적이어서 글쓴이의 구체적인 모습이 읽히지 않습니다

좀 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셔야 자기소개서의 독자(채용 담당관 등)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죠.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던 ‘키워드 자기소개’와 강사의 리뷰를 보여드립니다.



‘사람 수집가’

세상에는 수많은 수집가가 있습니다. 그중 저는 ‘사람 수집가’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왜 그런 취향을 갖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같은 집단 내의 사람들이 ‘너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누군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은 저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일 뿐, 상대를 편하게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제 태도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형식적인 차원 너머 궁금해하고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상대에게는 따뜻하고 섬세한 관심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 수집가’로서 한 사람을 개별적인 눈으로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저의 태도는, 상대와의 깊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저만의 ‘진심’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리뷰)

‘사람 수집가’에 쓰인 내용은 좋습니다. ‘너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준다’는 평가는 큰 장점으로 보입니다. 강의시간에 강조한 ‘잘 듣는 사람(Good Listener)’과도 맥락이 닿습니다. 그런데 ‘수집가’라는 표현이 좀 걸리네요. 적확한가요? ‘사람+호기심’ 느낌의 단어나 표현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엽서 스물두 장’

몇 번의 터치로 사진을 찍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보다도 정성 들여 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스캔하여 인화하고, 그 사진을 엽서 삼아 편지를 쓰고,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여 주변에 보내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해외 교환학생을 하고 있을 때, 제가 카메라로 포착한 순간을 담아 사진관에서 인화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에게 편지를 썼는데, 후에 세어보니 모두 스물두 장이었습니다. 쉽고 빠른 것보다도 느린 것으로만 통하는 진심이 있다고 믿고, 이는 제가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리뷰)

5개 키워드 중 ‘엽서 스물두 장’이 가장 눈길을 끕니다. 그 정성과 마음, 사람 됨됨이가 응축돼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비중을 두고 강조해서 써도 좋을 듯합니다.


‘2루수’

입학 직후 야구 동아리에 가입하며 가장 화려하고도 중요한 포지션인 유격수를 꿈꿨습니다. 매 연습마다 가장 먼저 참여해서 가장 늦게 귀가한 끝에 종종 유격수로 경기를 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유격수로 참여하는 경기 수를 늘려가던 중 오른쪽 인대를 다치면서 공을 던지기 어려워졌고 야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도 야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전 송구가 약한 만큼 더 빠르게 공을 잡고 던지면 되겠다 생각하고 다시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노력 끝에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었지만, 여전히 공을 멀리 던질 수 없었기에 유격수가 아닌 2루수를 맡았습니다. 유격수는 아니었지만, 다시 야구를 한다는 기쁨이 더 컸습니다. 비록 완벽히 바라던 바는 아니더라도 꾸준한 노력 덕분에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리뷰)

‘2루수’는 좋습니다. 안타까운 시련을 이겨내고 ‘야구하는 기쁨’을 다시 찾은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 궁금한 점들이 생깁니다. 정확히 어느 부위가 어떻게 왜 다친 건지? 2루수의 활동 범위도 만만치 않은데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인지? 노력 끝에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노력을 구체적으로 한 것인지? 등등요



‘아재’

군대 전역자가 모인 연구소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고 있다. 연구소 평균 나이는 65세다. 9명의 직원 중 나만 20대 그리고 여성이다. 단골 식당 사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아저씨들 사이에서 힘들겠다고 걱정하신다. 그러나 반년 간 일하면서 세대 차이를 극복할 노하우를 터득했다. 상대를 편견 없이 대하면 된다. 아재 개그를 즐기려 했다. 아버지 세대가 과일 주스처럼 달콤한 음료를 선호한다는 걸 일하면서 알았다. 생리 현상 소리가 들려도 태연해졌다. 노력이 통했는지 지난달 시급이 1,000원 인상됐다. 싹싹하게 일을 잘한다는 이유였다. 세대 간 벽은 지레 겁을 먹으며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리뷰)

‘아재’가 좋네요. 제목을 ‘아재 개그’라고 해도 좋고, 좀 더 노골적으로 ‘아재들의 방귀소리’라고 해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아요. ‘꼰대 vs MZ’ 갈등 세태와 다르게, 글쓴이는 이해심과 포용력 모두 갖춘 사람이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한다면 1) 대표적인 아재 개그나 방귀소리 같은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았을 것 같고요 2) 이 연구소가 무엇하는 곳이고, 왜 여기서 사무보조로 일하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 간단히 있었으면 독자(채용 담당관 등)가 좀 더 친절하게 느낄 것 같아요.


‘검색중독’

검색은 내 습관이자 일상이다. 책을 읽다가 단어의 어원이, 길을 걷다 처음 듣는 새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하면 알아낼 때까지 검색한다. 검색은 낯선 사람, 알지 못하는 세상을 보는 길이다.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수학교육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담당 학생은 19살 늦깎이 중학생이었다. -1이 0보다 작다는 논리를 이해시키는 데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학생의 의지 부족을 탓했다. 그 생각을 바꾼 건 검색을 통해 '중국 출생 탈북자 자녀'에 대한 기사들을 읽은 뒤였다. 당연하게 교육을 누려온 나와 달리, 의지가 있더라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그제야 보였다.

(리뷰)

‘검색중독’의 경우 리드(도입부)에 ‘길을 걷다가 처음 듣는 새소리의 주인공’ 등 온갖 세상사를 다 궁금해하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중독된 듯 검색하는 글쓴이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시간 죽이기용 무의식적 검색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호기심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 적극적 검색임을 보여주고, 그런 검색이 ‘사안과 사람에 대한 심도 있는 탐색과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여주면 좋겠네요. 분량(300자)상 탈북 청소년 교육 봉사 얘기까지 다 담기 어렵다면 그 얘기는 다른 키워드로 만들어 보셔도 좋고요


‘크레이지 코리안’

해외 교환학생 시절 내 별명은 ‘크레이지 코리안’이었다. 생방송 프로그램 제작 수업에 참여했다.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팀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됐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팀원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현지 학생들보다 더 많은 사전 조사를 했다. 일주일, 이주일. 홀로 학교 자료실에 남아 수많은 스포츠 뉴스를 모니터링했다. 하루는 새벽까지 학교 건물에 남아 있던 나를 발견하지 못해 경비분이 건물을 잠그고 나가 갇힌 적도 있었다. 팀원들은 내가 밤새 찾은 자료들을 보며 내게 믿음을 보여줬고, 촬영 총괄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결국 팀워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성공적으로 생방송을 마칠 수 있었다. 미쳤다는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열정과 집념으로 낯선 환경에서도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팀원이 될 수 있었다.

(리뷰)

‘크레이즈 코리안’은 제목도, 내용도 좋네요. ‘경비원이 건물 문 잠그고 나간 뒤에도 학교 건물에 남아 노력하던 모습’이 그려지네요. 글의 앞뒤 배치 등을 좀 더 잘하시면 더 잘 읽힐 수 있겠습니다.



‘기록’

“너는 이런 점은 할아버지를 쏙 빼닮았어. 할아버지께서도 별의별 자료를 직접 작성하시고 보관하셨단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아버지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다. 휴대전화가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종이에 수기로 직접, 내가 흥미가 있었던 것들에 대해 기록하였다. 당시 기록의 대상에는 축구 프로 구단의 선수 명단, ‘슈퍼스타 K’ 등의 오디션 경영 프로그램의 생존자 명단 등이 포함되었다. 휴대전화가 생긴 후에도 이 버릇은 계속해서 이어져, 지금도 가장 자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메모장’일 정도다.

(리뷰)

‘기록’하는 습관은 미디어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습관으로 무장돼 있는 글쓴이에게 독자(채용 담당관 등)는 ‘매력’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3개의 키워드로 ‘기록’ ‘우등생’ ‘꼼꼼함’을 썼습니다. 3개의 자기소개 키워드를 도형이나 모양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조합이 좋을까요. 3개 모두 동그라미(●-●-●)이거나 3개 모두 하트(♥-♥-♥)인 것보다는 [●-♥-◆]처럼 3개의 다른 모양이 담겨 있는 것이 좀 더 다채롭고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등생’ ‘꼼꼼함’은 잘 그린 동그라미(기록)와 구별되는 다른 모양이 아니라, 그 동그라미(기록) 안에 들어있는 작은 동그라미 같은 느낌을 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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