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중간고사(‘차이 vs 차별’) 이야기를 통해 [미디어 글쓰기 강의 노트]의 중간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중간고사 문제입니다.
차이(差異):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
차별(差別):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
위와 같이 차이와 차별은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차이'로 포장하는 경우, 또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차별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나는
1) 차이와 차별을 어떻게 구분하고,
2) 차이는 인정하면서 차별하지는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간 : 120분
형식 : 제한 없음
분량 : 8절지 원고지 2장(2000자) 이내
중간 점검을 통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목처럼 [그 어떤 글을 쓰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글을 쓰자]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저널리스트들은 “내가 아는 내용만 글로 쓰자”라는 얘기를 많이 하고, 많이 듣습니다.
‘To know is one thing, to teach is another’(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영어 속담처럼, ‘To know is one thing, to write is another’(아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스스로 ‘잘 아는 내용’이라 판단하고 글로 쓰는데, 읽기 쉽고 알기 쉽게 표현되지 않거나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 글은 일단 보류돼야 합니다. 더 취재하거나 더 공부해서 ‘이 글을 읽는 일반 독자나 시청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구나’하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미디어 글쓰기는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쓰기] 같아서 더욱 그렇습니다.
‘차이 vs 차별’ 중간고사 개별 답안에 대한 리뷰에서도 같은 얘기가 반복됩니다.
Good Lead(좋은 첫 줄)와
Good Listener(잘 듣는 사람).
“한 학기의 강의를 듣고 머릿속에 딱 이 2개의 키워드만 남아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계속 말씀드립니다.
1) 무엇으로 어떻게 시작해서 내 글을 이끌어갈지를 늘 생각하고
2) 상대방이 말하는 핵심이 뭔지를 제대로 들으며 반응(재확인, 질문 등으로)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키워드만 장착하면 어디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글도 잘 쓰는, 좋은 사람’이란 평판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글 중에 눈길을 붙잡았던 Lead(첫 줄 또는 첫 줄을 포함한 도입부)를 몇 개 소개하고, 좋았던 점과 함께 아쉬웠던 점도 적어보겠습니다.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감정은 어제 일인 듯 생생하다.
‘억울하다 억울해.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
고등학교 1학년,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3년 동안 활동할 동아리에 지원하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영어를 좋아해서 영자신문 동아리에 지원했는데, 선발 과정에 명백한 차별이 있었다. 인기 동아리에 속했던 이 동아리는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서 부원을 선발했는데, 모든 지원자가 이 과정을 동일하게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교사의 지시로 인해 전교 50등 이내만 소속될 수 있는 심화반 학생에서만 선발하도록 조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교에서 성적순으로 50명만 뽑는 심화반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심화반 내에서만 부원을 선발한 영자신문 동아리는 차별이라고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자격을 얻기 위한 기회가 얼마나 균등한지, 접근가능성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 학기, 매 시험마다 학생들은 동등한 응시 기회를 부여받고, 각자의 성취도에 따라 더 놓은 수준의 보충 강의와 별도의 학습 공간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심화반 제도는 서로 다른 성취도 수준, 그에 따른 차이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하지만 심화반 소속 여부에 따라 애당초 합격∙불합격의 여부가 결정됐던 영자신문 동아리의 선발 기준은 학생들의 수준에 차이를 두어 구별하고, 동아리에 가입할 기회를 박탈하는 차별에 해당한다.
결국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핵심 기준은 ‘기회나 권리가 모두에게 부여되었는지’에 달려 있다.
(리뷰)
가장 마음에 드는 리드였습니다. 글쓴이가 소화해 낼 수 있는 내용(심화반의 차이 vs 영자신문 동아리 선발의 차별)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글쓴이의 차이와 차별 구분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겁니다. 손에 잡히는 이야기로 시작하니까 ‘글쓴이는 차이와 차별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구나’가 읽힙니다.
아쉬운 점은 너무 이슈를 확장한 부분입니다. 굳이 ‘장애인 대중교통 이용 문제’ ‘성소수자의 차별’ 이슈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이슈(심화반의 차이 vs 영자신문 동아리 선발의 차별) 하나만으로도 2000자 분량이 부족하지 않나요. 흡입력 있던 리드의 위력이 중반부 이후 다른 이슈들을 끌어들이면서 급격히 시들어가는 느낌이에요. ‘학교 내의 차이 vs 차별’ 얘기만 한다고 해서 글이 빈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입체적이고 풍성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남성으로서’ 나는 이렇다 할 만한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차별을 논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오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나 스스로 차별을 더욱 명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고 이 글은 그런 생각을 출발점으로 한다.
(리뷰)
첫 문장([고백하자면 ‘○○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남성으로서’ 나는 이렇다 할 만한 차별을 느껴본 적이 없다.])만 좋았습니다. 첫 문장의 결을 그대로 살려서 글을 써봤으면 어떨까 싶네요. 나는 왜 ‘이렇다 할 만한 차별’을 느낀 적이 없을까? 공부를 잘해서? 남자여서? 아니면 차이와 차별에 둔감해서? 마음이 착해서?
남들은 차별을 느낄 만 한데, 나는 차별받지 않았던 상황과 시점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탐구해 봤으면 어땠을까요? 그 지점이 바로 차이가 차별이 되는 현장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내 얘기를 가지고 파고들었다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 같은 벙벙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았겠죠.
대림동 여경 사건을 기억하는가. 몇 해 전 온라인에는 주취자를 제압하는 두 경찰의 모습이 토막의 CCTV영상으로 올라왔다. 여성경찰은 가만 서 있고, 남성경찰은 주취자 시민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모습이었다. 여경무용론이 제기됐다. 필요한 순간 경찰의 직무를 다하지 않은 해당 경찰이 여경이라 무능했다는 것이다. 그 CCTV영상은 훗날 짧은 편집으로 전말을 왜곡한 영상임이 드러났다. 해당 여경은 매뉴얼대로 대응 중이었으며, 이를 해명하는 책도 썼다. 하지만 그동안 여경들은 자신 역시도 찰나의 행동이 대림동 여경처럼 박제될까 봐, 여경 전부의 무능으로 검열당할까 봐 수없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며 어쩔 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것이 바로 차이가 차별이 되는 순간이다.
(리뷰)
이처럼 구체적 사건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리드도 좋네요. 이 사건을 잘 모르거나 대강 아는 독자도 있을 수 있으니, 사건 개요를 짧은 문장으로 잘 압축하면서 그 안에 담긴 ‘차이 vs 차별’의 문제를 잘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리드가 보여준 구체성이 ‘어색한’ 개념화([차이는 차별행위의 발생에 있어 무혐의일 수 없다] 등등)로 희석돼 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같음의 정치] [차이의 정치] [전환의 정치]라는 개념도 꼭 필요한 건지 모르겠어요. 여경 사건에 담긴 의미를 나름의 시각으로 잘 파고들었으면 쭉 그 결대로 밀고 나갔으면 훨씬 더 힘 있게 잘 읽히는 글이 됐을 것 같아요.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차이를 서술부에 넣으면 ‘차이가 있다’라는 표현이 되지만, 차별을 서술부에 넣으면 ‘차별하다’로 표현된다. 이렇듯 차이와 차별은 두 대상에 다름이 존재하는 그 자체인지, 혹은 ‘하다’라는 동사를 통해 무언가를 구별하는 행위인지의 다른 점이 있다. 제시된 정의를 살펴봐도, 차이는 다른 정도나 상태를 의미하며, 차별은 등급이나 수준 등을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첫 기준은, 행동이 덧붙여지느냐 아니냐로 볼 수 있다.
(리뷰)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가 전혀 담기지 않은 이 리드([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간단하다.])도 제 눈길을 잡았습니다. ‘간단하다’는 표현의 의외성 때문입니다. ‘차이 vs 차별’이란 어려운 이슈에 대해, 글쓴이는 ‘그거 안 어려워. 쉽고 간단해’라고 말하니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죠.
그런데 글쓴이의 ‘낚시’에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문단부터 끝까지 ‘이 문제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쓰여 있어요. 그냥 리드 문단에 쓴 대로 ‘차이는 존재의 문제지만, 차별은 ‘어떤 행위’에서 파생하는 문제야. 그러니까 이 간단한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해. 실제로 봐봐. 이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 보이지만, 내가 말한 대로 심플하게 인식하니까, 해결의 길이 보이잖아’ 같은 방식으로 전개됐으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는 적극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해마다 대학입시 기간이 되면 주기적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글이 있다. 바로 아래와 같다.
초등학교 때 : 개성 죽여라
중학교 때 : 개성 죽여라
고등학교 때 : 개성 죽여라
대학교 때 : 개성 있는 사람 멋있어
취업 준비 중 : 당신의 개성을 보여주세요
취업 후 : 개성 죽여라
‘서로 다름’이라는 명확한 정의가 통용되는 차이라는 개념이지만, 그것을 개인도 사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자신도 경험했다며 긍정을 표한 윗글이 보여준다. 차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차별은 더욱 만연하다. 다름을 다름 그 자체로 인정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리뷰)
리드(도입부)에 인용된 글을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어요. 종종 ‘한국의 네티즌은 세상에서 제일 천재적인 작가들’이란 생각을 하거든요. 이런 촌철살인의 인용문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도 흥미로워요. 제목([우리는 적극적으로 차별하고 있다])도 강렬했고요.
그런데 너무 급해요. ‘개성’ 이야기를 ‘차이’의 이야기로 가져가야 하고, 그 ‘차이’ 이야기를 다시 ‘차별’로 이끌어가야 하는데, 재미있는 얘기 하나 소개하고는 그냥 막 자신이 정해놓은 길로 가버리는 느낌이에요. 독자는 잘 이해 안 되는, 멋진 말씀의 향연([차별의 본질은 차이점을 근거로 주체를 하나의 단일체로 환원하는 시각이다] [개별적인 특성으로 사람과 행동을 전부 설명하려 할 때 차별은 시작된다] 등)이 독자의 소외감을 더 크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