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글쓰기 강의 노트]의 후반부는 [저널리스트 글쓰기]입니다. ‘기자(記者)처럼 글쓰기’입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저널리스트는 어떻게 취재해서, 어떻게 글로 쓰는지 보여드리려 합니다.
현장 강의에서도 키워드 자기소개서, 다양한 주제의 작문, 체험을 반영한 논술 등 기본적인 글쓰기 연습을 전반부에 하고, 중간고사 이후 후반부에는 인터뷰 르포 칼럼 같은 저널리스트 글쓰기 실습을 합니다.
[프롤로그 : 가르치며 배우는 소중한 순간들]에서도 아래와 같이 소개드렸었죠.
중간고사 이후에는 사람을 담은 인터뷰, 현장을 품은 르포, 관점이 실린 칼럼을 각 1건씩 ‘발제→취재→기사 작성’ 해보게 했다.
수업 시간에 진행된 ‘가상 언론사 편집회의’에선 자신의 기사는 ‘세일즈’하는 한편, 다른 학우들의 발제나 기사에 대해선 건설적 조언이나 예리한 비판이 오갔다.
[저널리스트 글쓰기 오리엔테이션(OT)]에서 드리고 싶은 말씀의 핵심은 [‘글쓰기’보다, 그 글에 담을 내용을 묻고 찾아내는 ‘취재’가 더 중요하다]입니다.
취재가 잘 돼 있으면 글 쓰는 것은 그만큼 쉬워집니다. [오리엔테이션(OT) 2 : 남의 말을 잘 들어야 내 글이 잘 써진다(굿 리스너(Good Listener∙잘 듣는 사람) 되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제대로 취재하지 않고 쓰는 글은 ‘기사’가 아니라, ‘어설픈 소설’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널리스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고, 때론 모욕적으로 느끼는 반응 중 하나가 “소설 쓰냐?”입니다.
소설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가공의 사건이나 가공의 인물을 표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널리스트는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저널리스트는 팩트(fact∙사실)를 글에 담아야 합니다.
소중한 팩트를 취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현장 저널리스트로 한창 활동할 때인 2004년, 대학 동창회보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쓴다
"아들아. 기자 그만 두면 안 되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1996년 초 수습기자 시절 새벽 4시에 출근하는 필자의 등을 향해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내내 경찰서에서 먹고 자다가 옷가지를 챙기러 집에 갈 수 있는 날은 토요일 저녁. 그렇게 집에 도착한 아들이 잠시 거실에 눕더니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새벽 4시가 되자 훈련소 신병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경찰서로 향하자 어머니는 어지간히 마음이 아프셨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때를 "주 5일 근무를 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여가를 보내는 한의사 큰아들의 넉넉한 삶과 둘째 아들(필자) 앞에 펼쳐질 고달픈 삶이 너무 대비되더라"고 회고하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기자의 삶은 실제로 고달팠다. 특히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3D 부서'로 불리는 사회부, 정치부만 전전해온 필자에게 그 고달픔은 가족에게 그대로 전가됐다.
신문 최종마감 시간인 자정 이전에 귀가하려면 자꾸 뒷골이 땡기는 '묘한 병'이 생겼다. 가뭄에 콩 나듯 오후 10시경 퇴근한 필자에게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라며 의아해하는 아홉 살 맏딸의 반응이 더 이상 낯설거나 서글프지 않다.
기자 사회의 경구는 대부분 바쁘고 고달픈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감 시간엔 소변보고 뭐 볼 시간도 없다'가 대표적. '마감 시간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눈물 흐를 겨를이 없다'는 반(反) 인륜적 표현도 있다.
기자생활의 경구(警句)들
'기사만 안 쓰면 기자가 최고 직업'이란 말은 기사 쓰고 마감시간을 지키는 스트레스의 막중함을 다르게 묘사한 것이다. '선거만 없으면 국회의원이 최고 직업'이라는 경구와 비슷하다. 물론 총선은 4년에 한 번이고, 기자들은 매일 기사를 쓴다는 것이 엄청난 차이이지만….
필자가 2001년 10월부터 2004년 4월까지 편집국 내에서 시간 외 수당을 가장 많이 주는 출입처 중 하나인 정당을 담당하면서 체득한 경구가 하나 있다.
'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쓰자'
나이 40이 넘는 고참 선배 기자들이 단 말 몇 마디를 듣기 위해 남(의원들) 밥 다 먹을 때까지 식당 한 귀퉁이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땐 "좋은 대학 나와서 내가 뭐 하는 짓이냐. 아이들은 아빠가 이러는 것 알까"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주워들은 한 마디가 신문 1면 톱기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비참한' 취재 과정을 참아내는 것이다. 취재가 힘들수록 기사는 힘 있는 법이니까.
(2004년) 7월 9일 자에 보도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고구려 삭제 파문' 기사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하는 '이 달의 기자상(제167회 취재보도 부문)'을 받았다. 중국 외교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3국(고구려·백제·신라) 시대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고구려'란 세 글자를 지워버렸다는 내용이었다.
한밤중의 '고구려' 찾기 대작전
필자는 올(2004년) 4·15 총선이 끝난 뒤 정당팀에서 외교통상부로 출입처를 옮겼다. 당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이미 한·중간 중요한 외교현안이었다. 그 핵심은 중국 정부가 직접 왜곡에 가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심증은 충분하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밤마다 외교부 기자실에 남아 서울과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체크하는 '전화 마와리'(경찰서를 돌아다니는 사건기자를 지칭하는 일본의 '사쯔마와리 察廻'에서 파생된 기자사회의 은어)를 돌기 시작했다. 7월 8일 오후 11시경 한 외교소식통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최근 고구려가 삭제됐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면 중국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첫 증거가 되는 셈이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후배 기자, 국방부를 출입하는 후배 기자, 베이징특파원 선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이 잡듯 뒤지는 대작전을 폈다. 11시 45분경 홈페이지의 한국 개황 부분에서 삼국시대 관련 기술 부분에 '신라'와 '백제'만 남아 있는 것이 간신히 확인됐고, 신문의 주요 도시 시내판 마감 시간인 자정 전에 서둘러 기사를 출고했다. 그야말로 '개처럼' 헐떡거린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정승'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정식으로 항의하면서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하는 한 '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쓰자'는 경구는 좌우명처럼 지킬 생각이다. 취재 과정의 심적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달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향해 "사람 같지 않은 기자 생활 그만 두면 안 되냐"고 하시던 어머니는 요즘 이렇게 말씀하신다.
"개처럼 헐떡거리며 열심히 사는 것이 네 팔자려니 생각해라."
필자가 개띠고 삼복더위가 한창인 8월 초(양력) 대낮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어머니식 사주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