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글쓰기-인터뷰 : 준비한 만큼 듣게 된다 3

by Newfifty

[저널리스트 글쓰기-인터뷰 : 준비한 만큼 듣게 된다]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언론사 채용에서 서류(자기소개서) 전형, 필기시험(작문과 논술) 다음으로, 실무면접이나 실무평가가 있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인터뷰는 르포 다음으로 실무평가 과목에 종종 등장합니다.


제가 채용 실무 담당자일 때는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초대해 ‘실전(實戰) 기자회견’처럼 인터뷰 테스트를 보곤 했습니다.


1명의 인터뷰이(interview∙인터뷰 대상, 대답하는 사람)에게 10명의 인터뷰어(interviewer∙인터뷰 진행자, 질문하는 사람)가 질문하는 회견을 했다면 그 10명의 인터뷰어(저널리스트)가 쓰는 글은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저널리스트는 남의 말을 들어서 내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10명의 [내 글]이 똑같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죠.


‘남과 너무 동떨어진 글을 쓰는 것 아닌가?’를 걱정하지 마시고, ‘나만의 글이 잘 써지고 있는가?’에 천착하시길 권합니다.


2017년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를 다른 저널리스트 몇 명과 공동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요, 다른 저널리스트의 글과 제 글을 차례로 보여드립니다.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가 (2017년) 5월 18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 선다.


메인 공연장인 '스턴 오디토리움'의 무대에서 혼자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한다. 피아노나 오케스트라 반주가 없는 3시간의 독주다.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과 음악적 깊이에다 체력까지 더해져야 정복되는 '바이올린의 에베레스트'이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으로 구성된 이 곡을 이틀에 나눠 연주했다. 하루 연주에 도전하는 것은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정경화가 처음이다.


정경화는 지난달(2017년 4월) 2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6곡을 한꺼번에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69세다.


1967년 카네기홀에서의 첫 연주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의 첫걸음이었다면, 이번 연주는 이후 50년 동안 단련해 온 음악적 내면을 응축시키는 무대다. 문답은 다음과 같다.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서 우승하고 그해 5월 16일 카네기홀에 데뷔했다.


“13살 때 뉴욕으로 유학 와 카네기홀의 제일 싼 발코니석 티켓을 사서 거장들의 연주를 보곤 했다. '나도 언제 성공해서 서보나' 하던 꿈의 무대였다. 유학 6년 만에 레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서 1등 하면서 그곳에서 연주했다. 올해로 50년이 된다."


-크고 작은 공연까지 하면 카네기홀에서 이번이 20번째 공연이다. 익숙한 장소여서 긴장이 덜할 것도 같다.


“익숙하기는 성장해서 22살 때 첫 연주를 했던 영국 런던 페스티벌 홀이다. 이곳에서 많이 연주해서인지 지금도 내 집처럼 편하다. 카네기홀은 안 그렇다. 어린 시절 고생하면서 동경했던 무대이고, 홈타운이어서 오히려 두려움이 있다.”


-바흐 무반주작품 전곡으로 지난해 앨범을 냈다.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유학 시절 스승인 이반 갈라미언(1981년 작고)에게 처음 배운 곡으로 안다.


“1973년에 두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끝나고 ‘나는 준비가 안 됐고 너무 어리다. 더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때 평론도 아주 좋게 나왔다. 그런데 괴로운 것은, 옆에서 아무리 침이 마르게 칭찬해도 나 스스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 곡을 연주할 기회를 기다리다가 2005년(손가락 부상으로 공백기가 시작됐던 해)을 맞았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2010년 제 손가락이 나았다. 2012년 명동성당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데 너무 행복했다. 파르티타 2번 '샤콘느'를 하는데 너무 좋은 거다. 그때 (나의 연주가) 현실화될 수 있구나 싶었고, 지난해 앨범까지 냈다. 55년이 걸렸다.”


-어떤 곡인가.


“기막힌 오르가니스트였던 바흐는 오르간의 웅장한 표현을 바이올린이라는 이 작은 악기에 집어넣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보통 연주회는 인터미션을 한번 두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두 번이다. 세 등분으로 나눴을 때 '샤콘느'로 끝나는 중간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너무나 웅장하다. 이 연주에는 굉장한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집중력이다. 예술인들은 몰두해서 연주할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제 나이에 이 연주를 하는 것은 체력에 더해 정신력으로 하는 것이다. 올해 무반주 6곡을 전부 연주하는 게 이번이 8번째다. 6곡 전곡 연주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려고 한다.”


-손가락 부상에 따른 공백기가 연주생활에 어떤 영향을 줬나.


“손가락을 다쳐 연주를 못 하니 한걸음 물러서서 보게 되더라. 그때는 '나는 은퇴'라고 생각했다. 줄리아드 교수로 5년 가르쳤다. 그때 느낀 게 '음악의 뼈대는 역시 바흐'라는 것이었다. 하모니 구조를 이렇게 천재적으로 구상한 사람이 역사적으로 없다. 바흐가 지루하다고들 하는데 저에게는 절대 안 그렇다. 바흐의 멜로디는 마음의 영혼을 울리는 멜로디다. 음악의 표현은 절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고통이 있어야 나온다. 저도 그런 고통을 가져봤다. 이제 정말 겸손하게 바흐 무반주곡을 카네기홀에 들고 간다. 욕심부리자면 또 하고 싶다. 주변서는 내년 프랑스 파리에서도 6곡 다 연주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번 카네기홀로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승인 갈라미언에 대한 기억이 새로울 것 같다.


“이번 연주는 갈라미언 선생님에게 헌정하는 연주다. 선생님이 있어 오늘날 제가 있다. 선생님은 여자인 저에게 ‘네가 (음악인이) 되려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제가 국제콩쿠르 우승 후 연주회를 다니는 것을 보고 ‘남자 소녀(boy girl)’라며 좋아하셨다. 제가 힘들다고 불평할 때마다 ‘인내하라’고 해주셨다. 지혜를 많이 주셨고, 선생님의 한두 마디가 평생 저를 지켜줬다."


-연주하면서 실수하기도 하나.


“물론이다. 실수는 안 할 수가 없다. 젊은 음악인들은 올림픽대회에 나간 선수가 기록 경신하듯 테크닉이 훨훨 난다. 그러나 저의 팬 중의 한 명은 제 연주를 포도 주스가 아니라 잘 익은 와인에 비교하더라. 카네기홀에서는 완벽한 연주를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완벽'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바이올린이 좋은가.


“저는 무대에 서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제가 그것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지금도 미칠 정도로 좋다. 바이올린은 지금도 한도 끝도 없이 신비하다. 옛날에는 완벽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자유로워졌다. 다만, 음악인으로서 책임감은 항상 지키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음악의 아버지’로 부르는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 등 총 6곡을 한 번의 공연에서 연주하는 것(전곡 연주)은 ‘에베레스트 등정’에 비유되곤 한다. 피아노 반주자도, 악보를 넘겨주는 도우미도 없이 3시간 반에 걸쳐 큰 무대 위에서 외롭게 벌이는 사투(死鬪)와 같기 때문이다.


이달(2017년 5월) 18일 미국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에서 이 전곡 연주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를 지난달(2017년 4월) 27일 그의 맨해튼 아파트 내 콘퍼런스룸에서 만났다. 먼저 “관객의 2번 휴식시간까지 합치면 장장 4시간짜리 공연이다. 체력적으로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었다.


“오로지 집중력으로 이겨냅니다. 집중하고 몰두하면 (체력적 부담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집중해서 연주하고 그에 대한 관객의 집중력이 무대에서 느껴지는 순간, 그 기분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관객이 힘들어도 중간 (클라이맥스) 연주까지는 듣고 가셔야 하는데….(웃음)”


그는 “공연을 앞둔 요즘 끊임없이 바흐만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 몇 차례 “질문이 뭐였죠. 제가 바흐 생각하느라고…”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바흐 음악을 하다 보면 미술처럼 그 색채가 다 보인다. 슬픔이 있는 곳에선 떨어지는 눈물이 보인다. 아름다움과 웅장함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고 말했다. 그의 바흐 무반주 전곡 도전은 20대 때인 197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제 연주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저 스스로 ‘난 아직 바흐를 연주할 준비가 안 돼 있다. 난 이 곡을 연주하기엔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서 아무리 칭찬을 해도 저 자신이 ‘아니다’라고 느끼면 아닌 거죠.”


그는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5년 넘게 은퇴했다가 2010년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그 공백기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걸 가르쳤고, 많은 걸 줬어요. 그 기간 손으로 연주할 수 없으니, 머릿속으로 계속 연주했습니다. 그 덕분에 바흐 전곡 연주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는 “당신 같은 바이올린의 거장도 연주 때 실수를 하느냐”는 질문에 “실수는 안 할 수 없다. 음악에서, 예술에서 완벽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하는 이유에 대해 “수천만 번 바이올린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다가도, 수억 번 바이올린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로부터 받은 교육을 소개했다.


“부모의 최고 덕목이 뭔지 아세요. 저는 ‘관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특징과 장점이 무엇인지, 정체성이 어떤지를 끊임없이 관찰해야 합니다. 바이올린이란 내 정체성을 찾게 된 건 순전히 엄마 덕분입니다.”


그의 어머니(이원숙 여사)는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너의 꿈을 펼쳐라’ 등 여러 권의 자녀 양육에 관한 책을 냈다.


“아주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피아노 초급인 ‘바이엘’ 연주집을 다 공부하고 엄마 앞에서 연주를 하는데, 제가 그때까지도 악보를 읽을 줄 몰랐습니다. 피아노 선생님은 ‘경화야 너 연주 다 했잖아. 왜 악보를 못 읽어’라며 당황해하셨는데 엄마는 ‘우리 딸이 음악 천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음악을 소리로 전부 외워서 연주했다는 걸 아신 거죠.”


정경화는 “그때 엄마가 ‘너한테 피아노 가르친다고 든 돈이 얼마인데 아직 악보도 못 읽니’라고 혼냈다면 나는 음악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너는 정말 너 자신이 음악을 사랑하니?”이다. 어떤 부모는 “내가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아이를 연주자로 키우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경화는 “아이들이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는 존재는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입시전쟁, 취업전쟁 등으로 너무 힘들어한다”고 말하자 “좌절할 때 혼자 이겨내기 참 어렵다. 나도 그랬다. 도움이 필요하다. 안아주는 사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또한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다.


“좌절의 정확한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도와줘야 합니다. 그 또한 자신만의 목소리(정체성)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첫 번째 저널리스트는 ‘정경화 인터뷰’를 그의 바흐 연주와 음악세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두 번째 저널리스트는 인터뷰의 전반부에는 음악 얘기를, 후반부에는 자녀 교육과 부모의 역할 이슈를 다뤘습니다.


두 번째 저널리스트가 후반부를 그렇게 쓴 이유는 평소 ‘자녀 교육과 부모의 역할’에 관심이 많고, ‘일반 독자들도 정경화 같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떻게 교육됐고, 어떤 교육관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두 저널리스트 모두 각자 ‘나의 글’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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