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편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일기는 주로 내가 쓰고 나만 읽는 글이고, 편지는 내가 아닌 남에게 읽어 보라고 전하는 글이죠.
일기는 나만 기억해 내고 나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되지만, 편지는 내가 아니라 받는 대상이 글의 내용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죠.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나 동료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내 일기장에는 '오늘도 그 인간 때문에 기분 더러웠다'라고만 써도 되지만, 엄마 아빠나 친구에게 그 얘기를 메시지(편지)로 토로한다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하겠죠. 나를 속상하게 한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요.
일반 대중을 독자로 삼는 미디어 글쓰기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친절하게, 더 많은 신경을 써야겠죠.
독자는 글을 쓰는 나에 대해서도 모르고, 내가 전하고자는 내용이나 의미에 대해서도 사전지식이나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제가 주니어 기자일 때는 차장 부장 데스크 선배들이 "성인이 아니라, 중학교 1학년 생이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게 쉽고 친절하게 써라"는 주문을 많이 했습니다.
아래는 그 시절 썼던 기사 중 하나입니다.
[시각장애학생 "수능이 두려워요"]
“3교시 중간부터 왼손 검지 손가락이 아파오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려요. 가장 자신 있는 4교시 외국어영역 시험을 볼 때는 문제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니까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20여 일 앞둔 요즘 시각장애 고3년생들은 남모르는 걱정이 많다.
대학입시가 수능시험으로 바뀐 뒤 지문이 월등히 길어지고 보기가 4개에서 5개로 늘어나면서 글자 한 자 한 자씩을 손끝으로 읽어 내려가야 하는 시각장애자들로서는 전보다 시험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수능시험은 지난해보다 30문항이 많아지고 시험시간도 길어져 일반학생들이 문제 푸는 시간의 1.5배가 주어지는 시각장애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빼고 꼬박 9시간 45분 동안이나 시험지에 매달려야 한다.
서울 소재 대학의 특수교육과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金賢雅 양(17·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은 “5∼6장의 시험지를 점자로 옮기면 A4용지로 1백 장이 넘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모의고사를 몇 번 치러 봤지만 항상 지문이 긴 언어영역이나 수리탐구Ⅱ영역 10문제 가량은 손도 못 댄다”고 말했다.
대학 2학년 때 건강이 악화되면서 갑자기 시력을 잃어 올해 대입에 다시 도전하는 李昇哲 씨(24)는 “시각장애인은 문제를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보고 풀 수가 없기 때문에 ‘쉬운 문제를 먼저 푼다’는 식의 시간안배를 할 수 없다”며 “문제 중 ‘밑줄 친 부분’을 지문에서 다시 찾으려면 시험지 몇 장을 넘기며 한참을 더듬어야 한다”며 시각장애 수험생이 된 뒤 느끼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점자로 된 변변한 참고서 하나 없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서울맹학교 교사들은 지난 9월 입시관계기관에 ‘언어와 수리탐구Ⅱ영역만이라도 문제를 녹음한 테이프를 점자문제지와 함께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점자학습을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맹학교에서 점자를 읽는 속도가 가장 빠른 편이라는 閔淑喜 양(18)은 “적어도 내 기준으로 볼 때 시험을 치면서 겪는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한계’"라며 “만약 문제를 들으면서 풀면 시간도 절약되고 피로도 덜 느껴 힘들게 공부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96년 10월> 시각장애학생들이 지문이 길어진 수능 시험을 준비하며 겪는 어려움을 전달한 기사입니다.
일기장에는 '오늘 시각장애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라고만 써도 되겠지만, 독자들에게 그 어려움을 전달하려면 구체적이어야 하겠죠.
예를 들어
1) 3교시 중간부터 (점자 읽는) 손가락이 아프고 부들부들 떨려 4교시 문제는 제대로 읽을 수도 없고
2) 쉬는 시간 빼고 9시간 45분이나 시험지에 매달려야 하고
3) 한 과목 시험지를 점자로 옮기면 A4용지 100장이 넘고
4) 쉬운 문제를 먼저 푸는 식의 시간 안배가 불가능하고
5) '밑줄 친 부분' 찾기도 어렵고
6) 점자 읽는 속도가 가장 빠른 학생도 절대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등등.
‘9시간 45분’, ‘A4용지 100장’, ‘10문제 가량’은 손도 못 낸다 등의 표현 방식에도 주목하시면 좋습니다.
미디어 글쓰기에서는 '오랜’ 시간, '엄청난’ 분량, ‘많은’ 문제 같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최대한 지양하기 때문입니다.
25년 6개월 간 저널리스트 생활을 하면서 수 천 건의 기사를 썼는데요.
그중 단 하나의 '인생 기사'를 꼽으라면 저는 위 기사를 얘기합니다.
이른바 특종을 하거나, 기자상을 받은 기사들도 있지만 위 기사가 저로서는 ‘저널리스트의 초심(初心)’ 같기 때문입니다.
위 기사 보도 이후 관련 시민단체에서 제도 개선 촉구 성명을 내고, 다른 언론사에서도 관련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그 영향인지, 덕분인지 그다음 해(1997년)부터 녹음테이프가 지급됐습니다.
[시각장애 수험생들 “올핸 마음껏 실력 발휘”]
“가슴 설레며 시험날을 기다려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98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 3학년 1반 교실.
여대생 자원봉사자가 읽어주는 문제를 들으며 마무리 시험준비를 하고 있던 이 학교 3학년 박병찬(朴炳讚·26) 씨의 얼굴은 초조와 긴장으로 가슴을 졸이는 여느 수험생들과 달리 희망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번 수능시험부터 시각장애 수험생을 위해 1교시 언어와 3교시 수리탐구Ⅱ 시간에 문제가 녹음된 음성테이프가 제공되기 때문.
박 씨는 그동안 두 차례 수능시험에 응시했으나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점자문제지를 읽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 매번 전체 문항의 절반도 풀지 못했다.
“이번에는 적어도 두 과목에서 해답을 알면서도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일반 수험생은 잘 모를 거예요. ‘쌓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이 학교 김한규(金漢奎) 교사는 “그동안 시각장애 수험생에겐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식과 함께 초인적인 점자 실력이 요구됐었다”며 “많은 시각장애학생이 음성테이프의 도움으로 대학진학의 꿈을 되찾게 됐다”고 말했다.
1997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