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리스너(Good Listener) 되기
'굿 리스너(Good Listener)'란 표현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말로 ‘잘 듣는 사람’ '잘 들어주는 사람' '경청(敬聽)하는 사람' 정도가 되겠죠.
저는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저널리스트(기자)’가 되는 가장 첫 조건으로 주저 없이 '굿 리스너'의 자세를 꼽습니다.
(살아가다 보니 '좋은 사람이 되는 핵심 조건 중 하나'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태도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굿 리스너'는 남의 말에 무조건 '좋다 좋다'하는 예스맨(yes-man)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굿 리스너'는 대화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적절한 질문과 반응으로 그의 속 깊은 얘기까지 이끌어내는 사람입니다.
특히 ‘적절한 질문’은 ‘굿 리스너’의 필수 요소입니다.
좋은 질문은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고, 당신의 말에 관심과 애정이 있고, 당신의 얘기를 계속 듣고 싶다’는 의미와 의도를 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잘 들은 '남의 말'은 남다른 '나의 글'을 만들어내는 데 최고의 재료가 됩니다.
하지만 ‘굿 리스너’의 길이 평탄하지 않습니다.
적잖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할 때도 많으니까요.
참고로 제 경험담이 담긴 칼럼을 하나 보시죠.
[토크쇼보다 ‘듣기 쇼’가 필요하다]
“아빠는 지방 출장을 갈 때마다 고속도로휴게소에서 호두과자로 식사를 때우곤 했어.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네 학원비를 대는 건데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니?”
“…. 아빠? 그 맛있는 호두과자를 아빠만 드신 거예요?”
중학생 아들을 둔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털어놓은 이야기.
기자 또래 동료 친구들이 처절히 공감했다.
한 지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아빠는 열심히 일해서 서울에 집 한 채 장만했다. 네 공부와 네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 집을 팔고 길에 나앉을 각오까지 돼 있다.”
그의 고교생 자녀가 며칠 후 진지하게 말했다.
“아빠 저는 공부 쪽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약속하신 대로’ 이 집은 저한테 물려주시는 거죠?”
부모는 해주고 싶은 말을 하는데 아이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외국인 외계인과 대화해도 이보다 나을 것”이란 학부모가 주위에 많다.
(중략)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일은 정신적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다.
한(恨) 많은 어르신을 인터뷰하면서 그 말씀을 5시간 반 동안 들어드린 경험이 있다.
너무 간절하고 절박해서 눈길 한번 흩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막판엔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데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그는 간혹 전화해서 한두 시간씩 하소연하곤 했다.
기자는 그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상황도 안 된다.
그런데도 그는 전화를 끊으면서 늘 이렇게 말한다.
“얘기하다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많이 정리되네요. 기자 선생, 들어줘서 고마워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8년 2월) 21일 총기 참사를 겪은 학생과 부모 40여 명을 백악관에 초청해 70분 정도 공개 면담했다.
어디서나 독설과 직설을 퍼붓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참석자 발언이 끝낼 때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경청하는 모습이 낯설고,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그가 들고 있던 메모지 맨 밑엔 ‘나는 당신의 말을 듣는다(I hear you)’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일부 언론은 “얼마나 공감 능력이 없으면 그런 내용까지 적어 놓느냐”고 한다.
TV 리얼리티쇼를 오래 진행한 그이기에 ‘경청도 하나의 쇼였을 것’이란 시선마저 있다.
기자는 그 메모가 ‘이 자리가 듣는 자리임을 잊지 말자’는 자기 다짐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듣기의 어려움을 체험해 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든, 김정은의 북한이든 상대 얘기를 70분 정도만 경청해 주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내 입장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자리가 아니고, 상대 얘기를 들어주는 만남이 북-미 간에도 가능할까.
말만 하는 토크쇼가 아니라 그런 ‘듣기 쇼’가 열릴 수만 있다면 복잡한 북핵 문제가 스스로 정리의 방향이나 단초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잘 듣기’의 대상은 사람의 말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자료를 읽고 글을 써야 한다면 그 자료를 꼼꼼히 읽고 핵심을 파악하고 의문점이나 궁금한 점에 대해선 관련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 등도 넓은 의미의 ‘잘 듣기’입니다.
같은 보도자료를 보고 쓰더라도, 뭔가 남다른 내용을 뽑아내거나 부가가치를 높인 기사를 써냈다면 그 저널리스트는 ‘굿 리스너’의 자세를 가졌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굿 리스너’의 태도는 좋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데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립니다.
[‘행복한 결혼&화목한 가정’을 위한 체험적 3대 팁(https://brunch.co.kr/@bookum90/9)]
셋째, 배우자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한 사람’이라면 행복한 결혼, 성공한 인생이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나 동료’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힘든 공부도, 스트레스 많은 회사생활도 할 만하다.
내가 겪는 문제든, 고통이든 그걸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란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문제나 고통을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런 과정에서 내 문제나 고통이 객관화 형상화되고, 그 해결의 방법들도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 그려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 친구나 동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는 행위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문제나 고통을 같이 해결해 준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나의 기쁘고 즐거운 얘기뿐만 아니라 화나는 얘기, 슬픈 얘기, 억울한 얘기 등도 다 잘 들어주는 사람(배우자)이 나랑 같은 집에서 평생 함께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이고, 살 맛 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잘 듣는 것’(good listener 되는 것)도 부부 간에 서로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주파수가 계속 잘 맞고 있는지’ 꾸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 노부부의 말다툼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가 우연히 있었다.
그 다툼의 핵심을 요약하면 남편은 “당신이 필요한 것 100 중 99(경제적 여유 등)를 내가 해줬는데 무슨 불만이 있느냐”는 것이었고, 아내는 “그 99보다 당신이 주지 않는 나머지 1(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이 내게는 더 소중해”하는 것이었다.
제삼자의 귀에는 두 분의 엇갈리는 지점이 들리는데, 두 분은 그 지점을 인식도, 인정도 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같은 취지의 말씀만 반복해하고 있었다.
두 분 중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 할 수 없는 것 같다.
상대의 얘기를 충분히 제대로 듣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파수가 안 맞기 시작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배우자의 얘기를 충분히 잘 들어주자’는 마음을 갖자. 그래야 배우자도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겠는가.
경험상 ‘서로 잘 들어주는 부부와 가정은 행복하고 화목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