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 3 : 시작이 좋은 글이 끝까지 좋다

좋은 첫 줄(Good Lead) 쓰기

by Newfifty

‘시작이 반(半)이다’라는 말이 있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미디어 글쓰기에서는 ‘시작이 전부(全部)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리드(lead)의 사전적 의미에는 동사로 ‘이끌다’, 명사로 ‘선두’라는 뜻이 있죠.


미디어 글쓰기에서 ‘첫 줄 또는 첫 줄을 포함한 도입부’를 리드라고 하는데, 실제로 좋은 리드는 글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leader) 역할을 합니다.


리드는 제목이자, 주제이고, 손님(독자 또는 시청자)을 부르는 강렬한 손짓입니다.


그래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보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이 기사는 리드(lead)를 무엇으로 할 건가?”

“이 기획은 리드 케이스(case∙사례)가 뭐지?”

“이 기사는 리드가 참 좋다. 분량과 비중을 늘리자.”

“리드가 재미도 없고 임팩트(impact∙영향력)도 없네요. 다시 써서 보내세요.”


후배 저널리스트나 언론사 취업준비생 등에게 글쓰기에 대해 조언할 기회가 있을 때면 저는 늘 “전체 글을 쓰는 데 드는 노력과 정성이 100이라면, 리드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데 51 이상을 쏟아라”라고 말하곤 합니다.


글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 잡히고 가장 적절한 리드 표현이나 문구, 케이스가 떠오르면 그 글은 사실상 다 써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라는 생각과 고민을 치열하게 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글쓰기에 대한 막막함이나 두려움이 옅어지거나 사라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아래는 사회부 사건팀(경찰서 출입) 소속일 때 썼던 글 두 편입니다.


리드(첫 줄 또는 첫 줄을 포함한 도입부)에 주목해서 읽어봐 주세요




[“비디어에서 본 대로”]

“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캘리포니아’의 주인공처럼 범죄행각을 벌이다가 ‘그랑블루’의 마지막 장면처럼 바다에 빠져 죽고 싶었어요.”

(1996년 5월) 13일 오전 서울 성동경찰서 수사 1계 유치장 면회실.

범죄영화에서 본 대로 여관 등을 전전하며 강도강간 행각을 벌이다 붙잡힌 임모 씨(24∙무직∙주거 부정)가 태연히 내뱉는 말이었다.

임 씨는 지난 한 달간 거의 매일 대학가 부근 커피숍 비디오방 운동복대리점 등에 손님을 가장해 들어가 혼자 있는 여종업원을 칼로 위협, 돈을 뺏고 성추행을 일삼다가 체포돼 특수강도 및 강간 혐의로 12일 구속됐다.

임 씨는 지난 6일 오전 11시 20분경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K비디오방에 손님을 가장해 들어간 뒤 혼자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종업원(20)을 흉기로 위협, 현금 1만 3천 원을 뺏고 성폭행하는 등 지난달 중순 경부터 지난 10일까지 강도강간 1회, 강제추행 4회를 포함해 25차례의 강도행각을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더 이상의 희망이라고는 없는 제게 비디오와 소설은 유일한 낙이었어요. 저의 범행기록이 누군가에 의해 영화시나리오로 쓰여지는 것이 저의 마지막 소원이었어요.”

임 씨는 주로 서울 시내 대학가에 있는 비디오방 커피숍 등을 범행장소로 설정, 전날 사전답사를 하고 범행 후에는 범행장소, 대상, 다음날 범행계획 등을 메모장에 날마다 일기 쓰듯 적어두었다는 것.

임 씨의 메모장에는 ‘5월 1일 노동절. 나도 노동자니까 쉬어야겠지’ ‘5월 7일 이제 난 프로다. 망설임 없이 90초 이내에 OK’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조사결과 임 씨는 92년 2월 가족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이민을 갔다가 미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93년 9월 부모 몰래 귀국, 범죄행각을 벌이다가 지난해 4월 2일 특수절도죄로 구속돼 지난 1월 26일 만기 출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와 10여 분 간 대화를 나눈 뒤 어깨를 늘어뜨리고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서는 임 씨의 모습이 결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한건주의 수사에 짓밟힌 인권]

은빛 수갑.

어린 시절 TV드라마에서처럼 험상궂은 범인을 붙잡을 때만 쓰이는 걸로 알았던 그 물건이 김 모군(19·I대 정외과 2년)에게 채워진 것은 지난(1997년 5월) 28일 밤 11시경.

예식장에서 함께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과 함께 회식을 마치고 3호선 압구정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복경찰 2명이 갑자기 등 뒤에서 덮쳤고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진 김 군의 양팔은 곧바로 뒤로 꺾였다.

‘철커덕 철커덕.’

수갑이 손목을 옥좨왔다.

변호사 선임권과 불리한 증언 거부권을 알리는 미란다원칙은 TV드라마에나 있는 일이었다.

“왜 이러느냐”며 영문을 물어도 경찰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인근 압구정파출소에 도착한 뒤에야 의문이 풀렸다.

우연히 10대 가출소년을 붙잡은 경찰은 그 소년이 지난 10일 압구정동 H아파트 절도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란 걸 알게 됐다.

“밤 10시 압구정역에서 부두목을 만나기로 했다”는 소년의 말을 믿고 경찰은 사복차림으로 잠복근무를 시작했다.

소년이 김 군을 가리키며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한 건’한 경찰에겐 김 군의 항의도 변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을 ‘피의자 1’, 김 군을 ‘피의자 2’로 명기한 긴급체포서가 만들어졌다.

소년의 진술을 토대로 ‘피의자 2 등은 범죄사실 틀림없다고 진술하는 바 미란다원칙 고지 후 검거한 것임. 형법 제329조에 해당된다고 사료된다’는 내용과 함께.

경찰은 29일 오전 6시경 긴급체포서와 함께 김 군을 관할경찰서로 넘겼다.

경찰서에서 재조사를 받은 소년은 “부두목은 오른쪽 손목에 칼자국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진술을 번복, 김 군은 체포 12시간 만인 오전 11시경에야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김 군에게 “어쩔 수 없었다. 참 재수가 없는 것 같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첫 글([“비디오에서 본 대로”])의 리드는 범죄영화를 모방해 범죄행각을 벌인 피의자의 말(“영화 ‘델마와 루이스’처럼 세상을 돌아다니며 ‘캘리포니아’의 주인공처럼 범죄행각을 벌이다가 ‘그랑블루’의 마지막 장면처럼 바다에 빠져 죽고 싶었어요.”)입니다.


당초 이 기사는 300자 정도의 단신(‘경찰, 영화 모방 범죄 혐의자 검거’)으로 처리될 계획이었는데, 데스크 선배께서 “리드가 흥미롭다. 분량을 1000자로 늘려서 보내라”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글([한건주의 수사에 짓밟힌 인권])의 리드는 ‘은빛 수갑’ 네 글자입니다.


당시 취재를 마치고 ‘리드를 어떻게 시작할까’하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대학생이 느꼈던 황당함, 억울함, 무기력함 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평범한 시민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TV에서나 봤던 수갑을 중심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했습니다.


‘아무 죄 없는 나에게 갑자기 수갑이 채워진다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상상을 하면서요.


그래서 뽑은 리드가 ‘은빛 수갑’입니다.


당시 사건팀장 선배가 “네 글자 명사(名詞) 리드는 신선해서 좋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미디어 글쓰기 강의 노트]

오리엔테이션(OT) 1, 2, 3 요약합니다

1)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미디어 글쓰기는 나 혼자 쓰고 읽는 일기가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는 편지와 같습니다. 더 구체적이고 더 친절하게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2) 미디어 글쓰기를 잘하려면 2 GL(Good Listener + Good Lead)를 기억하세요


① Good Listener(굿 리스너∙잘 듣는 사람) 되기

-잘 들은 ‘남의 말’은 남다른 내 글을 쓰는 데 좋은 재료가 됩니다. 잘 듣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하기’입니다.

② Good Lead(좋은 첫 줄) 쓰기

-미디어 글쓰기에서 좋은 시작은 반(半)이 아니라, 전부(全部)입니다. ‘내 글을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으로 시작할까’를 늘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글쓰기가 편해지고 좋은 글도 많아집니다




keyword
이전 03화OT 2 : 남의 말을 잘 들어야 내 글이 잘 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