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023년) 4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언론 현장 연습’ 강의를 듣는 학생과 나눈 e메일 대화.
“교수님, 과제 글 제출합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요즘, 강의 때 해주시는 실질적인 조언들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글이 참 좋습니다. 잘 쓰셨네요. 너무 공허하거나 뻔한 이야기보다 자신의 삶에서 느낀 진솔한 스토리가 더 잘 읽히고 설득력 있거든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글을 통해 ‘30년 후배님들도 30년 전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교수님 답장을 읽고 정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저 또한 ‘30년 선배님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이 그 자체로 든든한 위로가 됩니다.”
● 글을 나누며 글로 배우며
3월 3일 관훈정신영기금교수 자격으로 ‘언론 현장 연습’ 첫 강의를 위해 출근할 때 묘한 설렘을 느꼈다.
이 학교에서 학부 4년(외교학과 89학번)을 마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한 학기를 다닌 뒤 입대했을 때가 1993년.
제대 후 복학 대신 ‘동아일보 입사’를 선택했으니, 30년 만에 학생에서 교수로 모교에 돌아온 것이다.
(※필자의 정식 직급은 ‘산학협력중점교원’(임기 1년)이다. 언론정보학과 홈페이지에는 ‘비전임 교수’로 소개된다.)
개강 전 강의계획서를 작성할 때 ‘뭔가 가르치겠다는 마음’보다 ‘뭐든 도와드리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강의계획서에 ‘25년 6개월의 신문기자 경험을 예비 언론인들과 최대한 공유해 그들의 판단과 선택에 실질적 도움이 되기를 바람 / 미디어 글쓰기 실력과 직업으로서의 언론인에 대한 실질적 이해 모두 제고되도록 노력할 것임’이라고 썼다.
학교 측에 “일대일 피드백과 코칭을 밀도 있게 하고 싶다. 그러려면 수강생 숫자는 ‘소소익선’(적을수록 좋다)”이란 의사를 전달했다.
강의 오리엔테이션 때 “선배의 마음으로 후배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중간고사를 보기 전까지는 강의 때마다 글 한 편씩 작성하게 했다.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글을 써보게 했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부모 친구 등)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자기소개서(당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하는 글)를 쓰시오’라고 주문했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에 대한 주요 일간지 문화면 기사들을 보여주고, ‘당신이 문화부 차장 데스크라고 생각하고 이 글들의 핵심만 뽑아 다시 데스킹하라’는 과제도 있었다.
필자가 정치부 기자 시절 썼던 ‘2800자 분량의 정치인 인터뷰 기사’를 제시하고 “1000자로 줄여서 출고하라”는 주문도 했다.
이 외에도 작문 글감(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Good Listener(잘 듣는 사람) 등)만 주고 “형식과 분량 제한 없이 마음껏 써 보라”고 하기도 했다.
중간고사 이후에는 사람을 담은 인터뷰, 현장을 품은 르포, 관점이 실린 칼럼을 각 1건씩 ‘발제→취재→기사 작성’ 해보게 했다.
수업 시간에 진행된 ‘가상 언론사 편집회의’에선 자신의 기사는 ‘세일즈’하는 한편, 다른 학우들의 발제나 기사에 대해선 건설적 조언이나 예리한 비판이 오갔다.
필자의 희망대로 수강생(사전 허락 받은 청강생 포함)은 9~11명 정도로 소규모였지만, 이들의 글을 꼼꼼히 다 읽고 하나하나 조언하는 일은 적잖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그만큼 보람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글을 통해 ‘30년 젊은 세대의 다채로운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중간고사 때 ‘당신이 체감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 제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서술하고 그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방안 한 가지를 제안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국민의 정치 혐오, 협치 없는 정치, 수저계급론 같은 불평등 심화, 황금만능주의, 심각한 청년 실업, 인정(人情) 없는 사회, 뉴미디어에서의 조롱 문화, 질문 없는 교실(줄 세우기 교육), 서울공화국(지방 소외) 등 그 대답이 다 달랐다.
● 3시간 강의 < 일대일 대화
같은 학생의 여러 글을 자세히 읽고 피드백하다 보면 글에서 그의 고민도 읽히곤 한다.
한 학생에게 아래와 같이 피드백한 적이 있다.
“글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는데, 뒤에서 자전거를 잡고 있는 사람이 손을 놔 버릴까 봐 불안해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본인은 자전거를 쌩쌩 혼자 탈 수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도….”
오전 강의가 끝나면 그날 오후엔 수강생들과 개별 면담을 했다.
필자의 첫 질문은 늘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였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자기소개서나 필기시험 대비 초안을 들고 와서 조언을 구한다.
사회 진출에 대한 불안감이나 막막함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기가 끝나갈 때까지 면담 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필자가 먼저 “내가 당신의 얘기를 듣고 싶다. 약속을 잡자”고 했다.
그렇게 모든 수강생과 빠짐없이 따로 만났다.
3시간 강의보다 일대일 대화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일대일 대화의 마법’을 체험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팀장이 전체회의에서 팀원의 잘못을 지적하면 핀잔과 모욕이 되지만 일대일 대화로 차분하게 얘기하면 ‘걱정하는 조언’이 되는 마법,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Good Listener)에게 문제를 털어놓다 보면 어느덧 그 해결책이 떠오르는 마법….
30년 후배들을 의미 있게 도와주는 마법도 그들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것에 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불안해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글에서 느껴졌던 그 학생이 개별 면담 며칠 뒤 정성 어린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번에 선생님과 상담하고 나서, 아프던 몸이 한층 나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마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많이 해소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언론인 모임 ‘관훈클럽’이 발간하는 <관훈통신>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