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그 시절의 일기를 다시 보았기 때문일까.
그때의 나는 학생들에게 예쁘고 좋은 선생님이고 싶어서 화장도 꼬박하고 수업 연구도 열심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갑갑한 화장을 어떻게 매일같이 하고 다녔는지. 게다가 출근 시각도 예사롭지 않았다. 일곱 시쯤이면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 준비를 하고,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 두 마리 토끼, 아니 세네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서 종종거리며 살았던 시절의 내가 일기에 적혀있었다.
지금의 나는 화장은커녕, 대충 선크림만 겨우 바르고 출근한다. 2학기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미라클 모닝은 저 너머로 던져버렸고, 일곱 시에 겨우 일어나 출근 직전 시간을 느지막이 즐긴다. 여덟 시 반쯤,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 다다르는 시각에 오늘은 뭐 할까 지도서를 편다. 예전이라면 정말 상상도 못 할 태만이다.
그러다 생각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이렇게 달라진 게 정말로 나쁜 일인가. 돌이켜보니 나는 현재를 통과할 때마다 내 자신보다는 타인, 혹은 과거의 나를 올려치며 나 자신을 깎아내려왔다. '저 사람은 저렇게 열심히 살잖아. 나도 반성해야겠다.' '예전의 나는 놀라울 정도로 성실했네. 지금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 대단하다고 여기는 스물다섯의 나도 그랬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기특하다고 여기는 대신, 다른 사람을 선망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지금의 내가 오 년 전의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있는 것처럼, 오 년 후의 나도 나름 나를 훌륭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당장 내가 나를 어여쁘게 여겨주면 안 되는 걸까. 물론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에 비례해서 분명 잘 살고 있는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걸 뒤늦게야 발견하는 습관은 평생의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
인생은 자기 사랑이 다인 것 같아.
어느 날, 절친한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다. 당시의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현재의 나를 좀 더 기특하게 여기는 것, 나의 싫은 부분보다 나의 좋은 부분에 돋보기를 대주는 것,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당장 통과하고 있는 현재의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 그런 것들이 내 인생을 밝게 다듬고 가꿔준다. 마치 정원에 물을 주는 것처럼, 자기 사랑이라는 빛을 나에게 쬐어주어야 한다.
신축성이 전혀 없는 옷을 하루 종일 입고 있었더니 체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주치는 선생님들마다 화사하다며 칭찬일색이었지만 그것이 나의 불편함을 상쇄시켜주진 않았다. 5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태만해진 것이 아니라, 노련해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원피스를 벗어던졌다.
'지금의 나는 5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5년 전의 나도 지금의 혜안을 갖기 힘들었겠지!'
티셔츠에 검은 슬랙스로 갈아입은 내가 진짜 나다. 이제부터 그 옷을 입은 나를 조금 더 예뻐해 주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