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게임 시~작!
학년 선택에 관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학년을 함께 하기 싫은 사람을 피하느라, 혹은 힘들다는 학생들을 피하느라, 혹은 예전에 맡았던 학생들을 피하느라 최선을 다해 전략을 짜곤 한다. 친한 선생님들과 함께 상의해서 쓰기도 하지만, 학교에서 쌓은 점수가 다들 다르기 때문에 친한 사람들끼리 모두 동학년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 학교 내규에 '학년 점수' 기준이 정해져 있다. 보통 만기에 가까울수록 점수가 만땅이 되곤 한다.)
나의 경우에는 발령 동기가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령을 받은 교대 동기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다행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할 친구가 있었다. 똑같은 경험치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기가 막힌 혜안을 내뱉기란 불능에 가깝지만, 어쨌든 집단 지성의 힘을 믿으며 각 학교의 분위기, 그리고 앞으로 맡게 될 업무, 재정 사항 등을 고려하여 1,2,3순위를 매긴다. 물론 그 순위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변동된다. 내년에 전담을 할까? 아니야, 월 13만 원이나 되는 담임수당을 못 받는 건 좀 타격이 큰데…. 2학년을 할까? 아니야 저학년은 아직 좀 부담스럽고…. 6학년을 할까? 아니 그 힘든 학년을 또 하라고?!
아직 젊고 미혼 인터라 중한 업무를 맡는 일이 부지기수. 때문에 학년 선택이라도 수월하게 가고자 하는 편이다. 물론 내가 선택한 학년 아이들이 나와 잘 맞느냐는 조금 다른 문제다. 소위 말해 '꿀' 학년이라는 3, 4학년을 맡는다고 할지라도 반 구성원이 나와 맞지 않을 경우 일 년 내내 고생길일 수 있고, 힘든 학년이라고 치는 1,6년을 맡는다고 해도 반 아이들이 나랑 잘 맞는 경우에는 한 해살이가 수월하다. 그래서 한 해의 운은 학년 뽑기가 아닌 반 뽑기로 결정 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반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적어도 학년 지원만큼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니, 미래의 내가 지난날의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고심의 고심을 더한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우리 반은, 나 스스로 화낼 일 없는 반. 교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고, 서로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아가 단단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내 모습이 내가 꿈꾸는 내년의 내 모습이랄까. 무사히 한 해를 마치고 이 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나 자신의 안온함을 위해서는 담임의 책임감이 따라붙지 않는 교과 전담 교사를 맡는 것이 온당하나,
가끔 무례한 학부모에게 상처 받고,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관리자에게 화가 나고, 수시로 밀려드는 업무에 지쳐 뻗는 일이 비일비재할지라도, 일 년 농사를 뚝딱 마친 뒤 돌아볼 구석이 있는 이 자리가 아직 욕심이 난다. 그래서 내년에 난생처음 저학년 담임에 도전할지, 익숙한 고학년 담임을 지속할지 맹고민에 맹고민을 더하는 중. 이럴 때면 내년이맘 때쯤의 나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니?
아, 물론 위와 같은 생각은 내일 당장 바뀔 수도 있다.
배경 그림 : 알프레도 시슬레, < 루브시엔느, 미코트의 오솔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