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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보라 Mar 12. 2023

직업 선택, 어떤 것을 참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

N잡러의 단상에 관한 에세이

우린 매 순간에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지금 일어날 것인지, 5분 더 잘 것인지, 일은 왜 해야 하는지, 꼭 출근은 해야 하는 것인지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과 선택지에 휩싸이게 되죠.

점심 메뉴 선택 또한 그날 하루의 중대한 결정 중 하나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도 중요함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진대, 직업 선택의 문제는 삶의 향방을 결정할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죠.


어떤 직종에서 일할 것인가. 어떤 업무를 할 것인가. 어느 지역에 있는 회사에서 일할 것인가. 어떤 근무 조건의 회사에서 일할 것인가. 직업 선택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궁무진합니다.





돈벌이를 해야 하는 나이가 된 지 10년 차가 되었습니다. 사회의 최전선에서 강산이 변할 동안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는데요. 경험치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직업 선택의 기준 또한 분명해졌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 그 기준은 '어떤 것을 더 참을 수 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전 제가 견딜 수 있는 것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잘 이겨내는 사람이지만, 견딜 수 없는 것들의 종류가 많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고양이를 위해 각종 알레르기가 심해져도 털 날림을 10년 넘게 인내할 수 있었지만, 아빠가 가스레인지를 더럽게 쓰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화를 내기 일쑤입니다.


가정을 넘어 직장 내 상황으로 가볼까요. 내 업무와 상관없는 것을 떠맡아 야근까지 불사하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분에 물을 주라는 사장님의 지시는 참을 수 없어서 그만두기도 했죠.


이런 사소하지만, 작고 중요한 경우들이 모여 나는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빅데이터가 되었습니다. 무려 10년 동안 쌓인 정보의 조각들이니 믿을 만했죠. 


나는 불안정한 것은 견딜 수 있어도, 안정적이다 못해 지루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매일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은 괜찮았지만, 매일 같은 루틴 속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서 소통 없이 일하는 것은 정말 좋았지만, 매일 같은 사람들과 불편한 소속감을 느끼며 스몰 토크라도 해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최악이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몸을 갈아서 성과를 만들고 그만큼 벌어가는 것은 킵 고잉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은 일은 폭탄처럼 느껴졌어요. 폭탄 돌리기 게임처럼 그 순서가 내게 오면 저는 폭탄의 심지가 한참이나 남았는 데도 사직서와 함께 그 게임에서 완전히 빠져야 했습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날 지켜주고, 얼렁뚱땅 일처리에도 조직은 잘 굴러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죠.


사실 일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에 있음에도. 저는 반골 기질의 헛똑똑이였어요.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했고, 목표를 위해 다양한 직종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인내하며 독립의 날을 꿈꿨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에디터 경력이 쌓이면서 결국 프리랜서의 꿈을 이루었죠. 물론, 사람이 변하듯 꿈도 변하는 거라고, 막상 프리랜서를 하고 보니 지금은 사업가가 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리랜서가 된 것은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의 불안정함과 매일매일의 다름이, 회사라는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과 소속감보다 훨씬 참을 만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하면서 깨우쳤거든요.


가끔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나만 연차라는 조커 카드가 없다는 게 아쉽고, 연말 보너스라는 황금 열쇠가 없다는 게 씁쓸하고, 명절 선물이 없다는 게 서운하지만.

화창한 날 카페테라스에서 햇볕을 보며 일할 수 있고, 사랑하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업무를 볼 수 있으며, 쓸데없는 배려를 하기 위해 감정 소모할 필요가 없는 오롯이 혼자인 이 자유가 저는 훨씬 더 좋습니다.


일을 완전히 하지 않아도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저는 얻고 싶은 것을 위해 참는 게 아닌, 참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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