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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Aug 20. 2020

목숨값 31,740원

그렇다면 당신의 목숨값은 얼마입니까?

다리를 건너 무갈사라이 지역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오토릭샤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아씨가트에서 큰길로 나서자 줄지어 서 있는 릭샤왈라들이 보였다. 오늘은 결단코 사기를 당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나마 친절해 보이는 아저씨를 골라 말을 걸었다. 무갈사라이 역 근처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노 프라블럼을 연신 외치며 알았단다. 다만 왕복이니만큼 요금을 먼저 줘야 한다고 말하기에 그럴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것도 노 프라블럼이란다. 이 작자들은 온통 문제로 둘러싸인 상황 속에서도 항상 "노 프라블럼"이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모든 문제를 껴안는 쪽은 여행자가 되고 만다. 요금을 흥정하고, 확실히 하기 위해 그것이 왕복 요금이 맞느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릭샤에 내려서 미리 약속한 요금을 내기 전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물건을 살 때는 조금 덜한 편이지만, 릭샤 요금을 흥정할 때만 되면 나도 모르게 의심병 환자가 된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릭샤에 올라탔다. 릭샤왈라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느려 터진 인도에서 그것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매연 섞인 바람이 코를 간지럽혔다. '바람을 가른다'라는 표현이 오랜만에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곧 릭샤는 사람과 동물로 꽉 차서 터져버릴 것만 같은 큰 도로에 진입했다. 릭샤왈라는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핸들을 틀어, 성인 세명이 나란히 서 있기도 어려운 골목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다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릭샤는 정신이 나간 듯 비좁은 골목길을 질주했다. 내가 아무리 속도를 늦추라고 소리쳐도 질겅질겅 담배를 씹고 있는 릭샤왈라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아슬아슬한 폭주가 지속되었고, 시선의 끝에는 마침내 환한 빛이 비쳤다. 골목이 얼마 남지 않모양이다.


골목의 끝을 10m 정도 남겨둔 순간이었다. 오른쪽에서 어두운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그것은 릭샤 백미러에 부딪히며 '쾅'소리를 내었다. 릭샤왈라는 당황한 듯 릭샤를 세웠다. 뒤늦게 쳐다본 골목길 바닥에는 아이와 아줌마가 넘어져 있었다. 사고가 난 것이다. 백미러는 덜렁이며 간신히 달라붙어 있었고, 아줌마는 팔을 부딪혔는지 팔을 움켜쥐며 외마디의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아이도 곧장 눈물을 터뜨렸다. 릭샤왈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릭샤에서 내리더니 대뜸 그들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아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고, 급기야 바닥에 넘어져 있는 그들의 앞에 발길질까지 하였다. 놀란 나는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그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를 위험에 처하게 했으니 엄중히 벌을 내려야 한단다. 아줌마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움켜쥔 팔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것을 보니 팔이 부러진 모양이다. 팔 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성한 곳은 없어 보였다. 아이는 더 세차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릭샤왈라는 힌디어로 아이에게 소리쳤고, 아이는 당황해서 말을 잃었다.


릭샤왈라는 다시 릭샤에 올라탔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어서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노 프라블럼이라고 말했다. 1초만 더 늦었더라면 그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나의 목멘 소리에도, 아직 죽지 않았으니 그것 역시 노 프라블럼이라고 답했다. 그놈의 노 프라블럼에 환멸을 느꼈다. 지막으로 정말 사고로 모녀가 모두 죽었더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둘 다 죽었어도 2,000루피 이상은 주기 어려울 것 같다며 웃으며 답했다. 어이가 없어서 그의 말에 쉽게 대꾸할 수 없었다. 곧장 릭샤에서 배낭을 꺼냈고, 걸어갈 테니 제발 이대로 사라져 달라고 말했다. 그는 한동안 당황하여 있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온 릭샤 요금은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요금은 2,000루피란다.


자기가 매긴 두 사람의 목숨값과 1km 남짓 달려온 릭샤의 요금을 동일하게 측정하는 그의 계산 방식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릭샤왈라는 아직까지 웃으며 농담이니까 얼른 타라고 소리쳤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주머니를 뒤졌다. 500루피짜리 지폐 4장과 10루피짜리 동전 5개가 들어있었다. 골목 끝에는 주저앉아있는 아줌마와 아이가 보였다. 그쪽으로 달려가서 정말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내가 다시 따지러 찾아온 줄 알았는지 다시 미안한 표정을 내비쳤다. 보란 듯 500루피 지폐 4장을 그녀의 손에 쥐여 줬다. 하필 주머니에 들은 돈이 릭샤왈라가 지껄인 2,000루피 정도다. 나 역시 그 모녀의 목숨값을 그 정도로 매긴 것이 아닌가, 죄책감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분명 당신은 더 가치 있는 사람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 두 모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릭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자, 릭샤왈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방방 뛰며 소리쳤다. 그 뻔뻔한 얼굴이 짜증을 몇 배로 증폭시켰다. 남은 동전을 모두 릭샤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얼마 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그에게 말했다. 아직도 뻔뻔함이 남아있었던 그는 허공에 대고 온갖 욕을 뱉기 시작했다. 신경도 쓰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그는 한동안 따라오면서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하다가 더 이상은 에너지 낭비 같았는지 다시 뒤돌아 갈 길을 갔다.


골목을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가트로 나왔다. 긴장이 가시고 한숨이 밀려왔다. 아까 사고를 생각하자 자동으로 눈이 질끈 감겼다. 아줌마의 왼팔이 으스러질 정도 아찔한 사고였다. 그녀의 팔이, 그녀의 몸이, 또 그녀의 딸이 정말 괜찮은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심하게 다쳤다. 만약 1초만 더 빨리 골목에서 나왔더라면 두 모녀가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담배가 늘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한참을 걸어 판데이가트 짜이집 까지 내려왔다. 작은 짜이를 한 잔 주문하고 주머니를 뒤졌는데 5루피짜리 동전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아까 모녀에게 건넨 돈이 얼마인지 생각했다. 아마 3만 원을 간신히 넘긴, 후하게 쳐줘도 3만2천 원에 미치지는 못하는 금액일 것이다. 릭샤 왈라는 정말 그 정도가 모녀의 목숨값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하늘에는 달이 떠올랐고,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색 가로등이 켜졌다. 내 머리 위에 매달려있는 가로등은 야속하리만치 환하게 나를 비췄다. 주변에 떠도는 모든 시선과 생각이 나로 집중되었다. 떠오르던 질문도 릭샤왈라와 모녀에서 나에게로 방향을 바꿨다. 그렇다면 과연 내 목숨값은 얼마인가, 10만 원인가, 100만 원인가.


※ 위 사진은 이 글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 위 사진은 이 글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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