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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llness Nov 19. 2020

아이는 꽃이 좋다고 했다

아이는 꽃이 좋다고 했다.

무수히 많은 꽃, 그중에서도 핑크색 코스모스가 가장 좋다고 했다. 꽃이 정말정말 좋아서 마구 꺾어다가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미간의 주름이 조금씩 깊어지더니, 결국에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따분한 이유 때문이었다.


한적한 경의중앙선 지하철이 속도를 점점 줄이다가 양평역에 멈춰 섰다. 서너 명이 내렸고, 올라탄 사람은 없었다. 미지근한 철로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안에는 이제 엄마와 아이와 나만 남았다.


덜컹대며 나아가던 와중에 창밖으로 잔잔한 도랑이 흘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수수한 물풀이 바람따라 너저분하게 하느작거렸다. 아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풀도 좋아. 파랗고 예뻐서 좋아.


엄마는 다시 한 번 아이의 눈을 째려봤다. 엄마가 혼잣말하지 말라고 했지. 아이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애꿎은 양말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나는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오가는 사람처럼 시원 따뜻한 채로, 그러면서도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있었다. 꽃이라는 단어에 체온이 올랐다가 곧바로 식었고, 풀이라는 단어에 정신이 잠깐 어질했다가 찬물을 끼얹힌 듯 아찔했다.


여기에는 이제 밖에 없다고, 나도 꽃이 좋고 풀이 좋으니 한참 세상 모든 핑크와 파랑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부러 쌀쌀맞은 체하며 하루를 그저 견디는 못난 사람이라 그랬다.


다만 출입문이 열릴 때까지 덤덤히 기다리다가, 왜 혼잣말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라는 혼잣말을 작게 뇌까리고 후다닥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곰살맞은 아이의 모습에 눈이 자꾸만 시어서 나로서는 하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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