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빵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행복
AM 09시. 사옥 지하 베이커리 소금빵이 나오는 시간이다. 기다렸어요! 9시 출근 태그를 먼저 찍고, 커피와 빵을 사러 다시 지하로 내려온 터였다. 꽤 인기 있는 품목이라 시간이 지나면 매진되고 없다. 그렇다고 일찍 와 봤자 빵이 없으니, 아침잠을 포기하고 나온 보람도 없게 된다.
정확히 9시.'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나오죠.' 머릿속에서 엉터리 가사를 붙인 노래가 흘러나온다. 소라 모양으로 노릇하게 구워져 소금알갱이를 고명으로 얹은 담백 고소한 소금빵이 진열장으로 나온다. 은밀하고 재빠르게, 집게와 트레이를 들고 소금빵이 놓인 진열장 앞에 미끄러지듯 줄 선다. '이 빵 빛깔보소', 소박하지만 깊은 맛, 알맞게 단단한 외피 속에 보드라운 미덕을 갖추었다. 연륜이 느껴지는 맛.
연식이 좀 된 직장인인 나는 출근길에 소금빵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는 게 낙이다. 요즘은 회사 생활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무사히 출근하여 '소금빵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게 되었어.' 정도에 만족한다. 소금빵의 베프(짝꿍)는 역시 따뜻한 아메리카노. 몇 년 전까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파였다가 최근에 5월까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파로 돌아섰다. 산미가 적은 고소한 블렌딩 원두 쪽으로.
일단은, k 직장인입니다.
내 정체성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직장인'이다. 역사가 오래된 국내 중견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있다. 화장품 산업은 줄여서 장업이라고도 하고 향장업이라고도 한다. 한국 뷰티 산업에 큰 획을 긋는 상품이나 유통 혁신을 이뤄낸 곳이라 '이 놈의 회사'라고 잠깐 끌어 오르다가도, '인생이력서에 가치 있는 한 줄'로 오래 남을 거 같아, 끌어 안는다.
내가 하는 일은 이 회사의 브랜드 중 하나이자, 백화점 메이크업 브랜드로 잘 알려진 곳에서 스킨케어 상품을 기획, 개발하는 일이다. 브랜딩 업무에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일 한지는 13년이 되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어? 별로 이룬 거 없이 허비한 거 같지만 돌이켜 보면, 시간은 정직하게 나를 채웠다.
공익캠페인 기획, 실행, 뷰티 시장 리서치, 고객조사, 상품 기획, 개발, 운영, 브랜딩. 굵직한 업무들이 척추에 해당된다면, 잔가지처럼 연관된 미세업무들까지 하루 중에 처리하는 업무목록은 빼곡히 캘런더를 채운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탁상달력이나 회사 다이어리에 업무 리스트를 적다 보면, 한 해에 다이어리를 2~3권 쓰기도 했는데, 요즘은 종이 달력이나 다이어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JIRA, 워크플레이스, 사내 일정관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웹/앱기반 일정관리 양식이 있어 이곳에 기록하고, 예전보다 많은 일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공익단체 교육홍보 분야에서 일한 경력 2년을 인정받아, 이곳에서 13년을 다니고, 어느새 경력 15년 차다. 요즘의 기업 트렌드에 따라 직급은 따로 없다. 일반적인 직급제로 하면 부장급이라 할 수 있다.
고뇌도 감동도 함께 성장한, 13년
그동안 모범사원 상도 받고, 근속 10년도 채우고, 크고 작은 성과가 있었다. 수많은 고뇌의 밤이 있었고, 가슴이 벅찬 순간도 있었다. 포기보다는 되는 방향으로 일을 끌고 나가는 기질은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이다. 성격이 급하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것은 개선해야 하는 점. 완벽주의 기질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혔다. 몇 해 전, 정확히 코로나 전에는 매일 아침, 오늘 할 일들을 미리 점검하고, 저녁에 퇴근해서는 내일 할 일을 걱정했다.
일 생각에 잠 못 든 날도 있고, 그러다 두통이 생겨, 진통제를 복용하다, 병원에 가기도 했다. 만성 두통에 만성 위염, 일자목, K 직장인의 훈장 같은 직업병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러다 큰 병들겠다.' 싶을 때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러다 병들면 정말 억울하겠다.'
몇 달째 계속되는 편두통과 근육통에 신경외과에 가 CT촬영까지 했다. 결과는 신경성 편두통. 과도한 업무스트레스와 긴장성 두통이 만성이 되어 머리에 딱따구리를 들인 듯 두통이 나를 각성시키고 있었다. '너 계속 이러면 진짜 아프게 된다.'
뒤돌아 보면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었다고 해서 대단히 성공적인 것도 아니었다.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보고과정에서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로 회자되는데, 그 마저도 확률 게임 같았다. 승률 100%는 현실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거나, 설득할 논리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때로는 성과를 채근하고 기다려주지 않는 회사를 원망도 했다. 100% 승률 게임은 없는데 늘 그 100%를 달성하겠다며 허덕이고 살았다.
'완벽하지 않은데, 완벽주의를 자처하고 있구나'
오늘, 또 다른 퇴사자가 인사를 청했다.
한 달 걸러 한 명 꼴이다. 대부분 나와 입사연도가 비슷하다. 그는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고 했다. 퇴사하고 뭘 할 거냐고 물었다. 수채화를 그리겠다고, 그리고 하루를 음미하겠다고. 퇴사자의 눈이 반짝였다. 하루를 음미하겠다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읽은 듯,
"월급이 없어도 생활이 가능하더라고요. 퇴사를 고민하면서 월급이 없으면 어떻게 생활하지 걱정했는데, 휴직하고 첫 번째 달 카드 값을 받아보고 알았어요. 이 월급이 없어도 생활이 가능하겠다."
버는 만큼 썼다고 했다. 아이 등하원을 위해 고용한 이모님 월급으로, 회사 스트레스 푼다고 점심은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고 식사값으로 커피값으로. 품위 유지한다며 계절마다 옷과 신발값으로. 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여행 가서 맘껏 보상받고 오라고, 여행경비로.
"그러면서 행복하면 되는데, 전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반복이었어요. 그러다 휴직을 했고, 휴직 후에 가장 걱정했던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생활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회사 밖 세상의 여유와 편안함이 저에게는 더 소중하게 되었어요. 물론 일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일군 것들도 있지만, 그리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의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한 거지만, 저는 지금 회사 밖,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게 더 기대돼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에너지가 실렸다. 그이도 11년을 이 회사를 다녔다. 그동안 갈고닦아 온 역량과 자산이 있기에 지금의 새로운 출발이 순조롭겠지.
나는 퇴사자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는 인사와 함께, 앞 날을 응원한다는 말을 담백하게 건넸다. 자리로 돌아와 남은 소금빵을 뜯어먹으며 커피를 마셨다. 소금빵은 딱딱해져 있었고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듯 후후 불어 천천히 마셔보았다. 한 번 식은 커피가 다시 뜨거워지는 것은 열역학을 역행하는 비과학이다. 회사에 남은 열정을 가늠해 보았다. 후우, 다른 미래를 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그동안 일하며 일궈 놓은 경력과 역량, 자산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제, 나도 때를 가늠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