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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ul 06. 2023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목요일의 화실

목요일입니다.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직장인이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저는 목요일마다 화실에 갑니다. 그림을 잘 그리냐고요? 글쎄요. 잘 그린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쪽에 속합니다. 화실에 가면 좋은 코치가 있어 마음을 툭 놓고, 편하기 그립니다. 잘해야 한다는,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정해진 목표 없이 내 속도 대로 그려나갑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본 것을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모사를 하다, 본래 그림에서 따라 그린 모작이 많이 달라졌다면, 수업 중에 선생님이 코칭을 하거나 직접 수정해 줍니다. 선생님의 리터치를 거치고 나면, 어색했던 부분이 바로 잡히고, 원래 그리려던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납니다. 좋은 코칭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셈입니다.


오늘은 불현듯, 화실 선생님의 코칭을 받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코칭하는 입장이라면 스스로 해 보도록 시간을 주고, 어려워하거나 막힌 부분에서는 시범을 보여주거나,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줘야겠다고 말이죠.


지난주에 증명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 중입니다. 주말 동안 채용 사이트에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업데이트했습니다. 주중에는 지금 회사 일로 바쁘고, 모임, 운동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주말에 경력을 정리했습니다. NGO, 기업 CSR ,  마케팅전략, 마케팅 실무 기획자로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 왔더군요. 몇 번의 변곡적임 보입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문을 열고 걸어가고 싶은지, 너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다시 그 물음에 집중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냥 좀 쉴까, 갭이어를 가질까.' 13년 동안 2주 이상을 쭉 쉬어 본 적이 없잖아. 재충전의 시간이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현실적인 얘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조금 더 경제적인 안정을 취한 뒤에 쉬어도 좋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당장 적게 쓰고, 적게 움직이며 안빈낙도하는 길도 좋지만,  얼마 못 가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 좀 더 처한 상황과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다수였어요. 다들 저와 비슷한 또래, 비슷한 연차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고민 끝에 해 주는 소중한 조언인지라 저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다녀온 직장인 모임에서 인재개발부서 팀장으로 일하는 분이 해 준 얘기도 마음에 남습니다. '모범적인 사람들, 뭘 시키든 잘 해내는 사람들이 직장에 남아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알아차린 사람들은 자기 사업하고 있고요. 근데 임원이 될수록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잘하겠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자신은 없다고요.' 바로 위 선배 세대들의 경험일 것입니다. 개인과 조직을 일체화하며 자기희생 속에서 조직을 위해 갈아 넣은 삶. 이상하게도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더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떤 리더로 성장해 갈까. 실무자로 끝장낼 수도 있지만, 리더가 꼭 직장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쌓아 온 실력을 발판으로 리더로 성장해 간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회고를 할 수 있을까. 어떤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얼마 전 회사에 강연을 온 최인아 작가님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일을 회고하며, 후배들에게 '자기 브랜딩의 시대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 비결은 '태도'에 있다는 말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말이 아니기에 깊은 신뢰를 주었어요.


 쉬는 것도, 커리어 성장을 위해 한 발 앞서가는 것도 좋은데, 먼저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겠다 싶습니다. 앞으로 커리어에서 어떤 나를 만들어 가고 싶은지. 일을 잘하는 나 말고, 어떤 성장을 하고 싶은지, 훗날 내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저의 15년을 돌아보았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은 조금 정체된 느낌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현재 포지션을 소개하기가 애매해졌습니다. 애매한 채로, 어렴풋한 채로, 내일도 이 자리를 맴돌 것만 같은 예감이 듭니다. 뭐 그래도 만족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 정확하게는 직관을 관할하는 뇌 부분에서 신호를 보내옵니다. '커리어의 다음 장으로 이동할 때야. 떠나야 할 때다, 도전하고 모험할 때다. 불안하겠지만, 불안이 오히려 앞으로 나가는 동력이 될 거야.' 지난 일 년 동안, 고연차 실무 담당으로서 고뇌해 온 스스로를 돌아볼 때, 역할 성장에 대한 니즈가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혼자서 잘하는 것을 넘어, 파이 자체를 키우는, 공동의 성과를 리딩하는 자리로. 커리어를 끝내기 전에 도전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다시 생각하면 됩니다. 물감을 덧칠하여 수정하는 유화처럼, 플랜을 다시 수정하면 됩니다. 그러니 지금은 더 모험을 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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