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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림 Jul 22. 2023

나는 어느 쪽일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는 어느 쪽일까?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잉크처럼 서서히 번지는 사람도 있는 거야.


-영화, 헤어질 결심 중


외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맞이하는 첫 주말, 모든 것이 평온했다. 이사 갈 집을 계약하고, 피부과에도 다녀오고, 영화까지 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왔다. 차량 전면 유리를 때리는 빗방울이 토독토독, 그 소리에 마음이 뻐근하고 눈물이 흘렀다.

후자구나, 나는. 잉크처럼 서서히 번지는 슬픔이 모세혈관을 타고 오래오래 흐를 것만 같다.


슬픔도 눈물도 총량제인 걸까.

장례식 기간 동안, 엄마랑 이모들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어머니와 이별하는 것을 지켜봤다. 성경을 읊는 이모, 불경을 외는 이모,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노래를 틀어 놓은 이모. 그러다 집단무의식에 걸린 것처럼 한 목소리로 '아이고아이고' 곡을 했다. 베이비 부모 이모들의 곡성에 X세대 조카는 고장 난 사람처럼 삐걱거리며 들었다. 애도하는 방식에도 세대 특성이 베어나는 걸까. 내가 한 대 건너라서 눈물이 나지 않는 걸까. 감정이 아니라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똑, 하고 한 방울 떨어진 슬픔이 이제 풀리는지, 추억과 함께 슬픔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할머니가 해 준 무수한 밥, 따뜻한 눈빛, '엄마 말 잘 들으라는 말'. 할머니와 떠났던 해외여행. (첫 직장 때 모은 돈으로 '모녀 삼대 여행' 타이틀을 달고 할머니를 푸껫에 모시고 갔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했다. 잘한 일을 떠 올리는 것도 회한의 일종이라고 한다. 어쩌면 자기 위안일 수도 있고.)


'추억'이라는 용매에 '영면'이라는 용질이 풀려, 슬픔이라는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눈물 용액이 만들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내가 이렇게 슬픈데 엄마는 어떨까 걱정이 된다. 전화를 했다.

"뭐 해? 괜찮아?"

- 드라마 봐. 그럼 괜찮지. 너도 괜찮아질 거야. 어째 조금 울더니만."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내가 감정반응이 좀 뭉근히 끓어오르는 사람이라는 걸. 머리가 아프도록 여러 날을 울며,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또 틀었던 엄마. 입관 때 '내 걱정하지 말고, 좋은 데 가셔 편히 쉬어요.' 소금기를 덜어냈던 엄마는 이제 좀 담백해진 상태였다.


"할머니랑 푸껫 갔을 때, 타이마사지받았잖아. 할머니가 심하게 아파하던 생각이 자꾸 나. 내 딴에는 좋은 거라고 막 권했는데, 연로한 할머니께는 무리였던 거야."


"그리고 여행 가면 왜 여행 얘기하잖아. 할머니가 까따 비치 해변에서 외삼촌이랑 경주 최부자집 갔을 때 제일 행복했다는 말에 뜨악해하던 것도 생각나고. 그때 우리 정말 많이 웃었잖아. 할머니는 여기까지 와서 외삼촌 생각이냐고."

 

-그랬지. 니 외삼촌이 할머니한테 좀 귀한 아들이냐. 그래도 너네들 많이 예뻐했어.

반쯤은 드라마에 정신이 팔린 듯한 목소리가 허공에 나풀거렸다.

 

"알았어. 또 전화할게 엄마. 끊어"


'니 에미한테 잘하그라'

외할머니는 홀로 딸 일곱, 아들 하나를 키워내고 그 손주들까지 돌봐주셨다. 참 많은 밥을 해주셨다. 영아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았던 일제 시절에 태어난 생존자인, 할머니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내놓는 것을 최고의 사랑으로 베푸시는 분이었다.

자그마한 몸에 그런 강인한 생명력을 어디에 품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단도 있으셨다. 자식들을 굻기지 않겠다가 인생 최우선 과제였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교육을 시켰다. 부드럽지만 강하고 현명한 사람. 아담한 체구 어디에 그 힘이 숨어 있을까. 할머니의 정신은 엄마에게로, 그리고 어느 정도 나에게도 대물림되었을 것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 같은 거.


90세가 넘도록 살아내신 할머니는 결국 치매에 걸리셨다. 최근에 기억나는 모습은, 말씀 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는 안타까운 것들 뿐이다. 초점 없이 허공을 보다가도 한 번씩 눈을 똑바로 볼 때는 '한 말씀하시려나'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고관절이 부러진 채, 병상에 누워 지내시던 몇 달은 정신마저 혼미하신 지 어떤 말씀도 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때는 솔직히 '이제 그만 할머니를 데려가 주세요. 이 고통에서 놓아주세요' 주어가 생략된, 초인적인 누군가에게 빌었다.


"니 에미한테 잘하그라."

한창때(?) 할머니는 종종 우리에게 당부하곤 했다. 그 말씀을 유언 삼아 올해 겨울이나, 내년 봄엔 엄마랑 일본 여행을 가려한다. 온천을 좋아하고 담백한 일본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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