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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ul 14. 2023

[여름, 베트남] 달랏 하이라이트

동남아 여행

달랏 3일 차를 맞아 주관적으로 골라본 동네구경 하이라이트.


# domaine de marie 성당


인디언 핑크색의 성당 건물도 예쁘고 주변이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여유 있게 쉴 수 있었다. 길거리 소음을 잠시 잊을 수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한낮의 햇빛 아래에서 보면 색이 더 화사했을 것 같은데 저녁나절의 은은한 색감도 회색 하늘과 어울려 운치가 있었다. 예전 산타페에서도 그랬지만 인디언 핑크는 어딘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색채인 것 같다. 성당이 약간 언덕에 있어서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것도 좋았다. 화려한 관광지라기 보다는 현지 사람들이 산책삼아 오는 곳 같은 느낌이다.


베트남에 성당이 많이 지어진 것은 물론 프랑스 식민주의 때문이겠지만, 단지 이식된 문화라고 말하기에는 양식들이 너무나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엄숙함이나 무거움과는 거리가 먼 밝고 따스한 색감들이. 똑같은 카톨릭이라도 어떤 곳에선 지옥이나 악마 형상을 강조하면서 무섭게 표현되는 데 베트남에선 왜 이렇게 사랑스럽지.



# 달랏 야시장


전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엄청난 인파에서 흥청망청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압도적. 무슨 난리 난 줄 알았다. 주로 옷을 팔고 있었고 먹을 것도 많았다. 공연도 하고 있었고. 시장 초입 큰 나무 아래 계단에는 엄청 많은 수의 사람들이 빽빽히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밖에 안되어 보이는 아이가 장사하는 노점에서 동네 명물이라는 아보카도 아이스크림(껨보)을 사먹었다. 안쓰러웠지만 씩씩하고 야무져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스크림은 쌉쌀한 끝맛이 특이했다. 요즘 달랏에서 흰색 털옷이 대유행인지 가게마다 많이 팔고 있었다. 심지어 이 여름에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더라. 체감 온도란 것은 진짜 나라마다 차이가 크구나 싶었다(우리의 경우에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도 밤에 얇은 가디건 하나로 충분했다. T는 그냥 반팔로 다녔고 : 그런데 지금은 한여름이란 말입니다!)



# 크레이지 하우스


달랏의 넘버원 관광지라고 한다. 가보니 유명세에 이유가 있다는 걸 실감. 진짜 미친듯하고 키치스러운 맛까지 진하다. 마감이 거칠고 시멘트 느낌이 많이 나서 건물들이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길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어지러운 구조와 과장된 장식들이 흥미롭다(그런데 나같은 고소공포증 환자에겐 너무 무서운 구간들도 있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도 견고하지 않아서 집이라기보다는 놀이터 같았다.


아무 계획 없이 마구 지은 것 같은데 놀랍게도 건물 설계도들이 전시된 방이 있었다. ‘당비엣응아’라는, 외우기 힘든 이름의 건축가 사진이 설계도의 방 곳곳에 많았다. 영화배우 같은 포즈도 꽤 있어서 약간 아니 많이 관종끼가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건물 자체가 관종스러움의 끝판왕이니 뭐).



# 린푸억 사원 & 기차여행


호수 동쪽 약간 외곽지에 있는 사원. 크레이지 하우스 못지않게 어마무시하다(어쩐지 크레이지 하우스와 한 쌍 같은 느낌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곳은 아니어서인지 섬세하지는 않고 그냥 구석구석 엄청나다. 이런 거 보면 베트남은 기가 센 나라가 분명. 반면 한국은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문화가 뭐랄까 꽤 얌전한 것 같다. 사원 건물, 탑, 탑과 연결된 또 다른 사원 건물 이렇게 전체적으로 세 장소가 있고 지하에는 놀이동산 귀신의 집 비슷한 느낌의 ‘지옥’이 있었다(지옥 입구를 찾는데 좀 애먹었음).


오후에 또 비가 왔지만 폭우 타이밍엔 사원 안에 있었기에 역시 날씨운이 있다고 흐뭇해했다. 마치 이런 일에 쓰라는 듯 사원 안에 빨간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거기 앉아서 쉬었다.



린푸억 사원까지는 달랏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지만 오전 9시 55분 기차를 제외하면 인원수가 적을 경우 출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시 차가 출발을 안해서 그랩을 타고 사원으로 이동했다. 올 때는 5시 10분 기차가 있어서 타고 올 수 있었다. 향수를 자아내는 작고 낭만적인 기차였다. 기차역 자체도 구경거리였고. 샛노란색 귀여운 외관과 대조적으로 내부에는 약간 기괴한 나무 장식물들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상품인지 공공시설인지 헷갈리는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베트남 전쟁 때 철로가 파괴된 이후 이 관광열차를 제외하면 인근에 기차는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마지막 사진은 기차가 출발하는 린푸억 사원 근처 짜이맛역. 표 파는 창구가 따로 없고 기차 안에서 차장(?)에게 돈을 낸다.


# 길거리 간식 반깡


오늘 아침 호텔 근처 하이랜즈 커피(Highlands coffe : 베트남의 커피 체인점 중 하나)에서 반미와 카피로 아침 먹고 돌아오는 길에 노점에서 팔고 있기에 호기심에 사먹어봤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 맛있지? 부드러운 식감의 일종의 계란빵인데 국처럼 묽은 소스에 찍어 먹으니 맛이 환상! 입에서 살살 녹는다. 간식이라고 썼지만 달지 않고 오히려 요리에 가까운 감칠맛이 난다. 찾아보니 이름이 ‘반깡’이라고. 빵을 만드는 할머니 옆에서 어떤 젊은 사람이 5개 한 세트에 3만 동이라고 영어로 말해줬다. 직원인 줄 알았는데 보니까 본인도 손님인 듯 ㅎㅎ 길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꼬마를 데리고 먹더라. 우리도 옆에서 먹었다.


옆사람이 먹는 걸 보고서야 흰 그릇의 액체가 국이 아니라 소스라는 걸 알았다. 딴 사람들이 하는대로 소스에 빵을 담궈서 실파를 끼얹어 먹으니 더 맛있었다.


먹는 것에 그렇게 열성인 편이 아닌(물론 맛있는 거 있으면 좋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여기 오니 이것 저것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는 재미가 만만찮다. 하물며 먹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 베트남은 낙원일 듯.


# 달랏 길거리 그 자체


베트남이 미적 감각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예전에도 했었다(훼의 옛 궁전들을 보라!). 달랏은 이 감각은 더 많이 갖고 있는 도시가 아닐런지. 물론 전국을 돌아다닌 건 아니니 단정하긴 어렵지만, 베트남 사람들도 달랏이 예쁜 곳이라고 하는 듯. 허름한 곳은 허름했지만, 그런 곳에도 곳곳에 꽃과 식물이 있었고 밝고 화사한 색채들이 서로 어울려서 눈이 즐거웠다(특히 크롬 옐로를 좋아하는지 관공서나 사원에도 이 색깔이 많았다).



달랏에는 여러 얼굴이 있었다. 한적하고 깔끔한 주택가가 있는가 하면 모퉁이를 돌면 복작거리는 서민적 골목이 나온다. 넓고 시원한 녹지대도 있고 오토바이 주차장과 노상 식당이 된 좁은 길도 있다. 한국의 무슨 리단길에 있는 곳들보다 더 세련된 카페나 식당들도 눈에 띈다. 어쩌면 그저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달랏의 최고 관광거리일지도. 특히 작은 골목길들은 오토바이도 거의 없이 조용했고 아기자기해서 걷는 재미가 있었다. 쑤안흐엉 호숫가를 따라 가는 길도 산책친화적인 곳이었다. 어떤 곳도 활기차고 명랑한 느낌이다. 밝은 기운이 가득하다.



# 카페들 (7월 23일에 추가)


달랏 하이라이트에 카페들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뒤늦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만큼 달랏에는 근사하고 독특한 카페들이 많다는 깨달음이 왔다. 카페들을 일부러 찾아다니진 않았지만 우리가 가 본 카페들이 너무 예쁘고 감각적이어서 오감이 즐거웠는데 검색을 해보니 그런 곳들이 널려 있더라. 또 산기슭이나 높은 곳에 있어서 경치를 굽어볼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카페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식물과 꽃이 어우러져 쾌적하고 시원한 바람을 쏘일 수 있는 그런 곳. 달랏에 또 가게 되면 가봐야지. 아예 카페 투어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온 후 급기야 한국의 카페들은 너무 밋밋하고 지루하다고 타령하게 되었다. 그만큼 베트남의 카페들에는 뭔가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강렬하고 화려한 매력이(호치민의 카페들도 그랬다). 다만 나이가 좀 있는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듯한 로컬 카페는 장식이 없고 어두컴컴해서 종류가 좀 다른 듯 했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로컬 카페들에는 이른 아침부터 한가롭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의자와 테이블이 초등학교의 그것처럼 낮았다.


- 정작 커피맛에 대해선 안썼네. 달랏은 아라비카 커피로도 유명한 곳이라는데 난 역류석 식도염 때문에 커피는 많이 마시지 못해서 이 부분은 말하기 어렵다. 다만 베트남 유명 커피 브랜드라는 하이랜즈 커피(Highlands coffee)의 카페라테는 훌륭했다. 대중 브랜드라서 기대는 안했는데 쓴 맛이 하나도 없고 너무 고소했다. 그리고 콩까페의 코코넛 커피와 코코넛 스무디도 한 입 넣자 감탄이 나왔다. 달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고 상큼 시원했다.


- 우리가 가본 까페들은 커피와 음료수만이 아니라 본격적인 식사도 팔았다. 이런 곳이 많은 듯. 혹은 음료와 식사를 같이 파는 곳을 까페라고 부른다고 해야할지. 암튼 이것도 맘에 들었다. 한국은 카페와 식당의 경계선이 너무 철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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