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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shoes Jan 20. 2023

산타페의 색채

미국여행

덴버에서 차수리를 맡기고, 우리는 작은 차를 렌트해서 뉴멕시코로 갔다. 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 한 군데만 죽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둘러볼수록 재미있는 도시가 있고, 도착하자마자 여행자를 압도하는 도시가 있다. 이를테면 베니스나 라스베가스는 후자가 아닐까.  정도로 강렬한  아니라 해도 산타페의 첫인상은 화려했다. 한때 멕시코땅이었던 지역답게 라틴적이고 가톨릭적인 정취가 가득했고, 도시 전체가 노랑이 살짝 섞인 밝은 갈색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어도비(Adobe)라고 부르는  양식은 이곳에 살던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것이라고 한다. 어도비 집들은 빛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흐린 날엔 분홍빛을 띠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명도는 높고 채도가 낮아서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색이다. 높은 건물이 없고 옆으로 퍼진 단층집이 많은 , 벽의 모서리들이 모나지 않고 둥그스름한 것도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콜로라도주와 맞닿아 있는 뉴멕시코의 북쪽 지역은 산이 있었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길은 평평해지고 땅은 황량해졌다. 그런데 사우스 다코타와는 묘하게 다른 종류의 황량함이었다. 기가 무척 센 느낌이랄까. 사우스 다코타의 평원이 너무나 광막해서 인간적 세계의 한계를 넘어간다면, 뉴멕시코는 땅 그 자체가 살아있는 듯 에너지를 내뿜었다. 특히 산타페와 앨버커키 사이에 있는 길은 세상의 끝이란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황야였다. 아주 키 작은 관목들이 메마른 땅에 점점이 흩어져 있을 뿐 녹색을 찾을 수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걸 사막이라고 부르지 않나...).


예전 어떤 여행책에서, 산타페 시내에서 야간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고속도로로 나가버렸는데 너무 무서워서 떨었다는 글을 읽은 적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 혼자였다면 이런 곳에 올 엄두도 못냈을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뉴멕시코에 혼자 사는 건 조지아 오키프쯤은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바로 이 분.


그런 어마무시한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이 도시.. 아니 이 작은 마을은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활기가 넘쳤다. 나무도 꽤 많고, 세련된 카페와 예쁜 선물가게, 극장, 갤러리, 미술관들이 있었다(갤러리가 3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맨땅에 보석이 떨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정말 미국은 곳곳에 뜻밖의 장소들로 넘쳐난다. 사실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기에 이 정도이지 아무 정보 없이 뉴멕시코를 여행하던 사람은 여기가 천국인가요 하면서 놀랐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산타페가 내 취향에는 좀 인공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유분방함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산타페의 질서정연함(?)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취향을 떠나서 여기는 누가 뭐래도 오아시스였다! 저녁이 되자 여름날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광장에 많이 모였다. 흥겨운 음악이 울려퍼졌다. 나는 광장 근처에서 그 옛날 Route 66이 지나간 길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머물고 있을 때는 소나기가 간간히 왔다. 비가 갠 날씨는 청명했다. 덴버처럼 산타페도 고지대여서 7월이었만 그렇게 덥지 않았다.



- New Mexico Museum of Art에서 본, 인상적이었던 작품. 유럽인들이 오기 전에, 멕시코인이 오기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



(여행시기 : 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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