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국문학과에서 시행하는 학교 백일장에 출품을 한 적이 있었다. 주제는 '친구' 혹은 '형산강'이었다. (형산강은 학교 앞쪽으로 흐르는 큰 강의 이름이다.) 낙엽이 붉게 물들고 거리도 빨갛게 물들던 가을 어느 날에, 필력을 인정받고 싶은 어린 마음으로 시를 적어 내려갔다.
내가 19살이던 때에,
그러니까 수능을 앞둔 수험생 시절에 만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서 시를 배웠다. 당시에 그저 끄적이는 글만 쓰던 내게, 그런 글들을 시라고 불러준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고민, 어둠, 슬픔, 그리고 다른 이에겐 꽁꽁 숨겨 비밀로 해둔 작은 행복과 소망까지도 연습장 종이에 빼곡히 적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친구는 미하엘 엔데의 소설 주인공인 모모처럼 말없이, 끝없이 내 이야기들을 들어주었는데, 그 경청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 그 친구를 모모라고 부르곤 했다.
어느 날은 그 친구가 내게 시를 선물했다. 나를 생각하며 썼다는 그 시는 어느 유명 시인이 쓴 것처럼 유려했다.
제목은 '이카루스에게'
그 친구는 내가 이카루스 같다고 하였다. 이글거리는 광명 아래로 날아가는, 날개에 밀랍이 섞여있어 바다에 빠질 운명이라지만, 결국은 태양을 쫓는 이카루스 같다고 하였다. 당시엔 어린 마음에 결국 바다에 빠져버리는 이카루스는 싫다고 했다. 그런 내게 태양의 정점에 서달라고, 그리곤 힘겨이 뒤 따르는 자신을 인도해달라 말하던 친구였다. 그 시를 품고 아직도 태양을 쫓고 있다.
나의 이유이든, 그 친구의 이유이든, 알 수 있는 이유인지, 알 수 없는 이유인지, 졸업 후에 연락이 끊어졌다. 연락을 끊은 것이 나만인지, 아니면 너도인지. 핸드폰 번호도 바뀌었더라. 바뀌었단 연락도 오질 않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 아직까지도 주저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 같은 글을 쓴다. 백일장에 출품하기 위해 쓴 시였지만, 사실은 그 친구에게 보내는 답시다. 어쩔 수 없는 짐생인 내가, 옹졸한 욕심과 그리움을 담아 시를 보낸다. 우연찮게 네가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낙엽
형산강 푸른 물결 위로 떨어져 내리는 낙엽 가지들
떨어져 내린 저 낙엽들은 꽃이라 불리고 싶었을까.
꽃일 수 없는 너라지만 그래도 너에게선 타는 햇볕의 냄새가 난다.
이글거리는 광명에 살 가르고 피 흘려 발갛게 물든 너에게선 타는 햇볕의 냄새가 난다.
형산강 시린 물결로 너희들을 보듬아주랴, 익어버린 네 상처들 모두 껴안아주랴, 뜨거운 열기 모두 그득그득 삼켜내어 강물에 씻겨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