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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휘 Jun 23. 2019

조용히 다가오는 공포의 미학 [샤이닝]

#17 진정한 오싹함을 느끼고픈 당신을 위한 영화

 잭(잭 니콜슨)은 겨울 동안 깊은 산속에 있는 '오버룩 호텔'의 경비 일을 맡게 됩니다. 그 호텔은 겨울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손님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겨울 동안 호텔을 관리할 관리인을 필요로 했고, 교사를 그만두고 작가로서의 데뷔를 꿈꾸는 잭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일이었습니다. 예전 관리인이 호텔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아내와 두 딸을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는 호텔 지배인의 말 따윈 중요하지 않았죠. 그렇게 잭은 약속된 날짜에 아내 웬디(설리 듀발), 어린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와 함께 호텔로 갑니다.

왼쪽부터 웬디, 대니, 그리고 잭

 잭에게 호텔의 시설을 소개해주던 요리사 딕 홀로랜(스캣맨 크로더스)은 대니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대니는 상상 속 친구인 '토니'와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건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딕은 그것은 "샤이닝"이라는 능력이며, 주변의 사람, 사물, 영혼 등과 교감할 수 있는 일종의 초능력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니는 237호실엔 무엇이 있는지 딕에게 물었는데, 딕은 눈을 부릅뜨며 거긴 아무것도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세 가족의 호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잭은 쾌적한 로비에서 글을 쓰는 일에 매진하고, 설리와 대니는 넓디넓은 호텔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묘한 사건들이 생깁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복도를 돌아다니던 대니는 끔찍한 장면의 환영을 보기도 하고, 문이 열린 237호실에 들어간 후엔 목에 누군가가 손으로 조른 자국이 남은 것을 설리가 발견합니다. 대니는 237호실에서 어떤 여자가 목을 졸랐다고 설리에게 말합니다. 설리는 겁에 질려서 잭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잭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던 중이었습니다. 처음엔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설리에게 글을 쓰는 동안엔 절대로 눈에 띄지 말라고 살벌하게 경고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미쳐가던 잭은 아무도 없어야 할 호텔 안에 처음 보는 인물들이 있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다가 영화의 후반부엔 광기에 사로잡혀 설리와 대니를 죽이기 위해 그들을 쫒아갑니다.

(흔한 남편이 아내를 부를 때의 표정)

놀라기만 하고 무섭진 않은 영화들과는 달라

 [컨저링]이 스스로를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라고 소개했는데, 그 말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샤이닝]을 본 적이 없는 게 틀림없습니다. 진짜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는 여기 있는데 말이죠.

 대부분 공포영화의 주 무기는 갑툭튀입니다. 벌벌 떨고 있는 주인공들 앞에 기괴하게 생긴 귀신이 요란한 음악과 함께 '우왁'하고 튀어나오면 관객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귀신은 금방 사라지고, 관객은 귀신이 언제 어디서 다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이런 "기괴한 대상의 출몰" 한 가지에 기대어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방법은 사실 아주 단조로운 방식에 속하며, 흔히 말하는 '삼류 공포영화'에서 주로 쓰입니다.


 개봉한 지 무려 40년이 다 되어가는 [샤이닝]이 지금 보아도 걸작인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갑툭튀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떡밥을 계속 뿌립니다. 예전 관리자 이야기, 변해가는 잭의 눈빛, 대니의 능력, 수수께끼의 237호 등등. 마치 깊은 숲 속에서 발견한 맹수의 발자국처럼, 관객은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무서운 장면이 없어도 이미 관객의 머릿속은 '대체 이 장면의 의미가 뭐지?'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거지?'와 같은 불길한 상상으로 가득 찹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장면들은 앞뒤 맥락 없이 사진으로만 보면 그리 무섭지 않습니다. 아래 두 사진처럼 말이죠.

평범해보이는 이 장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영화를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러한 공포는 영화 전반에 걸쳐 치밀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놓기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이쯤 되면 귀신이 있고 없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교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완벽한 연출이 더해지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귀신의 요란한 등장이 아니라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 자체가 됩니다.


미친 연기력

 앞서 말했듯이 [샤이닝]은 공포를 천천히 쌓아가기 때문에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배우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요 등장인물 잭, 대니, 웬디 세명 밖에 되지 않모두가 미친 연기를 선보인 덕에 영화는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백 마디 말 대신 사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밈으로 자주 쓰이는 그 장면 "Here's Johnny!"


+숨겨진 의미들

 이 영화의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은 완벽한 연출의 대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영화에는 기발한 연출, 수많은 상징과 메시지가 담겨있죠. [샤이닝]을 보고 나서 다양한 해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여기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천재성을 모두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이 영화의 숨겨진 의미 중 하나를 맛보기로 소개하겠습니다.

인디언

 호텔 지배인이 처음 호텔에 대해서 소개를 해줄 때, 이 호텔은 인디언들의 묘지 위에 세워졌다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배경과 소품을 자세히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 고유의 무늬와 장식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주민을 억압하고 세워진 호텔은 미국을 상징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관리인의 광기는 폭력의 역사는 반복됨을 뜻합니다.


샤이닝 (The Shining)(1980)

여름도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는데, 공포 영화를 보고 싶지만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에 질린 당신에게 [샤이닝]을 강력 추천드립니다. 작년에 개봉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도 비중 있게 인용되었을 만큼 유명한 영화이니 영화 지식을 쌓고 싶은 당신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 [샤이닝]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샤이닝]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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