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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an 13. 2021

TV가 거거익선(巨巨益善)이라고?

결혼 2년 차, 혼수에 대한 반추

거거익선 (巨巨益善)

'다다익선(多多益善)'에서 파생된 말로 크면 클수록 좋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남편이 TV 혹은 침대 등 제품의 사이즈를 표현하는 데에 주로 사용되는 단위.


    결혼의 꽃, 신혼집 꾸미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남편은 집에 들이는 가전과 가구에 있어서 100% 나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으나 실상은 사사건건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그 많은 의견들은 결국 하나의 답으로 종결되었다. 바로 거거익선. 소박한 집과 소박한 살림에 걸맞은 제품을 구입하길 바랐던 나와 달리 먼 미래를 내다보는 남편의 의견은 대체로 거거익선이었다.

"TV 사이즈는 어느 정도가 좋겠어?"
"거거익선 정도가 좋지"
"침대 사이즈는 뭘로 할까?"
"거거익선으로 하자!"
"냉장고랑 세탁기, 건조기는 몇 리터, 몇 키로 짜리로 고를까?"
"거거익선짜리가 어때?"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무수한 토론 끝에 결과적으로 침대는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남편이 자취할 때 사용하던 퀸 사이즈 침대를 잠시 사용하기로 했고, 냉장고와 세탁기/건조기는 두 명의 살림이 크지 않을 것을 감안해 각각 600리터와 21/14kg짜리를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아주 오래도록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품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누군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말한 TV였다.


    나는 의문이었다. 집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자리 잡은 저 까맣고 네모난 물건은 어째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까맣고 네모난 것인지. 아무리 예쁘게 꾸며놓은 인테리어라 할지라도 그 까만 물건을 만나는 순간 약간의 투박함이 묻어버린다. 그러나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매력이 지대하여 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발견한 TV인 듯, TV 아닌, TV 같은 셰리프TV와 롤러블TV를 보며 나의 길은 여기구나 했다.


    가격대가 예산과 한참 멀어진 롤러블 TV는 감히 엄두도 못 내고, 그나마 가까운 셰리프TV의 사이즈를 알아보니 최대 사이즈가 55인치였다. 나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나 내리 거거익선을 외치던 남편에게 55인치는 "날 쏘고 가라" 수준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나도 이런 대체재가 있는 이상 절대 까맣고 네모난 TV는 사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으므로 남편과 나의 줄다리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던 중 The Frame이라는 액자 느낌의 TV가 65인치까지 생산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남편과의 협상 테이블에 그 제품을 올렸다. 협상. The Frame. 성공적.


    이쯤에서 우리의 신혼 살림을 반추해보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제품 자체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으나 용량에 대한 아쉬움은 적지 않다. 거거익선에 미치지 못했던 TV는 의외로 만족스럽게-남편의 생각은 아직 물어보지 않음-보고 있다. 그러나 신혼의 작은 살림을 감안하여 작은 용량으로 구매한 제품들은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신혼이기 때문에 큰 용량이 필요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그 물건이 신혼이 끝날 때 까지도 나와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살림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냉장고 안의 음식도 빨래의 종류도 생각보다 슬림한 규모가 아니었다. 아쉬움 중 제일은 침대였다. TV가 아니라 침대야말로 거거익선이 꼭 필요한 제품이다. 제발 모든 예비 신혼부부가 세상에서 제일 큰 침대를 사길 바라며.


>> 작은 침대 이야기 : https://brunch.co.kr/@borakkk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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