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오로 Jun 15. 2020

부부가 각방 쓰는게 잘못인가요?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3.

    지난 밤도 남편과 나는 치열한 밤을 보냈다. 스스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시간. 8시간도 안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매일 자아가 없는 서로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서로에게 진심없는 사과를 전했다. 그러다 아침이 밝아오면 '잘 잤어?' 하는 말은 안부에서 나아가 말 그대로 잘 잤는지, 밤 사이 내가 몇 번이나 공격했는지를 궁금해하는 물음이었다. 같이 사는 것들 중 가장 큰 변화는 같이 자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와 잠드는 순간까지도 함께일 수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행복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이 공격수일 때 남편의 무기는 코골이다. 옆으로 돌아 누우면 코 고는 소리가 약해지는데, 그 말은 결국 돌아 눞히기 위해 나는 적어도 한 번 이상 잘 자던 잠에서 깨어나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이 많은 나는 잠이 든 순간까지도 말을 하는 것으로써 남편을 공격한다. 한창 잘 자다가 갑자기 '내 치킨 어디갔어?!', '신난다 신나!' 라며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너무 또박또박 말을 걸어서 비몽사몽에 나에게 대답하면 나는 다시 묵묵부답이라고 하니, 자다가 이런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따로 없다. 그러나 남편과 나의 공공의 적은 따로 있었고, 그것은 작은 사이즈의 침대였다. 자다가 이리 쾅 저리 쾅 하이파이브도 했다가 발차기도 했다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잠결에 서로에게 사과는 하지만 듣는 이도 하는 이도 이렇다할 진심은 없다.  


    잠 못 들던 어느 날 '부부는 왜 한 방을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이 혼자 잘 때처럼 깊고 온전히 잠든 기억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각방에 대한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부부에게 있어 '각 방'이라는 단어는 꽤나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저희는 각자 자요' 라는 말 '각 방 써요'가 될테고, 그것은 결국 '우리 부부는 문제가 있어요'로 의역될 여지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행복하고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저 잠만 편하게 따로 자겠다는 의미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다.


    그러나 의외로 주변을 돌아보면 함께 자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부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자녀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요즘 세대는 형제들과 방을 같이 쓰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일찍이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생각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깊은 숙면을 취하는 것에 익숙해질데로 익숙해진 우리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나는 부부가 각 방을 쓰는 것이, 다가오는 세대의 어느 순간 부정도 긍정의 의미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운 문화가 되고, 당연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남편과 파이팅 넘치는 밤을 보낼 것이다.


    부부들에게 당연하게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여보'라고 호칭한다던가, 한 침대에서 잔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것들이 이루어지기까지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줄 미처 몰랐다. 6년 동안 '오빠'라고 부르던 호칭도 하루 아침에 '여보'라고 바뀌지 않고, 한 침대는 고사하고 한 방에서 잠드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생활하고 있는 모든 부부님들께 존경을 표하며, 나도 당연한 부부가 되기 위해 오늘도 결혼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도 사위는 처음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