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술에 취한 형부와 속상해하는 언니를 뒤로하고 우리는 언니의 집을 떠났다. 남편은 잔뜩 열이 오른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다니며 달래주었다. 그날은 언니의 신혼집 집들이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곧 결혼할 나의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초대되었고, 언니는 음식이며 술이며 많은 준비를 했다. 식사가 시작되었고 아직은 조금 어색한, 새로운 가족들과의 대화 속에서 쉬지않고 술잔이 오갔다.
아빠는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도 늘 술과 함께하는 애주가셨기 때문에 그날도 거침없이 술을 드셨는데, 그의 희생양은 가장 아빠와 가까이 앉아있던 형부였다. 아빠는 적당히 조절하며 마시라고 하셨지만 긴장한 신입 사위는 감히 장인어른의 장단에 맞추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그림이 어느정도 짐작이 되어 미리 남편은 술을 못마신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짐작으로 그린 그림은 어느새 형부를 주인공으로 한 현실이 되어있었고, 결국 언니네 집들이는 후식도 먹지 못하고 두 시간 만에 파했다. 호스트가 더 이상 손님을 맞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신 걸까. 나는 아빠가 사위들에게 기선제압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자리에서 그렇게까지 마셔야 했는지, 권해야 했는지 너무 원망스러웠고, 실망스러웠다. 술을 자제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아빠도 미웠고, 옆에서 제지하지 못한 엄마에게도 괜시리 화살이 갔다. 집에 도착해서도 나는 아빠에게 며칠이고 쏘아붙였다. 이래서야 우리가 무서워서 아빠랑 식사를 하겠냐고. 아빠에게 정말 실망했다고.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외가 쪽 친척모임에서 사촌 형부들과 함께 술을 드시는 아빠를 보았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새 식구가 된 사촌형부들은 그러니까 이미 우리의 식구가 된지 10년이 다 되었다. 내가 곧 이곳에 새로운 사위를 데려와야한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위들이 그제야 보였던 거다. 거나하게 취한 형부들과 이모부들 삼촌들 그리고 아빠. 문득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당신의 진짜 사위들을 맞이하며 어떤 상상을 하셨을지 궁금해졌다.
아빠의 마음 속에 '사위'는 어떤 존재였을까. 여자만 셋인 가족 외식에서 늘 혼자만 마시던 술을 드디어 누군가와 나눌 수 있게 된 기쁨이었을까. 혼자서 따라 마시던 술잔을 채워줄 누군가가 생겼다는 기대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조잘조잘 잔소리가 많은 딸들과 아내가 아닌새로운 가족이 된 누군가와 깊이 술잔을 나누고 싶은 호기심이었을지도. 귀하디 귀한 두 딸을 데려간 악마였으려나.
결혼과 연애의 큰 차이는 관계의 확장이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이 관계의 전부였다면, 결혼을 마음먹은 순간부터 그 관계는 상대방의 가족까지 혹은 친구들까지 확장된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오는 것이라고 했던가. 결혼은 이제 '그' 뿐 아니라 '그의 인생'을 함께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와 남편은 서로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서로의 인생을 차근차근 나눠 갖고 있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데 나는 너무 우리의 입장만 생각한 것 같다. 우리가 다가가고 있는 인생 속 그들의 입장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도 사위가 처음이라 사위와 함께하는 식사자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셨을 것이다. 사위들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는 당연히 모르셨을 것이며 얼마나 당신을 어려워 할 것인지 짐작하지 못하셨을 수 있다. 언니의 집들이는 그로인해 발생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했을 것이다. 집들이 사건이 있은 후로 아빠는 사위들이 있는 자리에서 과하게 술을 드시지도 않고 한마디 술을 권하는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맛있는 안주가 있어도 엄마와 딸들의 눈치를 보며 술을 자제하시는 모습을 보니, 혹시 내가 한 번의 사건으로 아빠의 기쁨이었거나 기대였거나 혹은 호기심이었을 무언갈 뺏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6개월의 텀을 두고 한 해에 모두 결혼한 언니와 나는 결혼하는 전날까지 본가에서 생활했다. 30년간 키워낸 두 딸이 한 해에 집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부모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게 두 딸을 내보내고 그러나 두 사위를 맞이하는 것으로 위안하시길 바랐는데, 내가 아빠의 작은 위안을 내동댕이 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부터 다시 차근차근 주워담아보려고 한다. 남편! 도와줄거지?♡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