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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May 30. 2020

잔소리를 없애는 방법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2

    남편과 함께 살면서 가장 빠르게 생긴 부캐는 '잔소리쟁이'이다. 부모님과 살면서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었던 나에게 새로 생긴 부캐는 퍽 당혹스러웠다. 이럴수가. 내가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나의 의사표시가 누군가에게 잔소리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저 불필요한 전원코드는 빼주기를, 양치 후 치약은 제 자리에 꽂아주기를, 벗은 바지는 옷걸이에 걸어두기를 요청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타인의 요청을 잔소리로 치부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엄마와 함께 살 때 엄마는 항상 잔소리의 주체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을 고쳐먹은 순간 잔소리를 하는 엄마도 잔소리도 사라졌다. 그 시작은 '엄마는 왜 잔소리를 할까?'를 고민하면서였다. 누군가 잔소리를 하는 주체라고 인식이 되면 그때부터 내용은 크게 중요치 않아진다. 그저 잔소리를 하는 행위만이 남는다. 나에게 있어 엄마도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들어보기로 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빨랫감을 뒤집어서 내어놓지 말아라.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정리해라. 다 마신 커피잔은 부엌으로 가져와라. 하나 하나 곱씹어보다 문득 깨달았다. 그녀가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잔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이다. 빨랫감은 뒤집지 않고, 아침엔 이불정리를 하고, 커피잔은 부엌으로 가져갔으면 불필요한 이야기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만 엄마가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잔소리는 요구사항이다. 요구사항을 해결하면 잔소리는 없어진다. 다만 우리는 '잔소리'라는 것에 대한 무의미한 반항심과 적개심으로 잔소리에 담긴 요구사항을 듣지 않을 뿐이다. 생각은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 지배한다. 즉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본인의 행동과 그에 대한 마음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정의내리는 '잔소리'가 사실은 잔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잔소리를 없애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생각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생각을 바꾸면 잔소리가 아니라 내게 필요한 조언이 들릴 것이다.


    잔소리를 듣는 자에게 '요구사항의 해결'이 잔소리를 없애는 방법이라면, 잔소리를 하는 자에게 잔소리를 없애는 방법은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 초반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남편에게 끊임없이 요구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는 나의 자질구레한 행동을 터치하지 않는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잔소리를 하는 대신 직접 행동했다. 그래서 잔소리쟁이는 나만의 부캐가 되었다. 물론 처리해야 할 양이 그가 배출한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의 방식이 큰 비율로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나 잔소리쟁이라고 부르는 남편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리가 있었는지 남편은 그동안 잔소리로 여겨왔던 나의 요청사항을 최대한 꼼꼼히 반영해주었다. 나역시 자잘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지간하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 잔소리를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잔소리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하게된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잔소리를 한다면 큰 관심으로 여기길. 하지만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잔소리도 있다. 술을 적당히 마시라던지. 얼죽아인 나에게 따뜻한 음료를 먹으라던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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