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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May 26. 2020

동등하기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1

    지난 19년 가을, 평생이길 바라는 동반자와 웨딩마치를 울렸다. 본가로부터의 첫 독립임과 동시에 남으로 살았던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의 시작이었다. 흔히들 결혼 후 신혼 때, 가장 많이 다툰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긴장한 것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행복한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과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상태에서 결혼했다. 각자의 본가에서 독립적인 상태일 뿐만 아니라 각자로부터 동등한 상태에서 한 가정을 이루었다. 서로를 더욱 존중해야 하는 상태임과 동시에 누구 하나 서로에게 뒤쳐질 것이 없는 조건이었다. 지금은 경제력의 차이가 부부 간의 서열을 정리하는 세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등한 조건으로 결혼을 한다는 것도 아직은 많지 않은 것이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뭔가 바라는 것이 있었나보다.


    나와 남편은 문제가 생기면 천천히 대화하고, 최적의 합의점을 찾았다. 내가 하나 양보하고, 그러니 너도 하나 양보하는. 그것이 잘 맞아떨어지면 그나마도 다행이다. 그러나 매번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남편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느끼는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럴때면 마음 속 저기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입을 열면 용가리처럼 거센 불길이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입을 다물곤 했다.


    몇 번을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가 나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 화가 나는 걸까, 다른 행동에 대한 나의 의견을 그가 수렴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걸까. 둘 다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후자에 더 무게를 실었던 것 같다. 내 말을 들어야 할 것같은데, 그러지 않는 남편에 대한 이유없는 배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등한 상태에서 결혼했다고 자부했으나 실은 어떤 면에서 나에게 비교우위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나보다. 실로 어리석은 생각의 깨우침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후에는 비슷한 일이 있어도 나는 용가리로 변하지 않는다. 내 의견은 여전히 매우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도 의식이 있는 하나의 개체로서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으니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겠거니 하고 그를 따른다. 결과적으로 그는 원하는 것을 취하고, 나는 용가리가 되지 않으니 행복한 결말이다.


    어느정도 성숙한 두 자아가 만나서 이해하고, 타협하며 사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사춘기 혹은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한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가리를 소환할까. 동등하지 않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은 더욱이 어려울 것이다. 부모가 부모이고, 어른이 어른인 이유는 역시나 있다. 사춘기 이후의 자식을 둔 모든 부모님들께 존경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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