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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an 01. 2021

새로운 집밥의 탄생

너는 어느 별에서 온 된장찌개니?

 "이게 장모님 스타일 된장찌개야?"
 "아니, 이 된장찌개랑 나랑은 아주 초면이야. "   


    결혼 후 내가 처음 선보인 된장찌개를 맛보고 남편과 나눈 대화였다. 배달음식이 질리기 시작할 무렵 담백하고 건강한 집밥이 먹고 싶어 졌다.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얻어먹고 살아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었고, 요리에 흥미도 소질도 없던 내가 결정한 첫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어차피 맛은 된장이 낸다니 된장 믿고 가보자 싶었다. 야채 손질부터 찌개에 넣는 순서, 된장의 양까지 하나하나 구세주인 엄마에게 물어 겨우 된장찌개를 만들어 나갔다.


    유튜브에도 물론 된장찌개 만드는 방법은 넘치도록 많았다. 하지만 유튜브는 잘 손질된 야채로 음식을 만들기만 할 뿐 야채는 무엇으로 얼마나 씻어야 하는 것인지, 껍질은 음식 쓰레기인지 일반 쓰레기인지, 반토막을 쓰고 남은 채소는 어떻게 얼마나 보관이 가능한지 등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엄마의 도움이 때마다 필요했다. 남편에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선보이겠노라고 큰 소리는 쳤으나 막상 부엌에 들어선 나는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하기 바빴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아마 내 손에서 장모님이 내게 해주시던 된장찌개가 재현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실은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적당히' 그놈의 적당히는 도대체 얼마나 넣어야 적당한 것인지. 엄마의 지시대로 적당히 물 붓고, 적당히 된장 풀고, 적당히 건더기를 넣으니 얼추 된장찌개 같은 모양새가 나왔다. 그런데 마지막 고춧가루를 뿌리는 단계에서 엄마가 말한 '적당'한 양보다 조금 많이 뿌려졌는지, 내가 그동안 본가에서 먹어왔던 갈색의 된장찌개 아닌 붉은빛을 짙게 머금은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칼칼한 색감과는 달리 다소 밍밍한 맛을 잡아보기 위해 다시다를 집어 들었고, 흥미롭게도 이제 된장찌개는 고깃집에서나 맛 볼 법한 짜고 진한 맛에 매우 가까워졌다. 결론적으로 비주얼도 맛도 내가 평생 집에서 먹어왔던 된장찌개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허허.. 그대는 뉘신지!?


    수습이 안 되겠다 싶어 일단 식탁으로 가지고 나갔다. 된장찌개의 최종 맛이 궁금한 건 기다리던 남편이나 직접 만든 나나 같은 입장이었다. 호기심 가득, 한 입을 맛본 후 식탁 위에는 짧은 정적이 감돌았다. 남편이 '장모님의 된장찌개는 칼칼한 고깃집 스타일이구나' 했다. 나는 '이 된장찌개는 나와 초면이야'라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집밥'이라 함은 담백한 맛과 다소 건강한 느낌이 배어있는 음식이어야 했으니, 이 근본 없는 된장찌개의 족보를 정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모님 스타일의 담백하고 건강한 된장찌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엄청 감칠맛 나게 맛있는 된장찌개도 아니었다. 바야흐로 '새로운 집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집밥이 별거냐, 집에서 먹으면 집밥이지!


이제부터 이 맛이 우리 집 스타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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