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남짓의 짧은 결혼 기간 중, 남편과 나 모두에게 가장 힘들었던 날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그 날'일 것이다. 결혼 후 불과 두 달이 조금 지난 때였던 20년 1월 초, 우리에게 날아든 한 통의 초대장. 시댁으로부터도 아닌 시댁의 시댁으로부터 였다. 아버님의 직계 5남매와 사촌 7남매로 이루어진 12남매가 연 중 단 한번, 연초에 열 두 남매의 집에 돌아가면서 모이는 데, 마침 12년 만에! 이제 막 결혼한 나의! 시댁에서! 그 행사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이었다. 두둥!
기본적으로 어른들만 모이시지만 장소를 제공하는 집의 자녀 그러니까 외동아들인 남편은 참석해야 하는 것이 그 모임의 문화라고 했다. 나 역시도 엄마를 포함한 다섯 남매가 모이는 친척모임이 있었고, 때마다 남편이 나와 동행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이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시부모님과도 어색한 사이인데, 더 많은 시어른들을 한 번에 만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차 올랐다. 그냥 그 정도였다. '그 날'까지는.
마침내 '그 날'이 오고, 막상 시댁으로 가는 길에 오르자 갑자기 엄청난 부담이 온몸을 감쌌다. 열 두 쌍의 어르신 부부도 부담스러운데 그 사이에서 내가 온리! 원! 며느리라니!!! 단 한 명의 신입 며느리에게 집중될 관심에 한 번, 스물네 분의 심부름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것 같은 아찔함에 또 한 번 눈을 질끈 감았다. 말로만 듣던 시월드가 나에게도 열리는 것일까?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 나에게 있어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경험은 대체로 두려움을 먼저 안긴다. 특히나 그 경험이 '시댁'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주제로 알려진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온갖 상상이 시작됐다. 그 시간부터 시댁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나는 계속해서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좀 여기서 내려달라고, 나를 두고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아니 이제와 말하지만 사실 농담은 0.1%뿐이었고, 진담이 99.9%였다.
몹시 부담스러워하는 나를 안정시키려 남편은 가서 몇 시간 그냥 앉아 있다 오면 된다고 말했으나 그의 말이 되려 나를 자극했다. 며느리가 앉아만 있다가 오면 다녀와서도 욕을 먹는다고. 그럴 바에야 가지 않는 것이 나은데 나의 입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솟구치는 긴장은 결국 화살이 되어 남편에게 날카롭게 꽂혔다. 그때부터 남편도 짐짓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은 우리 집 친척모임에 어떻게 항상 웃으며 왔을까? 정말 부담스러웠을 텐데. 아니야 남편은 사위고 나는 며느리잖아. 처가댁의 사위랑 시댁의 며느리는 다른 거잖아. 아니야 다를게 뭐가 있어. 똑같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지킬 앤 하이드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받아주느라 남편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의 참석은 결정된 일이었고, 도로 위의 차는 멈출 수 없으니 자못 냉랭해진 기류를 타고 우리는 시댁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였다. 한껏 긴장된 상태로 닮으신 듯 다른 어른들께 한 분 한 분 인사하고, 손을 씻으러 갔다. 물을 틀기 위해 손잡이를 올리는 순간 내 머리 위로 샤워기의 물이 쏟아졌다. 샤워기 모드로 되어있던 모양이다. 물에 젖은 나도, 나를 보고 있던 남편도 정지화면처럼 멈췄다. 남편은 그때가 나의 예민함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이었노라고 회상한다. 사실도 그러했다. 내 안에 어떤 끈이 딱 끊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이상한 점은 그때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거다. 내가 이 곳에 와서 한 거라곤 고작 인사뿐이었는데, 나의 행동은 마치 내가 상상한 모든 부정적인 것을 겪은 것처럼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났다. 물에 젖은 모양새며 한 것도 없이 일그러진 얼굴이 한심했다. 시어른들이 처음이라 무서운 건 이해하지만 일단 겪어보고 생각하자고, 이왕 왔으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하며 화장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