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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Mar 26. 2021

사랑하는 이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힘찬이 별이 반짝이던 날

    문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시댁은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어머님과 아버님보다 더 빠르게 우리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녀석들은 두 마리의 사모예드, 힘찬이와 유키다. 나의 앉은키를 훌쩍 넘는 덩치와는 다르게 순하디 순한 이 두 녀석들은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배를 뒤집고, 만져달라며 자신의 다리를 내 무릎 위에 얹기 바빴다.


    나와 교제하기 한 두해 전부터 키우기 시작했다고 했으니, 이제는 8~9살 정도가 되었을 거다. 대형견이 수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법 중년의 강아지들이었다. 암컷인 유키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사랑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고 자라 철 없이 촐싹거리는 성격이다. 반면에 몇 개월 먼저 태어난 수컷 힘찬이는 남편과 큰 교감을 나누며, 자라면서 도그쇼에도 출했을 만큼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스타일이다.


    남편은 새끼 때부터 자신의 백수 시절을 온전히 함께해준 힘찬이에 대해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 전에도 남편은 시댁과 두 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자취를 했지만 주말이면 힘찬이를 보기 위해 꼭 본가로 돌아갔다. 힘찬이 얘기만 나오면 너무나 행복해하는 그 모습에 가끔은 힘찬이한테 질투심이 느껴지기도 할 정도였다.


    그런 힘찬이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서 부터였다. 이전부터도 조금씩 몸이 무거워져서 같이 산책하러 가면 힘찬이는 잘 뛰지 않았다. 유키만 죽자고 나랑 달리기 시합을 했다. 조금씩 늙어가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주 양육자인 아버님을 통해 힘찬이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남편의 걱정도 날로 늘어갔다.


    최대한 자주 보러 가려고 노력했으나 아무래도 결혼 전만큼 자주 가진 못했고,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다. 설에 만난 힘찬이는 당뇨까지 앓고 있었다. 당뇨용 사료를 줘도 잘 먹지 못해 살도 많이 빠져있는 상태였다. 아버님께서는 힘찬이가 얼마나 더 살 지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오빠와 나는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아직은 아니겠지 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까지는 살아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설로부터 꼭 일주일이 지난 저녁, 아버님께 걸려온 전화 한 통에는 힘찬이가 이제 아주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는 소식이 담겼다. 임신 초기였던 나는 안정을 위해 집에 있기로 하고 이튿날 남편만 혼자 시댁으로 향했다. 언제가 힘찬이의 마지막이 될지 몰라 힘찬이와 하룻밤 같이 자고 오기로 했다. 시댁에 도착한 남편이 보낸 사진에는 열심히 웃고 있는 남편과 초점 없는 힘찬이의 얼굴이 묘하게 앙상블을 이뤘다. 좋은 시간 보내길.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울고 있었다. 그 날 새벽 힘찬이는 끝내 힘찬이 별로 떠났다.


    반려동물을 길러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큰 지 공감할 것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교감하고, 스킨십으로 대화하는 존재. 나도 그런 반려동물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 뜬금없이 집으로 데려온 토끼, 겨울이었다. 하얀 바탕에 검은색 얼룩무늬가 있었고, 까만 눈은 늘 호기심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놀라지만 겨울이는 화장실도 가렸다. 바닥에 실수하는 법이 없이 꼭 배변패드에다 소변을 봤다.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다'는 감정을 내게 처음 알게 해 준 겨울는 7년을 함께하고 겨울이 별로 떠났다. 토끼의 평균 수명이 6~8년 정도이니 겨울도 나름 장수한 토끼였다. 늙는 기색 하나 없이 건강하던 겨울이는 어느 날부터 소변보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더니 결국 요로결석 판정을 받았다.


    그 날은 2박 3일의 입원 수술이 잘 끝나고 집에 돌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 외출 길에 병원에 잠시 들러 입원 중인 겨울이를 만났다. 잔뜩 웅크려있는 겨울이의 등에 손을 얹고 고생했어, 이따 보자~ 하며 주절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겨울이의 눈동자가 얼마 전 오빠가 보낸 힘찬이의 눈동자랑 비슷했다.


    겨울이는 그 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쇼크사라고 했다. 나이 든 겨울이에게 버거운 수술이었나 보다. 집에 가면 겨울이를 만날 거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고, 미안함과 공허함만 남은 순간이었다.


    힘찬이를 보내는 오빠를 보면서 겨울이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힘찬이도 겨울이도 살아생전에는 저 녀석들 좋은 주인 만나 호강하며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가고 나니 더 오래 같이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더 빨리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죄책감들이 밀려들었다.


    남편은 힘찬이 등에 우리의 새로운 생명을 꼭 태워보고 싶어 했다. 힘찬이가 정말 예뻐하면서 잘 봐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때까지 버텨주길 바랐지만 욕심이었다. 그래도 힘찬이는 아픈 몸을 부여잡고 남편이 달려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 겨울이도 나를 기다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부여잡았던 그 끈이 우리를 보고 나니 스르르 놓아진 것이 아닐까.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것이 그저 고마웠다.


    겨울이를 보내고 나는 한동안 집에서 환영을 봤다. 가만히 있어도 겨울이가 스스슥 하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글로 적어놓기를 좋아했던 나는 겨울이의 죽음을 끝내 글로 적지 못했다. '겨울이가 죽...'까지 쓰고 오열하며 노트북을 접어버리기 일쑤였다. 무려 8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이렇게 적고 있을 만큼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편도 많이 힘들 터였다. 아주 오래 힘찬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틈틈이 아버님께 전화를 걸어 힘찬이를 회상했다. 입맛도 없어져가는 남편을 보며 함께 슬퍼하고 싶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임신 초기라 내가 슬퍼서 엉엉 울면 아이에게 영향이 있을까 무서워 제대로 같이 울어주지도 못했다. 게다가 먹덧이 와서 식음을 전폐한 남편을 옆에 두고 배까지 고프고 난리였다. 결국 남편의 실의는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임신한 아내를 챙기기에 바빴다. 미안했지만 다행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슬픔을 이겨내길 바랐다.


    함께한 순간은 7년이고 끝은 찰나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더 강하고 오래 남는 것은 ''이다. 끝에서 멀어지면 다시 함께했던 순간들이 짙어진다. 남편도 얼른 그 순간들이 짙어지는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 지금의 내가 겨울이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슬픔이 아니라 행복한 기억만 나는 것처럼.


여담) '힘찬이가 우리 아가로 다시 환생한 것일 수도 있잖아!' 하는 내 말에 '아냐, 힘찬이 멍청해서 안돼. '하는 걸 보면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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